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의 새 안방마님 김민식(28)은 요즘 남모를 고충을 겪고 있다. 프로데뷔 후 가장 많은 출전 시간을 소화하면서 생기는 일종의 부작용이다. 체력적으로 쉽지 않은 시기를 보내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김민식의 한 시즌 최다 출장은 지난해 88경기였다. 그것도 백업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주전 포수로 거의 매 경기에 나간다. 경기에 나선다는 것은 분명 즐거운 일이지만 체력 관리의 중요성이 커졌다. 시즌 초반에 비해 체중도 2㎏ 정도 빠졌다. 게다가 가족과 떨어져 생활하는 시간이 길어지며 생기는 외로움도 무시할 수 없다. 아내와 아이의 모습이 하루에도 몇 번씩 눈가를 스치고 지나간다.
이보다 더 힘든 것은 어깨를 누르는 중압감이다. 지난 4월 SK와 KIA의 4대4 트레이드 당시 핵심 카드였던 김민식은 곧바로 팀의 주전 포수 자리를 차지했다. SK에 있을 때는 주전 포수 이재원이 있었다. 차라리 심리적 부담감은 크지 않았다. 기댈 곳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팀 성적을 좌우하는 위치에 있다. 팀 성적이 좋지만 마냥 마음이 편한 것은 아니다. 그럴수록 이 흐름을 이어가야 한다는 부담감이 커진다.
4일 인천 SK전을 앞둔 김민식은 잔뜩 긴장한 표정이었다. 이날 KIA 선발은 올 시즌 12승 무패를 기록 중인 에이스 헥터 노에시였다. 에이스와 호흡을 맞추면 부담이 덜할 법도 한데, 김민식은 절대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다. 오히려 헥터이기에 지면 타격이 크고, 때문에 신경이 더 쓰인다는 것이었다. 김민식은 “에이스가 나오는 날에 지면 다 내 잘못인 것 같다. 헥터가 1회부터 전력투구를 해줬으면 좋겠다”고 껄껄 웃으며 경기 장비를 챙겼다.
하지만 김민식은 자신을 행운아라고 자청했다. 이유가 있었다. 좋은 투수들과 호흡을 맞출 기회가 잦은 까닭이다. 포수로서는 엄청난 경험이다. 김민식은 “오늘 선발로 나서는 헥터와 메릴 켈리의 공을 모두 받아봤다. SK에 있을 때는 (김)광현이형의 공도 받았고, 여기에서는 (양)현종이형의 공도 받는다. 두 명 모두 국내 최고 투수 아닌가”라고 미소 지었다. 따지고 보면 이도 엄청난 특권이기는 하다. 선수의 운이다.
좋은 투수들의 공을 받으면서 자신의 상상력도 확장시키고 있다고 말하는 김민식이다. 김민식은 “헥터와 켈리를 예로 들면 둘 다 정말 좋은 투수들이다. 헥터는 스트라이크 존 구석을 찌르는 로케이션이 예술이다. 켈리는 구위 하나만 놓고 보면 리그 최고의 투수다. 더스틴 니퍼트(두산)에 못지않다고 생각한다”라면서 “두 선수 모두 볼배합을 다양하게 가져갈 수 있고 내가 그리는 대로 공이 딱딱 들어온다. 경기를 하면서도 재미를 느끼는 선수들”이라고 웃었다.
좋은 포수를 만드는 것이 어쨌든 좋은 투수들이다. 아무리 볼 배합을 잘해도 포수가 원하는 곳에 공을 던지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그런 측면에서 김민식은 좋은 투수들의 공을 받으며 여러 가지 그림을 그려보고 있다. 이는 선수 자신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된다. 김민식도 그런 측면에서 자신은 행운을 가졌다고 말하는 것이다.
딱 하나 고민이 있다면 타격이다. 아무리 수비가 중요한 포지션이라고 해도 방망이가 맞지 않으면 기운이 빠질 수밖에 없는 게 타자다. 김민식은 “요즘 다들 잘 치는데 나만 못 쳐서 너무 도드라진다”라고 웃었다. 올 시즌 타율은 2할2푼7리. 다만 김민식은 “지금은 타격에 손을 댈 만한 상황이 안 된다. 일단 수비가 우선이다. 타격은 시즌이 끝나고 다시 생각해 보겠다”고 예고했다. 선한 인상 속에는 욕심도 숨어 있었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