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종목 어디에도 기회없이 만들어진 슈퍼스타는 없다".
SK와 kt의 팀간 11차전을 앞둔 5일 수원 kt위즈파크. 경기 전 취재진과 만난 트레이 힐만 SK 감독에게 외국인 타자 제이미 로맥(32)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로맥은 5일 전까지 올 시즌 64경기서 타율 2할9리(220타수 46안타), 19홈런, 40타점을 기록 중이다. 타율만 놓고 따졌을 때 합격점을 주기 힘든 수준이다. 첫 선을 보인 5월 한 달 18경기, 타율은 2할4푼2리(62타수 15안타)로 낮았지만 7홈런, 14타점으로 장타력을 뽐냈다.
그러나 6월 들어 타율은 더욱 떨어졌다. 로맥은 6월 26경기서 타율 1할5푼6리에 그쳤다. 6홈런, 12타점으로 여전한 장타 능력을 뽐냈지만 1할대 타율은 주전으로 걸맞지 않았다.
차츰 출전 기회가 줄어들었고 7월 13일 1군에서 말소됐다. 비록 열흘을 채운 뒤 곧장 다시 올라왔지만 갈 길 바쁜 SK로서는 로맥의 부진이 아쉬웠다.
퓨처스리그 충격 요법은 효험이 있었다. 로맥은 후반기 11경기서 타율 3할1푼(42타수 13안타), 5홈런, 11타점으로 부활의 신호탄을 알렸다.
힐만 감독은 5일 경기에 앞서 "스윙 궤적이 달라졌다. 로맥의 스윙으로 커버할 수 있는 스트라이크존이 예전에 비해 넓어졌다. 자연히 존 밖의 공도 커트가 되고 있다"라고 입을 열었다. 이어 그는 "자연히 인플레이 타구 비중이 높아졌다. 타구가 경기장 곳곳에 떨어지고 있다. 이 점이 반등의 가장 큰 요인이다"라고 꼽았다.
한창 이야기를 이어가던 힐만 감독은 취재진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과연 당신이 감독이라면 로맥을 선발로 내세우겠나". 평소 취재진과 허심탄회하게 야구 토론을 즐기는 힐만 감독의 스타일이 묻어나는 물음이었다.
의견은 갈렸다. 힐만 감독은 "다양한 의견이 나오는 게 맞다. 정답은 없다"라고 전제한 뒤 "내가 로맥을 기용하는 이유는 OPS(출루율+장타율)다"라고 언급했다. 로맥은 올 시즌 OPS 0.840을 기록 중이다. 현저히 낮은 타율을 감안하면 수준급이다. 이는 준수한 출루율(.322)과 압도적인 장타율(.518) 덕분이다. 평소 OPS가 공격 생산성을 방증한다고 강조하는 힐만 감독에게 로맥의 낮은 타율은 대수롭지 않았다.
KBO리그에서는 외국인 선수에게 많은 것을 기대한다. 힐만 감독은 "로맥으로서는 문화적으로나 야구적으로나 적응이 어려웠을 수 있다"라며 "KBO리그는 외국인 선수에게 많은 연봉을 안겨준다. 때문에 두 명 이상의 몫을 바라는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로맥은 5월초에 합류했다. 거기에 1군 말소 기간까지 더하면 총 7~8주를 빠진 것이다. 만일 그 기간 내내 뛰었다면 이미 25~30홈런을 때려냈을 것이다"라고 로맥을 두둔했다.
활기찬 토론이 이어지자 힐만 감독은 또 하나의 질문을 건넸다. "30~40홈런을 보장하는 타자가 있다면 라인업에 기용하지 않겠나". 취재진의 대답은 '보장만 된다면 당연하다'였다. 힐만 감독은 너털웃음을 지은 뒤 "맞다. 하지만 야구는 그런 것을 보장하지 않는다"라며 "결국 기용하지 않으면 그 결과를 볼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김동엽과 한동민, 정진기는 물론 나주환도 그런 잠재력이 있는 선수들이다. 기회를 주는 게 당연했고, 결과가 나오고 있다"라고 밝혔다.
힐만 감독은 곧바로 "어떤 스포츠에서든 기회 없이 탄생한 스타플레이어는 없다. 성공한 이들 모두 누군가에게 기회를 부여받았고, 이 점이 성공으로 이어졌다"라고 설명했다. 힐만의 아이들이라고 불리는 이들의 성장배경에는 너무도 당연하지만 공평한 기회가 있었다. /ing@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