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벌떼 야구’로 명성을 떨쳤던 SK 불펜이 터널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 지속된 주축 선수들의 이탈, 지지부진한 새 얼굴 등장, 그리고 벤치의 깔끔하지 않은 운영까지 겹쳐 한계에 이르렀다는 평가다. 그럴수록 장기적인 시각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SK는 30일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롯데와의 경기에서 2-3으로 역전패했다. 2-1로 앞선 9회 또 블론세이브가 나오며 역전을 허용했다. 7연패 후 2연승으로 반등하는 듯 했던 SK는 이날 승리한다면 연패 후유증을 확실히 지울 수 있었다. 그러나 찜찜하게 한 주를 마감했고, ‘불펜 불안’이라는 문제점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박정배 신재웅이 연투를 해 이날 투입은 다소 어려웠던 상황이었다. SK 벤치의 선택은 이번 주 악몽의 시간을 보냈으나 충분히 휴식을 취한 박희수였다. 9회 좌타자들인 나경민 손아섭을 상대하기 위해 마운드에 올랐다. 그러나 나경민과의 끈질긴 승부는 볼넷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손아섭 타석 때는 제구가 흔들리며 몸에 맞는 공이 나왔다.
SK는 대기하고 있던 김주한으로 투수를 바꿨으나 김주한도 이대호에게 몸에 맞는 공을 내줘 무사 만루에 몰렸다. 결국 전준우에게 우익수 옆에 떨어지는 적시 2루타를 맞고 역전을 허용했다. SK는 문광은이 바턴을 넘겨받아 추가 실점을 막았으나 이미 분위기는 롯데 쪽으로 넘어간 상태였다. SK의 시즌 팀 17번째 블론 세이브.
SK의 블론세이브는 리그에서 가장 많다. SK는 지난해 시즌 전체를 통틀어서도 12번의 블론세이브를 기록했지만, 올해는 100경기 만에 이를 훨씬 뛰어넘고 있다. SK는 올 시즌 25번의 역전패를 당해 이 부문 3위다. 1위는 9위 한화(34패), 2위는 10위 삼성(32패)이라는 점에서 ‘3위’라는 순위는 더 뼈아프다. 또한 SK는 7회까지 앞선 경기에서의 승률이 8할5푼4리(41승7패)로 리그 최하위다.
점수차가 꽤 나는 상황에서는 불펜이 그럭저럭 버티지만, 아주 급박한 상황에서 무너지는 것도 문제다. 1~2점차 상황이라면 마지막까지 안심할 수 없다. 이것이 팀 전체에 주는 압박감은 상당할 수 있다. 선발 투수는 물론, 포수나 야수들까지 ‘불펜 불안’을 염두에 두면 결코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없다.
SK의 불펜 전력은 계속 이탈했다. 왕조를 이끌었던 정대현, 이승호, 정우람, 윤길현은 모두 프리에이전트(FA) 자격을 얻어 팀을 떠났다. 선수들의 이적이 어쩔 수 없다면, 새로운 피를 집중적으로 육성했어야 했는데 그러지도 못했다. 성적 우선 속에 기존 선수들을 중용한 결과였다. 그 결과 올해도 SK 불펜의 핵심인 여전히 30대 선수들이다. 20대 필승조 선수라고 해봐야 김주한 정도다. 개막 마무리이자 팀의 차기 마무리로 의심의 여지가 없는 서진용은 짐을 이겨내지 못하고 부진했다.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다보니 트레이 힐만 감독의 투수 교체 및 운영도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사실 투수교체야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SK 불펜은 올 시즌 유독 결과가 좋지 않다. 한 해설위원은 “메이저리그야 불펜투수들을 1이닝씩 끊어 쓰지만, 한국은 좌우 타자를 모두 버틸 수 있는 1이닝 셋업맨의 수가 MLB보다 상대적으로 적다. 적절하게 끊어 가는 것이 중요한데 결과적으로 그렇지는 못한 것 같다”고 짚었다.
현재 투수교체는 힐만 감독은 물론, 데이브 존 투수코치, 그리고 박경완 배터리코치까지 몇몇 코치들이 모여 최선의 방안을 도출하고 있다. 주로 존 코치가 주도하고 힐만 감독이 승인하는 모양새인데, 특히 집단 마무리 체제를 채택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좀 더 주도면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선수 개인 각자의 특성과 장점을 최대한 살려줘야 한다는 의견은 설득력을 얻는다. ‘쓰는 선수만 쓰는’ 운영은 지난해 결국 실패했고 불펜 세대교체에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특정 선수들에 대한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는 점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불안요소다. 6월 이후 박정배와 김주한에 대한 의존도가 비정상적으로 커지고 있다. 결국 문광은 신재웅의 분전, 박희수 서진용의 부활, 그리고 정영일이나 채병용과 같은 전력들이 1군에서 힘을 내야 한다. 숱한 전력 이탈에도 항상 리그 평균 정도의 힘은 발휘했던 SK 불펜이 저력을 선보여야 팀도 산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