배우 박민영이 사극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
'자명고'부터 '성균관 스캔들', '닥터진'에 이어 '7일의 왕비까지. 이쯤되면 사극 전문 여배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많은 드라마 장르 중에서도 힘들다고 잘 알려진 사극, 박민영 역시 한 번 경험한 이후로 "다시는 사극 안 할 것"이라고 다짐했던 바. 하지만 그럼에도 다시 한 번 사극에 도전한 이유는 무엇일까.
"저도 모르겠어요. 연기를 배우고 싶어서 시작한 건 맞아요. 제가 원래 발성이나 딕션에 취약점이 있었어요. 애기같이 앵앵거리는 목소리라는 평도 있었고 그때는 지금처럼 여자치고 중저음 느낌도 없었고 발음도 부정확하고 제가 봤을 때 부족함이 많았는데, 사극하면 도움이 된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래서 판소리도 준비하고 볼펜 물고 연습하면서, 첫 사극을 도전했는데 재밌었어요. '거침없이 하이킥' 끝내고 '자명고' 할 때는 열심히 사극을 흉내내는 정도였어요. '그랬사옵니다'처럼 틀에 박힌 사극체를 겉치레만 흉내내는 거에서 끝났다면, 어느 순간 그게 편해지니까 '이게 사극의 매력인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극은 온전한 대사와 목소리와 눈빛 외에 다른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게 없거든요. 손도 항상 정갈하게 공수 자세고 대사도 중간에 미사여구를 붙이기도 어렵고. 정말로 분석을 통한 디테일함을 대사 안에서 풀어가는 재미가 있다고 생각하고 매력을 느끼다 보니까 안 한다고 했는데 계속 하게 되고 사극이 많이 들어오는 편이에요. 사극을 기피한다는 이미지도 없고 여러 번 했으니까. '7일의 왕비'도 얼마나 제목이 예뻐요. 사극 안 한다고 해놓고 '왕비? 왕비는 안 해봤잖아?' 이러면서 단순하니까 까먹고 하게 되는 거죠. 이번에도 하다 보니까 재밌긴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안 한다고 허언을 하지는 않는다. 당분간, 진짜 안 하긴 할 건데 '당분간'에 시간적 제한을 두지는 않는 거죠."
박민영이 "다시는 사극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것도 이해가 가는 게 그의 '인생작'으로도 꼽히는 '성균관 스캔들'은 KBS 내에서도 힘든 사극으로 꼽혔던 작품이기 때문. 박민영은 '7일의 왕비'와 '성균관 스캔들' 중 어느 작품이 더 힘들었냐는 질문에 7년이 지난 지금도 '성균관 스캔들'을 꼽으며 고개를 절레 절레 저었다.
"'성균관 스캔들'은 방송계에서 아직도 회자되는 작품이에요. KBS국 안에서도 거의 탑5 안에 꼽힌다고 하더라고요. 역대 작품 중에 모든 스태프와 연기자가 힘들어하고 고생한 작품이에요. 촬영 감독님은 그거 끝나고 입원하셨었어요. PD님이 대단히 꼼꼼하시긴 한데, 결과물 보면 잘 나오니까 뭐라고 할 수 없고(웃음). 근데 이번에 이정섭 감독님도 이렇게 안 주무시는 건 처음 봤어요. 안 주무시고 안 재우고. 그래도 감독님이 저한테는 한없이 좋은 분이에요. 무서운 걸로 유명하신지도 나중에 주변에서 얘기해줘서 알았어요. 세 작품 같이 하면서 웃는 얼굴 밖에 못봤거든요. 같이 하는 배우들이 저랑 붙어 있는 촬영인지 아닌지 스케줄 표부터 확인한다고 하더라고요. 유일한 여배우이고 하니까 웃으면서 대해주신 것 같아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7일의 왕비'가 만만한 촬영이었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7일의 왕비' 역시 전국 곳곳을 오가는 촬영은 물론, 유독 덥다는 올해 여름 무더위와도 싸워야 했기 때문. 박민영이 다시 한 번 사극의 고충을 몸소 실감했던 시간이기도 했다.
"저희끼리 현장에서 장난으로 불쾌지수가 12000이라고 얘기했어요. 어떤 날은 예쁘게 분장하고 한복 입고 나왔는데 5초만에 모든 게 땀에 젖는 느낌이라 이런 날엔 포옹도 하기 싫다고 해요. 근데 그런 날 꼭 포옹신이 있거든요. 그러면 우진 오빠가 워낙 착하니까 제가 '오늘은 안기 싫다'고 하면 '리허설 하지 말까?' 하기도 하고. 더위가 집중력을 흐리게 만들 때는 미웠죠. 근데 결국엔 사단이 일어났어요. 한복 안에 볼륨을 위해 입는 속바지가 있는데, 이게 통풍이 전혀 안 되는 이불을 두르고 있는 느낌이거든요. 땀띠가 난 거예요. 중간에 개인적으로 면으로 된 속바지로 바꿨더니 좀 낫더라고요. 태어나서 땀띠가 처음 나봐서 당황했어요. 하루에 이너를 네번씩 갈아입기도 하고, 탈수 증세를 보이기도 했어요. 원래 커피를 하루에 8잔까지도 마시는데, 더위를 먹으니까 하나도 안 넘어가서 마지막회 찍을 때는 밥을 한 끼도 못 먹었어요. 그러니까 화면에 굉장히 슬림하게 나왔거든요. 저희는 항상 '기승전화면빨' 이니까 감독님도 저를 안쓰러워 하지 않고 '턱선이 살아났다. 처음부터 저 얼굴이어야 했다'고 하셨어요."
특히 박민영은 극중 7일 왕비의 자리에 앉았다가 폐비된 비운의 여인 단경왕후 신씨 역을 맡아 형장으로 끌려가거나 옥사에 갇히는 등 모진 역경을 견뎌야 했다. 그중에서도 단연 이목을 집중시켰던 것은 십자 장대에 온몸이 묶여 하늘 높이 매달려야 했던 장면.
"사실 제가 고소공포증이 있어요.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높은 곳에 올라가면 발 끝부터 저려오거든요. 제가 고소공포증이 있다고 해도 아무도 안 믿더라고요. 제가 빼는 스타일이 아니라 연기할 때 웬만하면 다 하겠다고 했거든요. 씩씩한 척 하면서 올라갔는데 모두가 안쓰럽게 보니까 죄송했어요. 그래서 여유로운 척을 혼자 다 했더니 진짜 괜찮을 줄 하시더라고요. 5시간 동안 안 내려주셨어요. 나중에 들어보니까 액션팀에서 저한테 엄살 부릴 때는 부리라고, 안 그러면 아무도 힘든 거 모른다고 혼났어요. 배우가 이렇게 오래 매달린 건 처음 봤다고 했어요. 근데 그러기엔 이미 늦었으니까. 저녁에 올라갔을 때는 엄살 부렸더니 빨리 찍고 내려주시더라고요. 그때는 아무리 연기를 하는 사람이지만, 약간 혼란이 왔어요. 밤이라 더 무서웠거든요. 근데 즐거움이 커서 이것도 억지로 얘기한 거예요(웃음)."
이렇게 갖은 고난을 겪고 완성한 작품이기에 더욱 애착이 갔다는 박민영. 매번 하고난 뒤에는 "다시는 사극 안 하겠다"고 하면서도 다시 도전할 수밖에 없는 사극의 묘한 매력에 푹 빠진 그는 연기를 하고자 하는 후배들에게도 사극을 추천하고 있다고 했다.
"사극이 연기적인 면에서 성취감이 크긴 해요. 하나 해냈다는 작은 감정의 소용돌이가 많거든요. 개인적으로는 볼 때도, 할 때도 현대극이 좋아요. 그중에서도 장르물보다 그냥 '로코 로코'하거나 차분한 느낌의 '연애시대' 같은 거 좋아해요. '널 죽여' 이런 걸 하게 됐지만 개인적인 감성은 그건데, 이런 걸 통해서 연기적으로 기초를 쌓아가는 자양분이 된 거 같긴 해요. 제 주변에 저보다도 후배들이 생기기 시작했잖아요. '지금 사극 좀 힘들지만 너한테 도움 될 거 같다'고 얘기 해주고 있어요. 분명히 얻는 바가 한 가지 씩은 있을 거라고, 저 역시도 그랬으니까."
(Oh! 커피 한 잔②로 이어집니다.) / jsy901104@osen.co.kr
[사진] 문화창고, KBS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