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워도 비워도 끝이 없는 게 사람의 욕심이다. 펴도 펴도 끝이 없는 게 어깨를 짓누르는 부담감이다. 매 경기가 전쟁인 프로스포츠에서는 이를 어떻게 제어하느냐가 선수의 경기력으로 직결된다. 올 시즌 한동민(28·SK)은 가장 근사한 예다.
한동민은 시즌 초반 출발이 좋지는 않았다. 사실 지난해 11월 가고시마 캠프부터 시작, 플로리다와 오키나와를 거치는 훈련 기간 동안 가장 얼굴 표정이 어두운 선수가 한동민이기도 했다. 주위에서는 “엄청 좋다”라고 칭찬해도 한동민은 자신의 타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제 제대도 했으니 더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느꼈다. 더 이상 도피할 곳이 없었다. 그런 부담감은 한동민의 스윙을 무디게 했다.
그때 한동민은 비움을 선택했다. 쿨하게 “안 되면 2군에 가면 된다”고 마음먹었다. ‘에라 모르겠다. 그냥 해보자’는 생각이었다. 놀랍게도 그때부터 안타가 나오기 시작했다. 안타가 나오다보니 홈런도 나왔고 그렇게 리그에서 가장 먼저 20번째 홈런을 친 타자가 됐다. 하지만 그 후 또 한 번 고비가 왔다. 이번에는 부담감이었다. 타구에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6월 14일부터 6월 말까지 15경기에서 홈런은 딱 1개였다.
한동민은 “사실 내 스스로는 ‘그래, 안 맞을 때도 됐다. 비우고 다시 시작하자’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전까지 해놓은 게 있어 어느새 기대치는 많이 높아졌더라. 그러다보니 동정 아닌 동정의 시선도 느꼈다. 그 자체가 부담이 됐다”고 담담하게 털어놨다. 장타가 나오지 않다보니 스스로 고민도 했고, 정경배 코치와 많은 의논을 하기도 했다. 시즌 중반에 찾아온 고비였다. 이기지 못하면 완주는 힘들었다.
하지만 한 번 ‘비움의 미학’을 깨달은 한동민은 또 다시 이를 이겨냈다. 한동민은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부터 공이 하나씩 뜨기 시작하더라. 마음을 비우고 다시 시작했다”고 떠올렸다. 그런 한동민은 최근 홈런 페이스에 다시 불이 붙었다. 7월 2일 삼성전에서 모처럼 홈런을 친 한동민은 5일 KIA전에서는 시즌 2번째 멀티홈런을 기록하며 살아나는 감을 알렸다. 이날 기록한 5타점은 개인 한 경기 최다 기록이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시즌이 흘러가는 사이, 한동민은 눈부신 ‘타이틀’을 하나 달았다. 바로 올스타 선정이다. 5일 발표된 KBO 올스타전의 감독 추천 선수로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팬 투표에서 밀린 아쉬움을 만회했다. 한동민은 이에 대해 “가문의 영광이다. 퓨처스 올스타전에서는 뛰어봤지만, 1군 올스타는 처음이라 남다르다”고 웃었다.
한동민은 이런 올 시즌의 여정이 꿈이라고 말한다. 한동민은 “1군에서 풀타임을 소화하는 것, 지금 이런 기록을 내고 있는 것, 그리고 올스타에 선정된 것까지 모두 다 꿈만 같은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들뜨지는 않는다. 지금 이 순간도 욕심과 부담감을 비우기 위해 더 진지하게 야구에 달려들고 있다. 한동민은 “앞으로 안 좋을 때가 찾아와도 욕심을 버리고 잘 대처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한동민이 시즌 종료 후 당당히 “꿈이 아닌 현실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