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수 100승이라는 기록은 대단한 고난이도다. 매년 10승을 꾸준히 10년간 해야 한다는 의미인데, 선발로 10년을 버티는 선수도 사실 몇 안 된다.
1987년 김시진(당시 삼성)이 처음으로 100승을 달성한 이후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딱 29명만이 이 고지를 밟았다. 지난해까지 27명이 달성했는데, 올해 양현종(KIA)과 송승준(롯데)이 100승 금자탑을 쌓고 이 대열에 동참했다. 그런데 앞으로는 토종 100승 주자가 잘 보이지 않는다. 현재 승수, KBO 리그의 토종 선발 기근을 생각하면 당분간은 달성자가 많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은 설득력이 있다.
다승 역대 30위는 현재 LA 다저스에서 뛰고 있는 류현진으로 98승이다. 류현진이야 언제 돌아올지 모르니 일단 논외로 보는 것이 옳다. 류현진을 제외하고 현역 중 100승에 가장 근접한 투수는 외국인 선수인 더스틴 니퍼트(두산)로 91승이다. 토종 1위는 79승의 채병용(SK), 2위는 78승의 차우찬(LG), 3위는 77승의 윤석민(KIA), 4위는 73승의 김진우(KIA), 5위는 72승의 송은범(SK)이다.
이 5명을 제외하면 통산 70승 이상의 국내 선수도 없다. 5명의 선수 중에서도 100승 달성이 쉽지 않아 보이는 선수들이 있다. 채병용은 불펜에서 뛰고 있어 승수 쌓기가 불리하다. 윤석민은 현재 어깨 부상 후유증으로 올 시즌 1군에서 뛰지 못하고 있고, 김진우와 송은범 또한 1·2군을 오간다. 당분간은 차우찬이 가장 유력한 다음 후보가 될 가능성이 있다.
그런 차우찬 또한 빨라야 2019년은 되어야 100승에 근접할 전망이다. 다만 차우찬을 포함한 이 그룹이 지나가면 그 다음 그룹은 더 멀리 있다. 60승을 넘는 선발투수라고 해봐야 우규민(삼성·61승) 정도다. 20대 투수로는 이재학(NC)이 48승으로 이제 막 반환점을 도는 정도다.
좋은 선발투수들이 쏟아져 나온 것은 21세기 들어 몇 년뿐이다. 2005년 데뷔한 윤석민, 2006년 데뷔한 류현진, 2007년 데뷔한 김광현(SK)과 양현종 이후 신인 선발투수의 명맥이 상당 부분 끊겼다. 최근 박세웅(롯데)을 필두로 하는 몇몇 선발투수들의 팬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으나 아직 갈 길은 멀다. 이는 최근 대표팀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기도 했다.
선동렬 대표팀 감독 또한 대표팀 성적이 좋을 때와는 다르게, 지금은 한 경기를 맡아 던질 수 있는 선발투수가 없다며 고민을 드러냈다. ‘초고교급’ 평가를 받았던 신인투수들이 상당 부분 부상에 발목이 잡히면서 후계 구도도 뚜렷하지 않다. 다행히 최근 고교 투수들의 전체적인 수준이 조금씩 올라오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프로에서의 체계적 육성도 중요해졌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