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쳐라’ 문승원을 확 바꾼 하나의 주문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7.06.21 09: 25

“자신의 공을 믿기 시작했다” (트레이 힐만 SK 감독) “자신감이 생긴 것 자체만으로도 공의 위력이 더 좋아졌다” (김경문 NC 감독)
올해 SK 선발진에 합류한 문승원(28)은 공의 위력 하나만 놓고 보면 메릴 켈리와 함께 최고로 뽑힌다. 선발 3년차이자 문승원과 군 생활을 함께 했던 박종훈은 “(문)승원이형의 구위는 정말 좋다. 앞으로 더 좋아질 것”이라고 호언장담한다. 재활 중인 김광현도 후배의 구위에는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울 정도다. 그러나 남들이 다 좋다던 구위를 스스로 믿지 못한 게 문제였다. 시즌 초반은 평균자책점이 오랜 기간 6점대에 머물 정도로 난조였다.
스스로도 답답한 나날이 이어졌다. 폼이나 어깨 등 기술적·신체적으로는 특별한 문제가 없었다. 그래서 더 답답했다. 코칭스태프나 팀 동료들은 물론, 좀 더 객관적인 시각으로 자신에게 조언을 할 수 있는 주위 사람들에게까지 많은 것을 물었다. 결론은 자신의 마음속에 있었다는 게 문승원의 이야기다. 문승원은 5월 중순 이후 달라진 점에 대해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의 마음가짐”이라고 짚었다.

모처럼 찾아온 선발기회였다. 당연히 잘하고 싶었다. 그래서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주자가 나갔을 때는 ‘실점하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너무 강했다. 그러다보니 제구가 흔들렸고, 정직한 공이 맞아 나갔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마음가짐이 바뀌었다고 말하는 문승원이다.
흔히 말하는 자신감의 향상으로 모든 것이 설명되지는 않는 것 같다. 문승원은 “자신감은 그때도 있었고, 지금도 있다. 비슷한 것 같다”라고 고개를 저었다. 빨라진 투구 템포에 대해서도 “당시와 큰 차이는 없다”고 설명한다. 다만 “그때는 타자들에게 맞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고 덧붙였다. 그냥 ‘차라리 쳐 달라’는 식으로 공을 던진다는 게 가장 큰 차이점이었다.
문승원은 “그냥 단순하게 빠른 공으로, 대신 정확히만 던지려고 승부할 때도 있다. 차라리 맞아서 어떤 상황이 이뤄지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안타를 맞더라도 결과가 정해지면 마음이 편하고 공 개수도 적어진다. 요즘은 타자들이 그냥 내 공을 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계속 치라고 던지는 심정”이라고 털어놨다.
말 그대로 정면승부다. 어렵게 생각하지 않고 강공 드라이브를 건다. 최선을 다하고 결과는 그냥 받아들인다. “마운드 위에서 쓸모없는 생각을 줄이자”는 시즌 전 다짐과도 맥락을 같이 한다. 그랬더니 성적이 확 달라졌다. 5월 19일까지 주자가 있을 때 문승원의 피안타율은 무려 3할5푼3리, 피OPS(피출루율+피장타율)는 0.906이었다. 그러나 5월 20일 이후 6경기에서는 유주자시 피안타율이 1할4푼7리, 피OPS가 0.383까지 떨어졌다. 만화에서도 이런 시나리오를 쓰기는 쉽지 않다.
이런 문승원은 최근 6경기에서 37⅓이닝을 던지며 2승1패 평균자책점 1.45를 기록했다. 20일 인천 NC전에서는 9이닝 1실점 완투승을 기록하기도 했다. 비자책점임을 고려하면 사실상 완봉에 가까운 역투였다. 팀 타율이 좋은 NC와 한화를 두 차례, 넥센과 한 차례 상대했음을 고려하면 대단히 고무적인 성과다. 설사 이 성적이 계속 이어지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이는 문승원의 야구 인생에 어떠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적어도 5월 20일 이후 문승원보다 나은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선수는 리그에 단 하나도 없다. 이제는 믿음직스러운 선발로 컸다. "네가 전광판에 새긴 0이 몇 개인지 보라. 이제는 네 실력을 믿어야 한다"고 독려했던 힐만 감독도 20일 경기 이후에는 굳이 0을 세지 않았다. 마음가짐의 변화 하나가 SK 선발진에 대변혁을 이끌었다. /skullbo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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