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안 좋은데".
지난 6월5일 서산야구장. 삼성과 2군 퓨처스리그 경기에 한화 투수 안영명(33)이 선발등판했다. 관중석에서 그의 첫 공을 본 어느 한 중년 남성이 "오늘 안 좋네"라고 한마디했다. 이날 안영명은 4⅓이닝 4실점으로 이름값에 걸맞지 못한 성적을 남겼다. 안영명이 강판된 뒤 구장을 뒤로 하던 그 남성은 웃고 있었다. "영명이 아버지입니다".
2군에서 인고의 세월을 보냈던 안영명이 1군에 돌아와 구세주로 떠올랐다. 2일 마산 NC전에서 7⅓이닝 1실점 호투로 한화의 3연패를 끊었다. 지난달 27일 사직 롯데전 7⅔이닝 3실점에 이어 2경기 연속 7이닝 이상 던지며 이닝이터로 위력을 떨쳤다.
안영명의 승리는 지난 2015년 10월2일 잠실 LG전 이후 670일 만이었다. 1년10개월만의 승리. 그 사이 안영명에겐 참 많은 일이 있었다. FA 시즌 뜻하지 않은 어깨 수술과 재활로 시즌을 거의 통째로 날렸다. 복귀 후에는 구속 저하라는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과 마주해야 했다.
안영명은 "마지막 승리가 기억이 난다. 그런데 670일이 된 줄은 몰랐다. 오래 됐다"며 "작년에는 정말 힘들었다. FA랑 수술 때문에 주위에서 더 아쉬워했다. 2군이 있는 서산에서 오랫동안 지냈다. 인생 공부 많이 했다. 겸손을 알게 됐다. 야수, 팀, 중간 투수 등 남들을 우해 하려는 마음이 더 생겼다. 올해 초에도 좋진 않았지만, 낙심하지 않고 열심히 했다"고 돌아봤다.
시련의 계절, 안영명을 버티게 한 힘은 아버지였다. 안영명은 "안 좋을 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데 아버지께서 '편하게 하라'고 말씀하셨다. '네가 그렇게 하면 아내도 그렇고, 가족들이 얼마나 힘들고 눈치를 보겠냐. 야구가 전부가 아니다. 행복하게 지내는 게 중요하니 편하게 하라'고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지난 5월말 2군에 내려간 뒤 한 달이 넘는 시간을 보냈다. 이 시간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않았다. 구속에 집착하기보다 다른 무기를 준비했다. 2년 전부터 던지기 시작한 투심 패스트볼을 더 다듬었고, 투구 템포를 훨씬 빠르게 가져갔다. 전반기 막판 1군에 돌아온 안영명은 이전과 다른 스타일로 살길을 찾았다.
안영명의 아버지는 아들이 2군에 있을 때도 경기를 빼먹지 않고 지켜봤다. 안영명은 "아버지가 야구장에 자주 오신다. 승패 상관없이 내가 내려가면 집에 가신다. 형(안영진)도 야구를 했고, 야구를 많이 보셨기 때문에 조언도 해주신다. 오늘(2일)도 '날이 더우니까 중간중간 초콜릿도 챙겨먹고, 스태미너를 관리하라고 하셨다. 아버지의 조언이 큰 힘이 됐다"고 감사해했다.
670일의 기다림, 먼길 돌아온 안영명의 뒤에는 아버지가 있었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