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 어제 경기 봤능가? 진줄 알고 테레비를 껐는디 이겨부렀더만!".
요즘 타이거즈 팬들에게 KIA의 어제 야구는 아침 인사이다. 광주의 아파트 단지는 KIA가 극적으로 이기면 환호성이 터진다. 10번째 우승을 달성한 2009년 이후 처음 빚어지는 현상이다. 광주-기아 챔피언스필드는 연일 관중들로 북적인다. 100만 명 관중도 시야에 두고 있다. 지다가 뒤집는 역전극도 1등. 그래서 KIA 경기는 영화보다 재미있다는 말도 나온다. 그 KIA 극장을 이끈 주인공 몇몇을 뽑아보았다.
#SCENE 1 '캡틴의 부활'
작년 생애 최고의 기록을 남겼다. 주장 완장도 찼다. 두 번째 FA도 기다렸다. 헌데 4월 타율 1할8푼3리, 5월은 1할4푼3리. 절정의 타격을 기대했던 이들에게는 믿기지 않는 성적표였다. 도무지 타이밍을 맞출 수 없었다. 그러더니 손목 통증으로 빠졌고 6월초 복귀했다. 더 믿기지 않은 일은 그때부터 일어났다. 6월 타율 4할3푼5리, 7월 타율 3할8푼4리. KIA 핵타선의 결정적인 동력을 제공했다. 후반기는 더 세다. OPS가 무려 1.138. 쳤다하면 홈런이요 2루타. 거기에 득점타까지. 타율도 어느덧 3할을 넘보고 있다. 볼을 끝까지 보자 수박만하게 커졌다. 캡틴의 부활 드라마에 KIA 타선이 들썩였다.
#SCENE 2 '쌍날개'
지난 4월 SK와의 트레이드 발표가 나오자 포수 김민식에 대한 기대는 있었다. 그러나 주전으로 이 정도로 활약을 할 것인지는 몰랐다. 인천 토박이 외야수 이명기도 2년 전 3할 타자였지만 활약 가능성에 대해서는 반신반의했다. 그러나 두 선수는 물 만난 고기들이었다. 김민식은 도루 저지율 1위의 어깨와 볼배합, 수비력까지 KIA가 학수고대하던 바로 그 포수였다. 평소에는 부진한 타격을 하다가도 찬스만 되면 방망이도 잘 돌렸다. 이명기도 값진 보석이었다. 김기태 감독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1번타자로 자리를 잡더니 7월까지 3할3푼2리의 타격으로 타선을 이끌었다. 두 선수는 KIA 선두 비상의 양날개였다.
#SCENE 3 '껌 좀 씹는 남자'
안타를 치면서도 입에서 풍선이 나온다. 1루를 향해 전력질주하며 베이스를 터치하는 순간에도 풍선은 얼굴만해진다. 껌 씹는 사나이 버나디나도 부푸는 풍선 만큼이나 드라마 시청률을 높였다. 초기에는 미운 오리였다. 도무지 타구가 내야를 벗어나지 않았다. 땅볼 아니면 삼진. "이거 바꿔야 하나"라고 고민에 빠진 순간, 김기태 감독이 결단을 내렸다. "너 그냥 1번 계속해!". 그때부터 밤낮으로 꾸준히 타격훈련을 해오던 버나디나의 눈빛과 스윙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결승타만 9개. 3할 타율에 올라섰고 홈런 3개를 터트리면 '20-20'을 넘보는 호타준족으로 돌변했고 타순도 3번으로 승격했다.
#SCENE 4 '위대한 도전'
거의 기마자세나 다름 없는 타격자세. 포수와 높이가 똑같다. 투수들이 헤갈릴수도 있겠다 싶다. 군대가기전 밀어치기만 하는 꼬마 선수가 아니었다. 좌우로 안타를 쏟아내더니 타격 1위(.378)에 올랐다. 잔펀치만 있는게 아니다. 넘어가는 경기도 가져오는 훅도 있다. 거구의 투수들이 김선빈을 상대하느라 쩔쩔 매는 풍경 자체가 재미를 가져다준다. 여기에 안정된 수비까지. 김선빈이 있기에 KIA가 선두를 질주한다는 말을 듣고 있다. 삼성 김성윤이 등장해 최단신 칭호를 넘겨주었지만, 이제는 위대한 도전을 하고 있다. 최단신 타격왕이다. 야구는 신장이 아니라 심장으로 한다는 말을 실감하게 만든다.
#SCENE 5 '승데렐라'
선발진이 구성이 여의치 않았다. 세 번째 단추까지는 튼튼했지만, 네 번째와 다섯 번째 단추는 부실했다. 그렇치않아도 불펜이 허약한데 선발진이라도 강해야했다. 좀 나이먹은 신인 배우 하나가 등장했다. 사이드암 임기영. 어디로 떨어질지 모르는 체인지업과 춤추는 직구로 타자들을 잡았다. 완봉승 2번과 7승을 따내고 믿고 보는 선발로 변신했다. 그러나 폐렴 증세로 빠졌다. 그 순간 또 한 명의 신스틸러 정용운이 등장했다. 9년만에 선발투수 나선 8경기에서 3승을 따냈다. 모두 팀이 위기에 빠질때 거둔 값진 승리였다. 마운드에서 "그래! 한판 붙자"는 얼굴 표정. 더 이상 새가슴이 아니었다. 정용운이 선발로테이션에 가담한 이후 등판한 9경기(구원 1경기 포함)에서 팀은 8승1패. 승데렐라의 출현이었다.
#SCENE 6 '빨간 선글라스'
갑자기 빵 터졌다. 감독이 빨간색 선글라스를 쓰고 더그아웃에 등장했다. 선수들 사이에서 키득키득 웃음이 터져나왔다. TV를 보던 팬들은 더 빵 터졌다. 세상에 체통을 지켜야 할 감독이 빨간색 선글라스라니. 그런데 묘하게 어울렸다. 빨간색 모자와 빨간색 유니폼, 게다가 경기가 팽팽하면 봉숭아처럼 붉게 물드는 얼굴색까지. 빨간색 4단 콤보는 승리의 징크스를 가져왔다. 빨간색 선글라스를 쓰는 시점부터 팀이 승승장구했다. 질풍노도의 기세로 상대를 압도하는 경기력으로 선두를 질주했다. 그래서 붙여진 별칭이 '빨간 선글라스의 마술사'. 이런 말을 들을때마다 김 감독의 얼굴은 또 붉게 물든다. /KIA타이거즈 담당기자 sunn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