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반기 65경기 타율 2할5푼5리, OPS(출루율+장타율) 0.723. 1군 주전으로 합격점을 주기 힘든 기록이다. 그러나 후반기 17경기에서는 타율 3할3푼9리, OPS 0.893로 완전히 달라졌다. kt 내야수 정현(23) 이야기다.
김진욱 kt 감독은 정현의 이야기가 나올 때면 유독 미소를 띤다. 6일 수원 SK전을 앞두고 만난 김 감독은 "최근 우리 팀이 좋은 경기를 할 수 있는 건 (정)현이가 공수에서 잘해주기 때문이다"라고 입을 열었다. 이어 김 감독은 "현이는 프로 입단 때부터 자질을 인정받은 선수다. 젊은 선수에게 기회를 주는 건 벤치의 역할이지만 그걸 챙기는 건 선수 본인의 몫이다"라며 "기대 이상으로 잘해주고 있다. kt의 주축으로서 그림을 확실히 그리고 있다"라고 칭찬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정현은 후반기 17경기에서 타율 3할3푼9리(59타수 20안타), 14득점, OPS 0.893을 기록 중이다. 낯선 테이블 세터에 주로 포진하고 있으면서 팀 공격을 이끌고 있다.
김 감독의 칭찬을 전해들은 정현은 손사래를 쳤다. 그는 "타격은 사이클이 있다. 좋아질 때가 됐을 뿐이다"라고 운을 뗐다. 그러나 막상 이야기를 나눠보니 정현의 상승세는 단순히 '사이클'이 만든 게 아니었다. 정현은 '전반기 마지막 일주일쯤부터 타격감이 올라오기 시작했다'고 되짚었다. 아마추어 때부터 '여름 사나이'답게 7~8월 성적이 좋았지만, 단순히 날씨 때문도 아니었다.
가장 큰 변화는 '노림수'에서 자신감이 생긴 점이다. 정현은 과거 '공 보고 공 치기' 방식대로 타석에 임했다. 하지만 타격에 왕도가 없듯이, 이 방식은 정현에게 맞지 않았다. 결국 정현은 자신만의 스트라이크존을 만들고 그 공만 치자고 다짐했다. 정현은 "나만의 존을 만든 덕분에 존 밖으로 2개 정도 빠지는 공도 대처가 된다"라며 "2스트라이크 이후 불안감이 아예 사라졌다. 커트로 내 공을 기다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라고 강조했다.
노림수 강점은 정현 혼자만이 만든 게 아니다. 김진욱 감독은 "현이는 전력 분석실 문지방이 닳도록 들락거리는 선수다"라며 "단순히 전력 분석원 뿐만 아니라 코치, 선배들에게 다양한 의견을 구해 자신만의 방식을 만든다"라고 칭찬했다. 정현은 "나를 상대팀 선수라고 생각하며 분석해달라고 주문했다. 그 점이 효과를 보는 것 같다"라며 머쓱한 미소를 지었다.
여기에 한 가지 변화가 더 있다. 바로 배트 끝에 테이핑을 시작한 것이다. 손아섭(롯데)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정현은 34인치 방망이를 짧게 잡고 치는 스타일이다. '콘택트형 타자' 치고는 다소 긴 방망이. 그러나 끝에 테이핑을 하면서 손목이 고정되는 효과를 누리고 있다. 정현이 밝힌 타격감 상승 시점인 전반기 마지막 일주일, 이때부터 배트 끝에 테이핑을 했고 곧장 효험을 발휘한 것이다.
김진욱 감독의 꾸준한 기회도 정현을 바꿨다. 가장 결정적인 순간은 전반기 마지막 경기였던 7월 13일 수원 삼성전. 8-8로 맞선 9회 2사 2루 남태혁 타석, 김진욱 감독은 대타 정현을 내세웠다. 정현은 볼카운트 2B-2S에서 상대 마무리 장필준의 5구를 받아쳐 중전 안타를 때려냈다. 2루에 있던 윤석민이 홈을 밟으며 경기가 끝났다.
정현은 "생애 첫 끝내기였다. 그때 좋았던 기분이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것 같다"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결정적인 순간 아닌가. 그때 감독님이 기회를 주셨다. 그리고 후반기에도 꾸준히 기회를 주신다. 좋은 경험이 되고 있다"라며 "다음 시즌 준비할 것들이 차츰 생기고 있다"라고 밝혔다.
그가 느낀 부족한 점은 컨택과 수비. 정현은 "어림없는 실책이 종종 나온다 그런 걸 줄여야 한다. 공격과 수비에서 세밀하고 정확한 모습을 보이고 싶다"라고 강조했다. 김진욱 감독은 늘 '승패를 굳히는 것도, 뒤집기 위한 힘을 마련하는 것도 모두 수비다'라고 강조한다. 김 감독은 "현이의 수비가 상당한 수준까지 올라왔다"라고 혀를 내둘렀다.
정현은 "1루를 제외한 나머지 내야는 다 괜찮다. 다만 2루는 가끔씩 생각 못한 플레이에 반사신경을 발휘해야 한다. 그 점이 아직은 부족하다. (박)경수 선배가 원체 수비를 잘하시니 보고 많이 배우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군 전역 후 첫 시즌. 그가 입대한 사이 소속팀도 삼성에서 kt로 달라져있었다. 여러 모로 새로운 환경이지만 정현은 조금씩 적응하며 성장 중이다. /ing@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