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 후 은퇴를 예고한 '국민타자' 이승엽(삼성).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 할 말년 병장의 위치에도 예나 지금이나 늘 한결같다. 이승엽은 삼성 선수 가운데 가장 먼저 야구장에 출근한다. 자신만의 루틴을 지키기 위해서다.
가벼운 러닝과 스트레칭으로 몸을 푼 뒤 캐치볼, 타격 훈련까지 소화한다. 이승엽의 홈런 생산 능력은 전성기 못지 않다. 마치 골프에서 어프로치 샷을 하듯 홈런을 만들어내는 이승엽의 타격 매커니즘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이승엽은 요즘 마음이 무겁다. 최근 성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성적 지표만 보면 파괴력은 뛰어난 반면 정확성은 다소 부족했다. 25일 현재 6월 타율 2할2푼4리(67타수 15안타) 6홈런 17타점에 불과하다. 최근 10경기로 범위를 좁힌다면 타율 1할7푼1리(35타수 6안타) 3홈런 7타점으로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이승엽은 "마음대로 되지 않다 보니 내가 경기에 나가서 팀에 보탬이 되지 못해 경기에 안 나가는 게 도움이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고 털어 놓았다.
이승엽에게 1999년은 아주 뜻깊은 해였다. KBO리그 최초로 50홈런 시대를 여는 등 거포 열풍을 일으켰다. '국민타자'라는 수식어를 얻게 된 것도 이때부터다. 당시 이승엽이 타석에 들어설때마다 가수 엄정화의 '페스티벌'이란 노래가 울려퍼졌다. 23일 대구 삼성-한화전. 이승엽이 1회 1사 2,3루서 첫 타석에 들어서자 익숙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그의 첫 번째 전성기를 함께 한 등장곡인 엄정화의 페스티벌이었다.
"(야구가) 너무 안 되니까 기분 전환 차원에서 (등장곡을) 바꿨다. 노래는 변하지 않았지만 사람과 환경은 많이 변했다"는 게 이승엽의 말이다. 그러면서 그는 "기분만이라도 그때 같은 기분으로 타석에 들어서고 싶다는 생각에 바꾸게 됐다"고 덧붙였다.
그렇다고 이대로 무너질 이승엽이 아니다. 그는 "프로 선수로서 굉장히 비참한 모습이지만 여기서 포기하면 당장 야구를 그만 둬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부진의 늪에서 벗어날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한다. 물론 고민한다고 해결되는 건 아니지만 최선을 다하고 있다. 다행히 타격 코치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문제점을 찾았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24일 대구 한화전서 시즌 첫 연타석 아치를 쏘아 올리기도 했다.
삼성은 이달 들어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이승엽에게 달라진 팀 분위기를 묻자 "(팀 분위기는) 원래부터 좋았다. 순위에 비해 굉장히 좋았다. 야구가 안된다고 분위기마저 가라 앉으면 모두가 침체돼 올라올 수 있는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이어 "그동안 선수들이 최선을 다하고도 결과가 나오지 않았는데 이제 조금씩 땀의 결실이 나오기 시작했다. 앞으로 더 올라가지 않을까 생각된다"고 덧붙였다.
'포스트 이승엽'이라 불리는 구자욱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구자욱을 향한 이승엽의 애정은 상상 그 이상이다. 이승엽은 다카하시 요시노부 요미우리 자이언츠 감독의 타격 동영상을 비롯해 구자욱에게 도움이 될 만한 타격 동영상을 건네는 등 구자욱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구자욱을 보면 '많이 성장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 삼성 라이온즈의 간판 선수는 자연스럽게 구자욱이 됐다. 실력과 외모 그리고 자기 관리 등 모든 면에서 구자욱에게 간판 선수 계보를 물려줘도 손색이 없다. 이제 이 선수와 함께 할 수 있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가르치기 보다 조언을 해주고 이 선수가 어떻게 야구하는지 좀 더 지켜보면서 지금껏 내가 해왔던 야구에 대해 반성을 하기도 한다. 서로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what@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