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합니다." 신기록 달성의 순간. 김재환(29·두산)은 사과를 했다.
8일 두산 베어스와 한화 이글스가 맞붙은 서울 잠실구장. 김재환은 팀이 0-1로 지고 있던 1회말 2사 2루에 첫 타석에 들어서 안영명의 슬라이더를 공략해 우측 담장을 넘겼다. 김재환의 시즌 29호 홈런이자 12경기 타점 행진이 이어지는 순간이었다.
12경기 연속 타점은 KBO리그 연속 경기 타점 신기록이다. 종전 기록은 장종훈(1991년·빙그레), 이승엽(1999년·삼성), 야마이코 나바로(2015년·삼성), 최형우(2017년·KIA)가 가지고 있는 11경기 연속 타점이다. 동시에 잠실구장에서의 18번째 홈런을 쏘아 올린 그는 심정수(1999년)과 자신이 지난해 달성한 잠실구장 국내 타자 한 시즌 최다 홈런(종전 17개)까지 새롭게 썼다. 이 부문 최고기록인 타이론 우즈(1998년)의 24개에도 성큼 다가섰다.
경기를 마친 뒤 김재환은 타점 신기록 달성에 "무엇을 넘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없다. 하다보니까 온 것 같다. 하던대로 하면 좋은 결과가 있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동시에 동료들에게 공을 돌렸다. 홈런이 아닌 이상에 타점을 올리기 위해서는 주자가 출루해야만 하는 만큼 현재 물오른 타격감을 갖고 있는 김재환이 신기록을 달성할 수 있도록 한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김재환은 "앞에서 선수들이 자주 출루해주고, 내가 못 치더라도 뒤에서 에반스, 양의지가 타석에서 좋으니까 부담 없이 칠 수 있는 것 같다"고 고마워했다.
KBO리그에 획을 긋는 신기록으로 시상대에 올랐지만, 김재환은 환한 웃음보다는 다소 복잡한 생각이 가득한 모습이었다.
지난 2011년 10월 파나마 야구월드컵 국가대표에 선발된 그는 도핑 테스트에서 금지 약물 복용 사실이 적발됐다. 결국 2012년 10경기 출장 정지 처분을 받았다. 20대 초반. 철없던 시절의 알든 모르든 이뤄진 잘못된 선택과 말들은 김재환에게 떨어지지 않는 꼬리표가 됐다. 특히 최근 4번타자로 정착하면서 좋은 활약을 펼칠 때마다 김재환의 '주홍글씨'는 더욱 선명해지는 듯 했다.
김재환 역시 자신을 향해 부정적인 여론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김재환은 신기록을 세운 뒤 시상식 소감을 묻자 잠시 침묵한 뒤 "많은 생각이 들었다"고 조심스럽게 운을 뗐며 "만감이 교차한다. 정말 영광스러운 기록이지만, 모든 야구팬들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어서 그는 "꾸준히 성실한 모습만을 보여만 한다. 그 약속만큼은 잘 지켜지고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인터뷰 내내 굳은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가던 김재환이었지만, 쌍둥이 딸 이야기에는 미소를 지었다. 김재환은 지난 2014년 12월 결혼해 1년 뒤인 2015년 11월 쌍둥이 딸의 아빠가 됐다. 최근에는 셋째도 생겼다.
김재환은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나도 180도 바뀌었다. 비록 육아가 힘들지만, 아이들이 있어서 즐겁고, 기분이 좋다. 최근에는 두 쌍둥이 딸이 '야구 야구'라면서 아빠가 야구를 하는 것을 알고 있다"라며 가족에 대한 고마움과 사랑을 한껏 과시했다. / bellstop@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