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쎈 인터뷰] ‘올해의 재발견’ 나주환의 역전 만루홈런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7.07.06 13: 01

그는 왕조의 주전 유격수였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러나 좋은 시절이 계속 가지는 않았다. 어느덧 2군행을 피해야 할 신세가 됐다. 조금 지나니 1군에 오르는 것이 목표가 됐다. 그리고 그 다음은 은퇴를 생각해야 할 처지가 됐다. 세월무상이라고 하지만, 모든 추락이 너무 빨리 이뤄졌다.
왕조의 유격수에서 초라한 2군 선수가 된 나주환(33·SK)은 2017년이 시작될 때까지만 해도 큰 위기에 몰려 있었다. 예전에는 “같은 값이면 경험이 많은 베테랑을 쓰는 것이 좋다”는 인식이었다. 그러나 ‘육성 바람’이 분 KBO는 어느덧 “같은 값이면 미래를 위해 어린 선수들을 쓰는 것이 좋다” 쪽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나주환은 직격탄을 맞았다. 여기에 잦은 부상까지 겹쳤다. 그러자 누구도 주목하는 이가 없었다. 과장을 좀 보태면 ‘꺼진 불’이었다.
나주환도 이를 인정한다. 나주환은 “올해 한 번 정도 더 해보고 안 되면 미련 없이 그만두자는 생각으로 시즌을 시작했다”고 담담하게 떠올린다. 스스로도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나주환은 결코 ‘꺼진 불’이 아니었다. 이제 꺼진 불을 다시 본 SK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누구보다 활활 타오르는 나주환은 이제 팀에서 없어서는 안 될 선수로 재도약했다.

나주환은 올해 SK의 영웅이다. 최정이나, 한동민과 같이 나주환보다 더 화려한 성적을 낸 선수가 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팀 공헌도는 단연 으뜸이다. 유격수와 2루수를 오가는 활용도만으로도 그 가치가 충분한데, 타격까지 좋다. 나주환은 5일까지 71경기에서 타율 3할6리, 12홈런, 43타점을 기록 중이다. 여기에 중요한 상황에서 발군의 기량을 선보인다. 표면적인 성적보다 가치가 더 높다. 5일 인천 KIA전 8회에 터뜨린 결승 싹쓸이 3루타는 상징적이다.
기술적으로 달라진 부분이 있었다. 항상 타격폼을 연구하는 나주환은 지난해 말 현재의 타격폼을 찾았다. 오른손이 지나치게 타구를 덮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왼팔을 옆구리에 붙였다. 그러다보니 발사각이 좋아지면서 장타 생산력이 급증했다. 나주환의 올 시즌 장타율은 무려 0.534에 이른다. 중앙 내야수로서는 최정상급이다. 보통 베테랑 선수들은 오랜 기간 이어온 자신의 타격에 안주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나주환은 부단한 노력을 통해 역전 만루홈런의 발판을 만들었다.
군 복무 이후 팀에서 자리를 잡지 못했던 나주환이었다. 나주환은 “그간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밑에 후배들이 치고 올라오는 것에 대한 압박감도 있었다”라면서 “올해는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오히려 홀가분했다. 다른 시즌보다 마음을 편하게 먹고 준비했다. 기회가 왔을 때 그 기회를 잡은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베테랑들의 경험이 과소평가되는 부분은 아쉽지만, 그런 현실을 일찌감치 받아들인 것이 오히려 반등의 발판이 됐다는 생각이다.
그런 나주환은 들뜨지 않고 묵묵히 갈 길을 가겠다는 생각이다. 나주환은 올해 목표에 대해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지 않는다. “계속 경기에 나가고 싶다”는 원론적인 이야기조차도 없다. 단지 “후배들에게 긴장감을 주고 싶다”고 말한다. 자신이 팀 내 경쟁의 촉매제가 되고, 그 경쟁을 통해 팀이 한 단계 발전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고 말한다. 벼랑 밑을 한 번 쳐다봤던 아찔한 경험 때문일까. 어린 시절 느끼지 못했던 감정을 말하는 나주환의 목소리는 한층 성숙되어 있었다.
나주환은 “사실 어린 시절에는 경기에 나가는 것이 이렇게 중요한지 잘 몰랐다. 그런데 이제는 정말 한 경기 한 경기가 중요하다. 언제 야구를 그만둘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 때까지는 후배들에게 주전 경쟁과 리빌딩에 대한 경쟁의식을 불어넣어주고 싶다. 남은 시즌에도 그런 목표를 가지고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올해의 재발견’이 SK를 더 강하게 만들고 있다. /skullbo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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