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의 SK랩북] 한 이방인이 준 교훈, 육성에 마법은 없다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7.06.30 13: 21

“정말 꼼꼼하세요. 전형적인 코치님이라기보다는, 선생님 스타일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마추어 선수들이 코칭스태프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경우는 흔히 있다. 데이브 존(63) SK 투수코치에 대한 SK 선수들의 대체적인 인상도 그렇다. 프로구단의 투수코치라고 하기에는 아마추어적 감성이 남아있어서다. 마치 제자를 한걸음 한걸음씩 사회로 인도하는 학교의 선생님 같다. 아칸소 주립대에서 오랜 기간(2003~2016년) 투수코치로 일했던 경력이 이런 지도 스타일에 영향을 줬을지 모른다.
그래서 옆에서 볼 때는 답답할 때가 있다. 당장 고쳐야 할 부분도 뜸을 들이고 심사숙고하는 경우도 있다. 매 경기가 전쟁인 프로에서 어쩌면 그간 죄악시됐던 부분이다. 하지만 눈은 항상 선수의 미래를 향해 열려있다. 가장 중요한 기본을 잊지 않고 반복 학습시킨다. 그 인내와 수업의 결과가 올 시즌 SK 선발 자원들의 발전이다. 특히 문승원(28)과 박종훈(26)은 로테이션에 완벽히 자리를 잡았다. 존 코치를 비롯한 코칭스태프가 만들어 낸 쾌거였다.

첫 인상, 단점이 아닌 장점을 먼저 보다
문승원과 박종훈은 완성형 선발투수가 아니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럴지 모른다. 군 제대 후 2015년부터 선발 로테이션을 소화한 박종훈은 리그에서 가장 낮은 타점에서 공을 던지는 희귀함을 가졌다. 하지만 항상 리그 정상급이었던 피안타율과는 별개로 제구가 문제였다. 승보다는 패가 많았고, 평균자책점은 2년간 5점대였다. 지난해 선발로 가능성을 내비친 문승원은 정체되어 있었다. 좋은 조건을 가지고도 항상 자신이 마주한 벽을 깨뜨리지 못했다. 시즌 초반에도 부진에 시달렸다. 선발 로테이션 탈락 위기였다. 트레이 힐만 감독은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존 코치는 두 선수의 단점보다는 장점을 이야기하는 것을 즐겨했다. 모두 성공할 수 있는 조건을 갖췄다고 장담했다. 마치 대학 코치 시절 유망주를 키우는 재미를 두 선수에게서 다시 느끼는 듯 했다. 존 코치는 “문승원과 박종훈 모두 정말 야구의 훌륭한 학생들이다. 코칭하기 매우 좋고 열심히 노력한다. 또한 강인하고 내구력이 있는 선수들”이라고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느긋했지만, 확신이 있었다. 단지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라고 회상한다.
존 코치는 “문승원은 처음 봤을 때부터 좋은 팔을 가지고 있는 것을 느꼈다. 경험이 조금 더 필요한 실력 있는 선발투수였다. 선발투수로서의 경험이 부족하다면 누구나 성장 과정에서 힘든 시기가 있는 법”이라면서 “문승원은 성공할 수 있는 모든 툴을 가지고 있는 선수였다. 단지 필요했던 것은 경험이었을 뿐이다. 선발투수의 가장 좋은 선생님은 경기에서 상대하는 타자들”이라고 떠올렸다. 가능성에 높은 평가를 내렸다는 것이다.
박종훈에 대해서는 “미국에선 박종훈 같은 언더투수가 선발로 뛰는 것을 보기 힘들다. 나도 직접 보기 전까지는 잘 몰랐다. 다만 커맨드와 볼넷에 대한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 이상의 장점을 봤다. 존 코치는 “정말 열심히 노력하는 선수이며 열린 마음으로 배우려고 하는 선수다. 여기에 습득 능력이 아주 뛰어나고 체력도 좋다”고 했다. 하나를 가르치면 둘을 깨우치는 박종훈의 모습은 존 코치에게 아주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문제점에 대한 진단부터 시작했다. 기존 코치들의 조언도 들었고, 지난 기록도 봤다. 하지만 선입견이 없다는 측면에서 존 코치의 눈은 더 맑았다. 존 코치는 “문승원은 많은 투수들이 그러하듯이 팔보다 몸이 먼저 앞으로 나아가는 경향이 있었다. 박종훈은 공이 분산되는 경향이 강했다. 그러다보니 두 선수 모두 로케이션이 되지 않았고 투구수를 소진했다. 스트라이크 존을 공략하는 컨택 유도가 부족했다”고 떠올렸다.
진단이 나왔으니 처방을 해야 할 시점. 하지만 존 코치는 급하게 달려들지 않았다. 스프링캠프 때부터 천천히 두 선수를 바꿔가기 시작했다. 보통 코치들이 조바심을 내면 단기간에 모든 것을 고치기 위해 몰아칠 때도 있는데 존 코치는 자신감을 불어넣으며 천천히 선수들을 개조시켰다. 이미 좋은 자질을 가지고 있는 선수들이니 언젠가는 깨달음을 얻을 것이라는 확신도 있었다. 미국에서 많은 스타들을 키운 경험은 여유를 더해주고 있었다.
선수 육성에 마법은 없다
팔이 몸보다 앞으로 먼저 나간다는 것은 투구시 조급함이 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문승원은 투구 템포와 리듬에 신경을 썼다. 템포를 짧게 하면서 감정과 리듬을 일정하게 조절하도록 했다. 폼 교정보다는 공의 움직임, 로케이션, 그리고 구속 변화에 대한 중요성을 깨닫는 것이 먼저라고 봤다. 이는 아무리 강조해도 선수가 스스로 느껴야 한다. 그래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고 긴 호흡을 가졌다.
박종훈은 스트라이드의 폭, 글러브와 손이 분리되는 타이밍, 그리고 상체가 앞서 나가지 않으면서도 발판에 최대한 잘 지지를 해 정확한 타이밍을 잡는 것이 필요하다고 봤다. 딜리버리의 타이밍을 잡으면서도 글러브와 팔이 분리될 때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유지하는 데 많은 공을 들였다. 역시 하루아침에 될 문제는 아니었다. 코칭스태프도 선수 못지않은 인내가 필요했다. 다만 선발자원 육성이 더딘 SK의 팀 사정상 비교적 여유를 가지고 문제점을 고쳐나갈 수 있었다. 그 성과는 5월 중순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기술적, 심리적 교정을 마친 두 선수는 5월 중순 이후 리그 정상급 투수로 우뚝 섰다. 성적만 놓고 보면 결코 과장은 아니다. 투구 내용은 물론 성적이 확 좋아졌다. 그 전까지 고전하던 두 선수는 5월 21일 이후 쾌투를 이어가고 있다. 박종훈은 7경기에서 평균자책점 2.01로 이 기간 리그 전체 1위다. 문승원은 2.34로 리그 전체 4위. 켈리(2.25)까지 합치면 4위 내에 세 명의 선수가 SK 유니폼을 입고 있다. 엄청난 변화였다.
존 코치는 이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마법’이라는 단어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어쨌거나 원래 자질들이 좋은 선수들이었고 여기에 열린 자세와 성실한 훈련 태도가 이를 이끌었다고 제자들을 칭찬한다. 존 코치는 두 선수에 대해 “시즌 초반에 힘든 시기가 있었으나 꾸준히 인내했다. 여기에 코칭스태프로부터 배우고자 하는 자세와 열려있는 마음이 있었기에 잘 극복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두 선수가 앞으로도 점진적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내다본다.
존 코치는 “문승원은 지금까지의 과정을 통해 자신이 어떤 단계에 도달했는지 잘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힘들었던 시기를 어떻게 이겨냈는지 이제 경험으로 알기 때문에 자신감을 많이 키웠다. 그는 정말 잘 던지고 있다”라면서 “박종훈은 이제 공을 커맨드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여기에 아직 만들어가고 있지만 체인지업을 추가했다. 처음에는 그립이 어색해 스트라이크를 던지기 어려웠는데 지금은 매우 편해졌다. 구속을 떨어뜨리며 효과적으로 플레이트 앞에서 움직임이 생길 수 있도록 던질 수 있을 것”이라고 긍정적인 전망을 내렸다.
이제 존 코치는 두 선수가 자신감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방향을 정해줄 참이다. 자신의 학교에 입학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마치 이제는 자신의 품을 떠나는 졸업생을 보는 심정이다. 존 코치는 “두 선수 모두 피칭 능력과 자신감, 그리고 노력하는 자세는 매우 훌륭하다”면서 “이제 빠른 공 커맨드와 자신감을 갖는 것이 최우선이다. 타자들이 빠른 공을 노리고 있을 때 변화구로 스트라이크를 던질 수도 있어야 한다”고 과제를 제시했다.
흔히 많은 사람들은 지도자들이 선수들을 키운다고 한다. 기술적이나 심리적인 조언이 선수들의 잠재력을 깨우는 경우도 있으니 100% 틀린 말까지는 아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 어떠한 ‘마법’이 있는 것은 아님을 존 코치는 잘 보여주고 있다. 두 선수를 바꾼 것은 선수에 대한 정확한 판단과 진단, 선수를 기다려주는 인내, 활발한 의사소통, 무엇보다 선수들의 열의와 의지였다.
마법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지만, 이와 같은 조건은 인간이 다시 만들 수 있다. 이는 SK의 마운드에 더 기대를 걸어도 될 이유이자, 장기 육성 시스템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SK에 좋은 모범이 될 이유다. /SK 담당기자 skullbo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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