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프로야구의 원년부터 참가한 롯데 자이언츠라는 구단의 역사에 전설로 남을만한 인물들은 여럿 있었다. 1984년 창단 첫 우승을 안겨준 ‘무쇠팔’ 故 최동원, ‘자갈치’ 김민호, ‘호랑나비’ 김응국, ‘악바리’ 박정태, ‘마지막 신인왕’ 염종석까지. 롯데 구단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인물들이다. 그러면 2000년대 중후반과 2010년대 롯데를 상징하고 ‘구도’ 부산의 사랑을 받은 아이콘을 꼽자면 누가 있을까. 바로 안방마님 강민호(32)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강민호는 이제 롯데 프랜차이즈 역사를 바꿀 기록을 눈앞에 두고 있다.
지난 2004년 신인지명회의 2차 3라운드 전체 17순위로 롯데에 지명된 강민호는 올 시즌 7월30일 문학 SK전까지, 통산 1454경기를 나섰고 김응국이 갖고 있는 롯데 구단의 최다 출장 기록과 타이를 이뤘다. 이제 1경기만 더 치르면 강민호는 1455경기에 출장, 롯데 구단의 최다 출장 선수 1위로 올라서게 된다. ‘프랜차이즈 역사’를 다시 쓰는 것. 롯데맨으로 청춘을 보낸 강민호는 롯데 프랜차이즈 역사의 한 페이지에 자신의 이름을 아로새길 것이라는 사실에 뿌듯해 하고 있다.
그는 “올 시즌을 앞두고 기록을 우연치 않게 확인했다. 올 시즌을 하면서 경신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지금 같은 날이 오니까 ‘롯데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정말 많이 뛰었나’ 싶기도 하고 감회가 새롭다”면서 “세월이 이렇게 지났나 싶기도 한다. 아직 경기할 수 있는 날이 많이 남았는데 벌써 기록을 깨면 앞으로 제 기록을 깰 수 있는 사람이 나올까 싶기도 하다. 기분이 좋다”고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강민호는 신인 시즌이던 2004년과 2009년, 2014년, 3시즌을 제외하면 모두 100경기 이상 출장할 만큼 꾸준했다. 89경기를 나서고 있는 올 시즌 역시 100경기 이상 출장이 확실시된다. 가장 힘든 포수로서 구단 기록에 도전하게 된 비결에 대해선 “2009년에 한 번 팔꿈치 부상이 있었고 작년에 무릎 부상 있었지만 그래도 큰 부상은 없었다. 또 2013~2014시즌, 당시에는 야구를 잘 못했을 때 경기를 피하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러나 욕을 먹더라도 계속 감내하고 뛰었던 것이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비결이 되지 않았나 생각 한다”고 답했다.
지난 2004년 신인 시즌, 9월 확대 엔트리때 1군에 첫 출장한 뒤 올 시즌까지 달려온 14년간 그에게 많은 훈장이 생겼다. 포수로서 최초로 타율 3할-30홈런을 달성했고, 국가대표 안방마님의 칭호도 얻었다. 또한 포수로서 프리에이전트(FA) 자격을 얻고 한때 최고 금액 계약 선수(4년 총액 75억 원)로 이름을 남기기도 했다. 강민호가 롯데에서 이룬 업적 자체가 김동수(현 LG 퓨처스팀 감독), 박경완(SK 배터리 코치) 등 전설의 포수들과 어깨를 견줄 만하다. 강민호 스스로도 이젠 전설을 목표로 더욱 정진하고 있다.
그는 “정말 예전부터 생각했던 것인데 포수 최다 출장 기록(2043경기), 포수 최다 홈런 기록(314홈런·이상 박경완) 모두 깨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도 몸 관리 잘해서 좋은 포수로 기억이 되고 싶다”며 “지금까지 해온 것 보다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 롯데에서 2000경기를 넘어서 포수 최다 출장 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는 의욕을 보였다. 최다 출장 기록은 약 500경기 정도 남았고, 최다 홈런 기록도 현재 213홈런을 기록하고 있기에 약 100개 남짓 남았다. 강민호의 바람처럼 몸 관리를 충실히 한다면 향후 5년 내에 기록 경신이 유력하다. 그래도 강민호는 여전히 30대다.
강민호가 입단한 이후 롯데는 흥망성쇠를 거듭했다. 강민호가 입단했을 시기, 롯데는 암흑기였지만, 2008년부터 최고의 중흥기를 맞이했고 강민호도 그 중심에 있었다. 그리고 현재까지 변함없이 롯데 유니폼을 입고 안방을 지키고 있다. 간판이었던 이대호는 해외 진출을 한 뒤 7년 만에 올 시즌 돌아왔고, 동갑내기 장원준은 FA 자격을 얻어 팀을 떠났다. 강산이 변하는 세월동안 희노애락을 같이했던 이들 가운데 강민호만이 오롯이 사직구장을 지키고 있다. “오랜 시간을 있었기에 참 많은 생각이 든다. 야구장이 꽉 찼을 때도 사직구장에 있었고 팀이 인기가 없을 때도 그대로 있었다”며 감회에 젖은 강민호였다.
그 사이 그는 어엿한 고참이자 어린 선수들의 롤모델로 성장했다. '포스트 강민호'라는 칭호가 붙은 신인 나종덕은 강민호를 롤모델로 삼고 있다. 또한 어린 투수들이 많아진 팀을 이끌어야 하는 중책까지 맡고 있다. 어린 투수들의 성장에 강민호 본인 역시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그는 “어린 투수들이 많으니까 내가 이끌어야 하는 입장이다. 그 친구들이 팀에 힘이 되기 위해서는 제가 해야 하는 역할이다. 웬만하면 부담을 안 주려고 하고 있는데, 잘 따라와 주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롯데 유니폼을 입고 많은 성과를 이룬 강민호지만, 아직까지 그에게 목마른 것이 있다면 바로 롯데의 우승이다. 올 시즌 역시 가을야구의 문턱을 쉽게 넘지 못하고 있는 상황. 그는 “이제는 롯데 선수로서 기록보다는 우승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면서 “올 시즌도 지금이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하고 있다. 선수단도 5할에서 왔다 갔다 하고 있는데, 제 몸 관리보다 팀의 5할은 물론 5강까지 생각하고 달려가고 있다”며 말에 힘을 실었다.
“롯데에 강민호”로 시작되는 그의 응원가처럼 강민호는 정말 롯데를 대표하는 ‘프랜차이즈 스타’가 됐고, 롯데를 논하는데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됐다. 그리고 강민호가 쓰고 있는 역사의 기록에 아직 마침표는 찍히지 않았다. /롯데 담당 기자 jhrae@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