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 희동".
지난 1일 마산 한화전. NC 외야수 권희동(28)은 7회말 선두타자로 나와 한화 투수 송창식의 초구 가운데 높은 125km 슬라이더를 잡아당겨 좌측 담장을 넘겼다. 비거리 115m, 시즌 14호 홈런. 승부를 4-4 원점으로 만든 한 방으로 7-6 역전승의 발판이 됐다.
권희동이 홈런을 치고 덕아웃에 들어온 뒤였다. 동료들의 축하를 받고 앉아서 쉬던 권희동에게 외국인 타자 재비어 스크럭스(30)가 다가섰다. 스크럭스는 통역을 대동해 권희동과 무언가 이야기를 나눴다. 진지한 자세로 봐선 타격에 관한 내용인 것 같았다.
하지만 뜻밖에도 스크럭스는 권희동에게 사과의 뜻을 전한 것이었다. 권희동은 "스크럭스가 앞선 이닝(6회) 홈에서 죽어 미안하다고 했다. 그게 아니었다면 만루 홈런이 됐을 텐데 솔로 홈런이 된 것이라며 미안해 하더라"고 둘이 나눈 대화 내용을 전했다.
앞선 6회말 2사 만루 권희동 타석에서 스크럭스는 3루 주자였다. 권희동은 송창식과 8구까지 가는 승부를 벌였다. 송창식의 8구째 공이 원바운드되며 뒤로 빠진 사이 3루 주자 스크럭스가 홈으로 파고들었지만, 한화 포수 차일목의 빠른 후속 플레이와 송창식의 홈 커버에 막혀 아웃됐다. 찬스에서 득점 없이 이닝 종료.
비디오 판독을 요청하며 홈 충둘 방지법으로 판정 번복을 노렸지만 원심 그대로 유지됐다. 권희동은 만루 찬스에 방망이 한 번 제대로 휘두르지 못하고 물러났다. 7회 동점 솔로 홈런을 폭발했지만 스크럭스는 못내 마음에 걸렸다. 기쁨을 나누는 와중에도 권희동에게 진심 어린 사과로 동료애를 드러냈다.
이에 권희동은 "괜찮다. 네 덕분에 홈런을 친 것이다. 만루 상황에선 홈런을 치지 못했을 것이다. 네가 객사해서 홈런 쳤으니 오히려 내가 고맙다"며 스크럭스를 격려했다. 권희동은 "스크럭스가 홈구장 라커룸 옆자리에 있다. 평소 서로 장난을 많이 치고, 편하게 지내는 사이"라며 웃어보였다.
에릭 테임즈의 대체자로 NC 유니폼을 입은 스크럭스는 올 시즌 71경기에서 타율 2할9푼6리 80안타 22홈런 69타점 56득점 OPS .995로 활약하고 있다. 빼어난 실력만큼 인성과 융화력을 인정받고 있다. 본의 아닌 실수라도 동료에게 사과할 줄 아는 선수가 바로 스크럭스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