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치가 등판한 18경기서 18실책
107일째 승리 없는 로치에게 미안한 김진욱 감독
4월 19일 이후 어느덧 107일. 이 시간 동안 돈 로치(28·kt)는 승리와 인연을 맺지 못했다. 그럼에도 사령탑은 질책 대신 미안한 감정을 드러냈다.
로치의 마지막 승리는 지난 4월 19일 광주 KIA전. 당시 로치는 7이닝 1실점 쾌투로 시즌 2승(무패) 째를 따냈다. kt는 1군 진입 첫 해인 2015시즌부터 외국인 투수로 골머리를 앓았다. 2015시즌 앤디 시스코와 필 어윈을 시작으로 지난해 요한 피노, 조쉬 로위, 슈가레이 마리몬까지. 그나마 '중고 외인'이었던 크리스 옥스프링, 트래비스 밴와트, 라이언 피어밴드는 제 역할을 다했지만 kt가 새로 데려온 이들은 하나같이 부진했다.
kt는 올 시즌을 앞두고도 외국인 투수 조각에 애를 먹었다. 당초, '1선발급 투수'를 데려오겠다는 야심찬 각오와 달리 지난해 뛰었던 피어밴드가 에이스 역할을 맡게 됐다. 남은 슬롯 한 자리를 채운 이가 바로 로치였다.
로치의 시즌 초는 화려했다. 로치는 첫 6경기서 36이닝을 소화하며 2승2패, 평균자책점 2.75를 기록했다. 시즌 초 피어밴드의 활약과 더불어 "올 시즌 kt가 외인 투수 고민만큼은 덜겠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이게 로치의 첫 인상이었다.
하지만 로치는 이후 갑작스러운 부진에 시달렸다. 로치는 5월 6일 대전 한화전서 6⅓이닝 13피안타(3피홈런) 5실점(4자책)으로 고전했다. 로치가 한 경기서 3자책을 초과한 건 이날이 처음이었다.
이때부터 9경기서 48⅔이닝을 소화하며 승리 없이 6패, 평균자책점 8.14. 시즌 초와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그 사이 두 차례나 1군에서 말소됐다. 물론 두 번 모두 열흘 남짓 만에 1군에 돌아오긴 했지만 kt가 내리막을 타기 시작한 때라 아쉬움이 컸다. 이게 로치의 두 번째 얼굴이었다.
퇴출설이 솔솔 나오던 상황. 로치는 다시 낯빛을 바꿨다. 로치는 전반기 마지막 등판이던 7월 13일 수원 삼성전서 5이닝 5피안타 2실점으로 쾌투했다. 앞서 언급한 5월 6일 한화전 이후 로치가 2실점 이하로 상대 타선을 억제한 건 이날이 처음이었다.
로치는 그때부터 3경기서 17⅓이닝을 소화하며 승리 없이 2패, 평균자책점 1.56을 기록했다. 표본이 적긴 하지만 같은 기간 규정이닝을 채운 선발투수 중 평균자책점 4위에 오를 만큼 빼어난 흐름이다. 지금이 바로 로치의 '세 번째 얼굴'을 확인하는 시기다.
김진욱 kt 감독은 로치의 최근 맹활약을 두고 "너무 늦게 살아났다. 참 타이밍이 안 맞는다"라고 쓴웃음을 지었다. 로치가 부진했던 5월부터 6월까지 kt는 급격한 내림세를 띄었다. 만일 로치가 시즌 초나 최근의 모습을 보였다면 그 내리막에 조금은 제동이 걸렸을 터.
그러면서도 김진욱 감독은 로치를 두둔했다. 김 감독은 "로치가 등판하는 경기에 유독 실책이 잦다. 감독으로서 미안하다. 문제는 그 실책이 곧장 실점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라고 진단했다. 이어 김 감독은 "로치가 아직 젊어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실책에도 의연한 모습이다"라고 칭찬했다.
실제로 kt는 올 시즌 71개의 실책을 기록했는데, 로치가 등판하는 날 18개가 집중됐다. 로치가 18번 선발등판했으니, 경기당 한 개 꼴이다. 실제로 18번의 등판 중 무실책 경기는 5차례에 불과했다. 때문에 100일 넘게 승을 챙기지 못한 선발투수에게 따끔한 질책보다 미안함을 먼저 내비친 것이다.
로치가 kt가 바라던 '1선발급 투수'는 분명 아니다. 하지만 조금씩 성장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ing@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