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대로 해라’ 이정후 깨운 넥센의 마법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7.08.04 05: 45

“과연 바람의 손자답다. 선천적인 자질을 가졌다. 하지만 아직 고졸 선수다. 약점도 보인다”
지난 2월 오키나와 전지훈련 당시 한 야수 출신 해설위원은 이정후(19·넥센)에 대해 찬사를 보냄과 동시에 냉정하게 보완할 점도 짚었다. 고졸 야수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의 좋은 타격 매커니즘을 가졌지만, 변화구 대처나 수비 등에서는 보완할 점이 있다고 봤다. 그러면서 넥센의 지도자들이 이 좋은 재능을 어떻게 만지느냐를 흥미로워했다. 첫 2~3년에 이정후를 어떻게 잡아주느냐가 선수 경력에 있어 중요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보편론이었다.
그런 이정후는 올 시즌 일찌감치 신인왕을 예약했다. 3일까지 101경기에서 타율 3할3푼8리, 126안타, OPS(출루율+장타율) 0.851이라는 놀라운 성적을 냈다. 역대 신인 야수 중 이정후만한 성적은 1994년 서용빈(LG) 정도에 불과하다. 이정후는 남은 경기에서 서용빈의 아성을 뛰어넘는 KBO 리그의 새 역사에 도전한다. 역사적 신인의 행보를 많은 이들이 주목하고 있다.

그렇다면 넥센 코칭스태프는 어떤 마법을 부린 것일까. 이정후의 잠재력을 깨운 넥센 코칭스태프의 지도력이나 원포인트 레슨이 궁금증을 자아낼 법하다. 그런데 넥센의 설명은 조금 의외다. 넥센 관계자들은 “이정후를 특별히 지도한 부분은 없다. 고친 것도 없다”고 입을 모은다. 조금 과장을 보태면, 그냥 내버려 뒀다는 것이다. 제 아무리 자질이 뛰어난 신인이라고 하더라도 전례를 찾기 힘들다.
넥센의 한 관계자는 “이정후도 아직 기본기가 부족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말한다. 구단도 이정후의 단점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손을 대지 않았다. 이 관계자는 “이정후를 어떤 프레임 속에 가둬두고 싶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섣부른 지도가 이정후라는 좋은 재능을 한 방향으로만 몰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대신 넥센은 이정후가 소신껏 그라운드에서 뛸 수 있도록 했다. 그 결과가 지금의 성과물이다. 역발상이었다.
이정후도 “입단부터 지금까지 코치님들이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하셨다”라고 말했다. 내야 수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이정후 스스로도 너무 잘 알고 있었지만 넥센은 혹독한 펑고 대신 수비 부담이 조금 덜한 외야로 돌려버렸다. 문제를 쉽게 풀어버렸다. 이정후는 “수비가 문제였는데 ‘네 강점은 타격이다’고 하시더라. 그래서 캠프 때부터 수비 훈련보다는 타격 훈련만 많이 했다”고 떠올렸다.
지금도 넥센 코칭스태프는 이정후에게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이정후도 “전혀 없다”고 단언했다. 일각에서는 그것이 넥센 코칭스태프의 장점이라고도 설명한다. 넥센은 타 팀과는 달리 스타 출신 코치들이 많지 않다. 시즌 초에는 비아냥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반대로 스타 출신 지도자들이 흔히 범하는 오류가 없다. 단점을 무조건 고치려고 하지도 않고, 마냥 따라오라고 하지도 않는다. 대신 선수의 장점을 살리는 데만 집중한다.
이처럼 코칭스태프가 만든 판에서 마음껏 뛰어 놀고 있는 이정후다. 그러나 항상 웃을 수는 없다. 놀다보면 상처도 난다. 그런 상처를 보듬어주는 존재는 코칭스태프보다는 선배들이다. 이택근이나 고종욱이 이정후를 많이 돌본다. 두 선수는 이정후가 경기에 많이 나갈수록 자신들의 플레잉 타임이 줄어들 수도 있다. 프로의 세계에서 시샘이 날 수도 있다. 하지만 오히려 적극적으로 이정후를 돌본다. 넥센 팀 분위기의 힘이다.
이정후도 “사실 고등학교 때는 경기가 별로 없었다. 하지만 프로는 매일 경기를 한다. 매일 잘할 수는 없으니 선배님들께서 안 좋은 것은 빨리 잊으라고 말씀하신다. 심리적인 측면에서 많은 도움을 주신다”고 설명하면서 “옆에서 2안타를 치면 3안타를 치려고 노력하고, 3안타를 치면 4안타를 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많이 강조하신다. 덕분에 안주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경기에 집중할 수 있는 것 같다”고 고마워했다. 넥센이 구축한 시스템의 힘일 수 있다. /skullbo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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