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은 있어도 포기는 없었다.
한화 불펜의 새로운 '필승조' 투수 이동걸(34)이 '대기만성' 스토리를 써내려가고 있다. 29일 청주 kt전에서 7-5로 리드한 8회 리드 상황에서 투입된 이동걸은 1이닝 1피안타 무실점으로 깔끔하게 막고 시즌 두 번째 홀드를 따냈다. 지난 27일 kt전 1⅓이닝 1피안타 1볼넷 2탈삼진으로 시즌 첫 홀드를 거둔 데 이어 최근 2경기 연속 필승조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했다. 이젠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한화의 필승조 투수로 자리 잡았다.
▲ 벼랑 끝 각오로 시즌 준비
지난 2007년 2차 7라운드 전체 52순위로 삼성에 지명된 이동걸은 2013년 시즌 후 2차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전체 2순위로 한화의 부름을 받아 팀을 옮겼다. 지난해까지 1군 통산 성적은 59경기 2승1패1홀드 평균자책점 4.96. 대부분 시간을 2군에서 머물렀고, 몇 차례의 1군 기회가 있었지만 인상적이진 못했다.
삼성에선 워낙 쟁쟁한 투수들이 많아 1군 기회 자체가 많지 않았다. 2015년 한화 불펜 추격조로 활약하며 2승을 올렸지만 시즌을 마친 뒤 무릎 수술을 받아 재활을 해야 했다. 재활을 끝내고 복귀한 지난해에도 강습 타구에 손목뼈가 골절되는 불운이 찾아왔다. 뭔가를 보여줄 틈도 없었다. 그러는 사이 이동걸의 나이도 30대 중반으로 향하고 있었다.
시즌 전 스프링캠프 때부터 이동걸은 절박한 각오로 매달리며 변화의 몸부림을 쳤다. 당시 그는 "올해로 11년차이고, 한화로 이적한 지 4년이 됐다. 여기서 밀리면 끝이다. 이제 나이도 있고, 뭔가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된다"며 자신이 처한 상황을 '벼랑 끝'이라고 솔직하게 표현했다. 마지막이란 각오로 캠프에서 호투 행진을 이어가며 존재를 알렸다.
▲ 변화의 몸부림, 확 달라진 비결
이동걸은 "올해가 야구인생의 분기점 같은 상황이었다. 비시즌부터 준비를 많이 했지만 캠프 둘째 날 김성근 감독님에게 크게 혼난 적이 있다. '지금보다 더 변화를 주려 노력하다. 여기서 더 변하지 않으면 바뀔 수 없다'고 강하게 말씀하셨다. 그때 한 번 더 정신을 차렸다. 문제점을 고치기 위해 여러 노력을 했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기술과 정신을 모두 바꿨다. 짧았던 팔스윙 동작을 길게 뻗어주며 볼 끝에 힘을 실었고, 포크볼을 비롯해 변화구 컨트롤을 가다듬었다. 이동걸은 "처음 삼성에 입단했을 때 140km대 중후반을 던지던 강속구 투수였지만 이제는 아니다. 파워피처가 아니기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선 컨트롤에 더 신경 쓸 수밖에 없었다"며 "볼카운트를 항상 유리하게 가져가기 위해 스트라이크존을 공략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이동걸은 시즌 16경기, 27이닝을 던지는 동안 볼넷이 3개밖에 되지 않는다. 지난해까진 4.4개에 달했던 9이닝당 볼넷을 1.0개로 대폭 줄였다. 스트라이크 비율 66.7%는 한화에서 10이닝 이상 던진 중 가장 높다. 유리한 카운트에서 주무기 포크볼의 효율도 훨씬 높아졌다. 시즌 16경기에서 평균자책점 3.00, 6월 9경기에선 2.35로 낮췄다.
한화 이상군 감독대행은 "이동걸이 불펜에서 잘해주면서 다른 선수들에게 여유가 생겼다. 3이닝 세이브(지난달 5일 kt전) 이후 계속 좋은 투구를 하고 있다. 공은 안 빠르지만 제구가 좋고, 포크볼이 잘 떨어진다. 유리한 카운트를 잡다 보니 결정구로 훨씬 더 효과적이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 유니폼 벗는 날까지 포기란 없다
오랜 시간 2군에서 뛰었던 이동걸은 1군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는 "1년, 1년 야구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아무래도 1군보다 2군에 있었던 시간이 길었기 때문이다. 2군에 있는 선수들은 지고 이기는 상황을 떠나 10점차라도 올라가서 던지고 싶어 한다. 그 1경기를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력한다. 그 마음을 잘 알고 있어 어떤 상황이든 가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동걸의 활약에 지금은 야구를 그만둔 2군 시절 동료들도 축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고. 그는 "2군에서 보낸 시간들이 있었기 때문에 유니폼을 입고 마운드에 서는 지금이 얼마나 소중한지 느낀다"며 "오랜 2군 생활로 절망할 때도 당연히 있었지만 포기한 적은 없다. 어릴적부터 프로야구 선수가 되고 싶어 야구를 했고, 프로야구 선수가 된 지금 꿈을 이룬 것이다"고 강조했다.
앞으로도 이동걸에게 포기란 없다. "야구는 내가 하고 싶어서 시작했지만, 그만 둘 때는 내 의지와 관계없을 수 있다. 스스로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으면 포기해야 할 것이다. 유니폼 벗으면 그때 포기하면 되는 것이다. 그때까지 본분에 충실하고 싶다"는 것이 이동걸의 말. 이제 막 꽃을 피우기 시작한 그에겐 먼 미래 일이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