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위기에도 끄떡없는 '사이어인' 정용운
OSEN 최익래 기자
발행 2017.07.01 06: 00

일본 만화 '드래곤볼'에 등장하는 '전투민족' 사이어인은 위기를 넘길수록 힘이 더 강해진다. KIA 정용운(27)은 위기 때마다 진가를 발휘하며 선발투수 자리를 조금씩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있다.
정용운은 30일 서울 잠실야구장서 열린 '2017 타이어뱅크 KBO리그' LG전에 선발등판, 5이닝 4피안타 3볼넷 2탈삼진 2실점을 기록했다. KIA는 정용운의 호투와 타선의 맹폭에 힘입어 LG를 10-6으로 누르고 4연승을 질주했다. 정용운의 시즌 3승(1패)째.
정용운은 이날 경기에서 위기에서 강해지는 자신의 진가 세 가지를 유감없이 드러냈다. 그 첫 번째는 '에이스 킬러'다. 정용운은 올 시즌 네 차례 선발등판해 3승1패를 거뒀다. 맞상대한 선발투수의 면면을 살펴보면 화려하다.

정용운은 지난 4일 대구 삼성전서 시즌 처음으로 선발등판했다. 이날 삼성의 선발투수는 명실상부 '에이스' 윤성환. 그러나 정용운은 기죽지 않고 5이닝 2실점으로 데뷔 첫 승을 따냈다. 반면, 윤성환은 4이닝 9실점으로 패전을 떠안았다.
11일 광주 넥센전서는 7이닝 2실점(1자책)으로 시즌 2승을 올렸는데, 맞상대는 앤디 밴헤켄이었다. 밴헤켄은 3⅓이닝 3실점(2자책)으로 부진했다. 그리고 30일 경기서도 LG의 외국인 투수 헨리 소사와 매치업을 이뤘는데, 소사는 5⅔이닝 7실점으로 아쉬움을 남겼다.
물론 지명타자 제도가 있는 KBO리그에서 선발투수는 상대 선발과 마주할 기회가 없다. 정용운이 맞선 이들을 무너뜨린 건 KIA 타자들이다. 그러나 벤치에서는 선발투수 매치업을 통해 그날 경기의 승패를 미리 가늠한다. 상대적으로 이름값이 떨어지는 정용운이 쟁쟁한 선발투수들 앞에서도 자신의 공을 뿌리며 승리투수가 됐다는 점만으로도 의미 있다. KIA로서는 에이스와 맞상대한 위기를 정용운으로 탈출한 셈이다.
두 번째 가치는 주자가 나가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용운은 올 시즌 피안타율 1할9푼5리로 30이닝 이상 던진 투수 가운데 제프 맨쉽(NC·0.185)에 이어 2위에 올라있다.
이 자체로도 훌륭한데 주자가 나가도 구애받지 않는다. 정용운은 올 시즌 유주자시 피안타율 1할9푼을 기록했다. 주자가 없을 때(.200)보다 오히려 더 안타를 덜 맞았다. 유주자시 피OPS(출루율+장타율) 역시 0.564로 준수하다. 정용운은 이에 대해 "주자가 나가면 더 집중한다. 공이 몰려도 좋으니까 '내 공'만 던지자는 마음이다"라고 설명했다. 1군 경험이 많지 않은 투수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든 배짱이다.
마지막 가치는 연패 스토퍼. KIA는 정용운이 선발등판한 다섯 경기서 4승1패를 기록했는데 이 4승 모두 특정 연패를 끊었다. 우선 정용운의 첫 승 날짜인 4일 삼성전에서는 팀 3연패를 끊었다. 이어 11일 넥센전서는 팀 2연패를 멈췄다.
17일 LG전서는 팀의 토요일 2연패가 멈췄고, 30일 경기서는 팀의 금요일 7연패가 끝났다. 주말에 유독 성적이 좋지 못했던 KIA로서는 정용운이 승리를 따낸 이 두 경기가 더욱 반갑다. 부담스러운 연패 상황에서도 잘 던져준 정용운의 가치가 빛나는 대목이다.
정용운은 30일 경기 후 취재진과 만나 "나는 아직 확실한 선발투수가 아니다. 내게 '다음 기회'는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 여전히 마운드에 오르기 전에는 긴장되고 부담되지만, 이에 쫓기지는 않는다"라며 "앞으로 더욱 좋은 모습을 보여 팀의 선두 유지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다"라고 밝혔다.
선발진에 구멍이 생겨 얻은 기회. 정용운의 선발투수 연착륙 도전기는 그 자체부터 팀의 위기에서 탄생한 것이었다. 그러나 정용운은 '임시 선발'이라는 꼬리표를 스스로의 힘으로 떼고 있다. 만화 속 사이어인들처럼 위기에서 점점 강해지면서. /ing@osen.co.kr
[사진] 잠실=이대선 기자 sunda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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