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만성’ 김지현(26, 한화)이 2017년을 자신의 최고의 해로 만들고 있다. 투어 8년차에 생애 첫 승과 한달 남짓 사이의 추가승, 그리고 2주 연속 우승에 생애 첫 메이저 대회 우승까지, 프로 선수가 얻을 수 있는 온갖 영예를 3개월 사이에 다 챙겼다.
김지현은 18일 인천 베어즈베스트청라 골프클럽(파72, 6,835야드)에서 열린 ‘기아자동차 제31회 한국여자오픈 골프선수권대회’(총상금 10억 원, 우승상금 2억 5,000만 원) 최종라운드에서 이정은(21, 토니모리), 정연주(25, SBI저축은행) 등과 손에 땀을 쥐게하는 명승부 끝에 우승컵을 번쩍 들어올렸다. 5언더파 283타.
김지현은 지난 4월 30일 ‘KG-이데일리 레이디스 오픈’에서 정규 투어 8년차에 생애 첫 우승을 했다. 그리고 한달여 뒤인 지난 11일 ‘제11회 S-OIL 챔피언십’에서 또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이날 기아자동차 한국여자오픈 우승으로 김지현은 2주 연속 우승에, 생애 첫 메이저 대회 우승이라는 값진 의미도 챙겼다.
또한 1~3라운드에서 단독 선두를 달리던 이정은은 김지현이 우승한 대회에서 또 다시 좌절하는 아픔을 겪었다. 이정은은 김지현이 우승한 앞선 두 대회에서 김지현에게 밀려 준우승했고, 이번 한국여자오픈에서도 사실상 김지현에게 덜미를 잡힌 셈이 됐다.
‘기아자동차 한국여자오픈’이 열리고 있는 인천 베어즈베스트청라 골프클럽의 홀 구성에는 일종의 리듬이 있다.
전반 9홀은 2~6번의 ‘얻는 홀’, 7~9번의 ‘잃는 홀’로 짜였고, 후반 9홀은 얻는 홀(10, 11번)과 잃는 홀(12~14번)이 짧게 반복 된 뒤 얻는 홀(15, 17번)과 잃는 홀(16, 18번)이 한 홀씩 번갈아 나타난다. 지난 3라운드 동안 선수들 성적을 토대로 홀 난이도를 집계하면 이 같은 리듬이 뚜렷하게 확인 된다.
18일 ‘기아자동차 한국여자오픈’ 최종라운드 전반 9홀을 마쳤을 때 선두권 주자들은 이 리듬을 탄 선수와 그렇지 못한 선수들로 구분이 되면서 순위도 그 결과에 따라 출렁거렸다. 김지현이 리듬 이상으로 잘했고, 정연주는 리듬대로 했으며, 이정은은 흐름을 제대로 타지 못했다.
전반 9홀을 단독 선두로 마친 김지현은 얻는 홀(2~6번)에서 2개의 버디를 잡았고, 이어지는 잃는 홀에서도 버디 1개(7번)를 더 올렸다. 잃는 홀에서 선수들은 파세이브만 해도 성공한 플레이라고 판단할 만큼 공략이 까다롭다. 공동 3위에서 최종라운드를 시작한 김지현은 파3 7번홀 칩인 버디로 단독 선두가 되며 앞서 나갔다.
3라운드까지 단독 선두로 챔피언조에서 최종라운드를 시작한 이정은은 그러나 반드시 버디를 잡고 가야 할 파5 2번홀에서 파에 머물렀고, 182미터짜리 파3 3번홀에서는 보기를 범하고 말았다. 심리적 부담감에서 원인을 찾을 수 밖에 없었다. 3라운드 동안 흠 잡을 데 없는 플레이를 펼치던 이정은은 어프로치 샷이 계속 어긋나며 그린 공략에 애를 먹었다.
급기야 5번홀에서 또 보기를 범하고 말았다. 파5 6번홀에서 그린 밖에서 올린 칩샷이 버디로 연결 돼 분위기 반전을 노려봤지만 행운이 깃든 샷일 뿐이었다. ‘잃는 홀’이 시작 되는 파3 7번홀에서 바로 타수를 잃었다. 전반 라운드를 마쳤을 때 이정은은 김지현과 자리를 바꿔 3위로 내려가 있었다.
정연주는 얻는 홀에서 얻고, 잃는 홀에서 세이브를 했다. 2번 홀에서 버디를 잡았고, 7, 8번홀은 버디와 보기를 주고받으며 세이브를 한 셈이 됐다. 전반 9홀을 마쳤을 때 정연주(-4)는 김지현(-5)과 이정은(-3) 사이에 있었다.
상승세와 유지세, 그리고 하락세의 차이는 베어즈베스트청라 악명 높은 ‘곰의 지뢰밭’에서 극명하게 판가름 났다. 까다롭기로 유명해 ‘곰의 지뢰밭’이라 부르는 12~14번홀은 파세이브만 하면 대성공으로 평가 받는다.
선두를 달리던 김지현도 파4 13번 홀에서 위기가 왔다. 세컨샷이 해저드에 빠졌다. 1벌타를 받고 흔들림 없이 어프로치 샷을 했다. 그림같이 포물선을 그린 공이 홀컵 한뼘 거리에 착 붙었다. 최선의 수비, ‘보기’로 막았다. 상승세를 탄 김지현은 곰의 지뢰밭 14번 홀에서 또 버디를 잡았고 여세를 몰아 파4 15번홀에서 또 다시 버디를 만들어내며 우승 예감을 굳혀갔다.
10번 홀 버디로 자신감을 되찾은 이정은도 공격적으로 공략한 13번 홀 세컨샷이 해저드에 빠졌다. 그러나 해결과정은 김지현과 딴판이었다. 그린 바깥 언덕 어귀에서 올린 샷이 홀컵을 지나 반대쪽 해저드로 또 굴러 들어갔다. 시쳇말로 ‘멘붕’이 됐다. 퍼팅도 말을 안 들어 이 홀에서만 4타를 잃었다. 지난 사흘간 벌어 둔 타수의 대부분을 이 한홀에서 빼앗겼다.
정연주는 후반홀 들어서도 딱 통계대로 했다. 10, 11번홀에서 버디와 보기를 주고 받았고, 곰의 지뢰밭에서는 1타만 잃었다. 까다로운 파4 16번홀을 버디로 잡아 막판 순위 변동의 변수가 될까 했으나 17번 홀 보기로 막판 대역전극은 일어나지 않았다.
최종라운드 출발은 다소 뒤쳐진 순위에서 했지만 선두권을 맹추격한 이들도 있었다. 김민선(22, CJ오쇼핑)과 아마추어 최혜진(18)이다. 이븐파에서 최종라운드를 시작한 김민선은 이날 보기 없이 버디만 3개를 잡았다. 순위도 급상승해 정연주와 함께 공동 2위까지 올랐다.
최혜진은 최종라운드에서 3타를 줄이는 깜짝 활약을 펼쳤다. 13번 홀을 보기로 막았고, 버디는 4개가 있었다. 2언더파로 오지현과 함께 공동 4위. 이정은은 1언더파 단독 6위. /100c@osen.co.kr
[사진] 김지현의 기아자동차 한국여자오픈 최종라운드 경기 모습. /인천=이대선 기자 sunda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