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수(59) 전 감독은 아마도 프로야구 밖에 있는 야구계 인사 중 가장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인물일지 모른다. 프로야구 감독직에서 떠난 뒤 국내외를 오가며 야구의 씨앗을 뿌리려는 노력에 여념이 없다.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으며 현역 생활을 한 만큼, 이제는 그것을 풀뿌리 야구로 돌려줘야 한다는 것이 이 전 감독의 지론이다.
라오스 야구의 선구자로 최근 라오스야구협회 부회장에 오르기도 한 이 전 감독은 국내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클럽 야구를 주제로 한 TV 프로그램에도 출연 중이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야구 재능기부 행사는 그보다 훨씬 더 많다. 전국 어디에서나 필요로 하는 것은 달려간다. 일주일 일정이 빡빡한 이유다. 그 외에도 배명고에 피칭머신을 기증하는 등 후원에서 앞장서고 있다.
그런 이 전 감독은 최근 활동에 큰 보람과 재미를 느낀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야구 인프라에 대한 아쉬움도 커지고 있다. 예전에는 몰랐는데, 직접 현장에 가보니 야구 인프라가 너무 부족한 것이 눈에 들어온다. 미국에서 오랜 기간 코치 생활을 했던 이 전 감독이기에 그 체감 격차는 더 크다. 한국야구가 강해지려면 유소년 야구를 비롯한 체육 활동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하는데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최근 인천 서흥초등학교 사태도 이 전 감독의 가슴에 박혔다. 송은범 최지만 등을 배출한 야구 명문인 서흥초등학교는 최근 야구부 존폐를 놓고 논란이 일었다. 학교 측은 폐지를 공식화한 것이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사실상 폐지 움직임이라며 존치를 주장하는 학부모 사이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위장전입 등도 문제가 되지만, 역시 운영비와 학교가 야구부를 보는 시선 등 여러 가지 갈등의 요소가 있다”고 말했다.
서흥초등학교는 이만수 전 감독의 현 거주지인 인천 연고다. 이 전 감독이 학부모들의 요청에 따라 흔쾌히 몇 차례나 재능기부를 했던 곳이다. 이 소식을 들은 이 전 감독은 최근 서흥초등학교장과 면담을 갖는 등 중재 노력을 하고 있다. 다만 뾰족한 해결의 방법이 없어 걱정이다. 이 전 감독은 “양쪽의 의견을 모두 들었다. 학부모님들의 마음도 이해가 되고, 학교 측의 설명도 들었다. 의견차가 좀 깊은 것 같았다”고 안타까워했다.
이 전 감독은 “서흥초등학교가 예전에는 인천 중심가에 있다가 이제는 구도심이 됐다. 학생들도 많이 줄고, 학교 측의 생각도 있었다”라고 조심스럽게 말하면서 “재능기부 활동으로 애착이 가는 학교고 현재는 시즌 중간이라 학생들이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갈 수도 없다. 이런 사정을 잘 헤아려 달라고 학교 측에 요청했다. 명문학교고 역사도 37년 정도 됐다고 하더라.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
전국을 누비다보니 비단 서흥초등학교의 일만은 아니라는 게 이 전 감독의 이야기다. 흔히 말하는 엘리트 초등학교 야구부는 리틀야구에 밀려 계속 사라지는 추세다. 이 전 감독은 “학생들이 꼭 프로선수가 되라는 법은 없다. 중학교에 가서 공부를 해도 된다. 운동을 통해 조직과 협동, 희생을 배울 수 있다. 이는 사회생활에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리틀야구 활성화는 반가운 일”이라고 전제하면서도 “그럼에도 엘리트 육성 초등학교가 전국적으로 많이 사라지는 추세다. 피라미드형이 되어야 하는데, 나중에는 프로에까지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짚었다.
이 전 감독은 “서흥초등학교장님께도 이런 이야기를 했다. 중국에는 2020년까지 프로팀이 6개가 생길 예정이다. 2025년에는 20개 팀 체제로 간다는 계획이다. 이는 야구선수를 지망하는 학생들에게는 희망적이다. 시장이 넓어지고, 꼭 프로가 아니더라도 공부를 해 행정으로 갈 수도 있다”라면서 “여전히 운동부라고 하면 삐딱한 시선을 가진 분들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윗분들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전 감독이 고된 일정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전국의 학교를 찾아가는 하나의 이유이기도 하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