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②] 김명민 "혜리, 우려했던 것보다 연기 잘해..분위기 메이커"
OSEN 김보라 기자
발행 2017.06.18 09: 15

 (인터뷰①에 이어) 자타공인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명배우로 손꼽히는 김명민이 영화 ‘하루’(감독 조선호)에서 색다른 연기 변신을 시도했다.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넘나들며 매 작품마다 신뢰감을 주는 연기로 많은 사랑을 받아온 김명민. 이번에는 대통령, 변호사, 검사도 아닌 딸을 잃은 아버지로 분해 열연을 펼쳤다.
어느 날 갑자기 교통사고로 딸을 잃고, 그 비극적인 상황이 반복되는 하루가 숨 가쁘게 그려지는 가운데, 사건이 발생해도 딸을 눈앞에 두고 무기력하게 좌절할 수밖에 없는 한 남자의 심정을 내공있는 연기로 표현해 감탄을 자아낸다.
김명민은 최근 서울 팔판동 한 카페에서 진행된 OSEN과의 인터뷰에서 “가장 힘들었던 장면은 박문여고 신이었다”며 “공항신, 주차장신도 힘들었지만 그럴 때 나온 얘기가 박문여고였다. 그날부터 박문여고 촬영에 대한 기대를 했는데 가보니 주변에 지나다니는 차들도 거의 없고 특히 그늘이 없어서 너무 뜨거웠다. 복사열 때문에 바닥의 온도가 40도 정도까지 올라갔다. 그래서 저희가 냉장차까지 가지고 다녔다. 스태프도 쓰러질까봐 틈틈이 얼굴을 들이밀면서 열기를 식혔다”고 회상했다.

이어 “비슷한 장면을 자주 찍어서 너무 헷갈렸다. 첫째날부터 일곱째날까지 비행기신을 찍고, 이후 공항에서 4~5일 동안 무빙 워크를 달리는 장면만 촬영했는데, 한 장면당 9번 정도의 테이크를 갔다. 보조 출연자의 위치 등 여러 가지 요소를 맞추기가 쉽지 않아서였다”며 “관객들이 보시기에 별 거 아닐 수 있지만 위치를 똑같이 맞추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보조 출연자들도 똑같은 위치에서 연기를 해줘야 하기 때문에 합을 맞추는 게 필요했다. 그런 것들이 굉장히 까다로웠다”고 촬영 고충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현장에서 촬영 들어가기 전부터 감독님과 숱하게 이야기를 나눴지만 시나리오 상내용과 실제 연기를 하는 것은 다르다. 다들 아시겠지만 실제가 훨씬 더 어렵다. 상황적인 부분들을 맞추는 게 어렵고, 뒷부분을 먼저 찍을 때는 앞부분을 어떻게 연기를 할지 미리 계산을 한 뒤 촬영에 임했다. 물론 재촬영 같은 것은 없었다”고 부연했다.
특히나 김명민의 놀라운 연기 본능이 스태프의 감탄을 자아냈던 순간이 있었다고 한다. 딸의 사고 현장에 1분이라도 빨리 도착하기 위해 속도위반을 하고, 역주행까지 하는 과감한 카 체이싱 장면 후 김명민은 감정 연기에 들어갔고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즉흥적으로 자신의 뺨을 때렸다. 딸을 구하러 일찍 도착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빠진 아빠의 모습을 본능적으로 표현해낸 것. 촬영이 끝났을 때, 김명민 눈에 실핏줄이 터진 것을 발견했다고 한다.
“얼굴을 때리는 장면은 나도 모르게 나왔다. 신인시절 오세강 감독의 ‘남자 대탐험’이라는 드라마를 할 때 였다. 촬영 당시 촬영에 필요한 안경을 잃어버렸는데, 제 자신에게 너무 화가 나서 화장실에 들어가서 내 자신을 때렸다. 얼굴을 치면서 스스로 욕을 했다. 그게 어떻게 보면 정신병처럼 보일 수 있지만 제 자신에게 관대한 게 싫었다. 내가 남들보다 인물이 잘난 것도 아닌데 스스로 관대해지면 절대 성공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실수를 했을 때 스스로 가혹하게 구는 습성이 있다. 딸을 잃은 슬픔을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50%는 알겠는데, 50%는 모르겠더라. 감독님께 감정이 가는 대로 하겠다고 했고, 차에 치여 공중으로 붕 뜬 자식의 모습을 본 부모의 심경이 어떨까 싶었다. 내가 조금만 더 빨리 왔다면 살릴 수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에 즉흥적으로 나온 연기다.”
1996년 SBS 6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김명민은 활발한 활동을 펼치다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서 이순신 장군 역을 맡아 비로소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섬세한 감정 연기로 캐릭터에 생동감을 불어넣은 것. 이후 ‘하얀 거탑’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연기 변신에 성공하며 전 세대를 이르는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하루’에서는 딸을 살리려는 간절한 마음이 김명민의 깊은 눈빛과 감정 연기가 더해져 강한 진폭의 감정선으로 극을 이끈다.
그는 “저는 배우들에게도 인정받는 배우가 되고 싶다. 다른 배우보다 더 연기를 잘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다는 게 아니라 선배로서 후배를 이끌고 다 같이 잘되는 상황을 만들고 싶다”면서 “저는 박수칠 때 떠날 것이다. 언젠가 대중이 더 이상 제 연기를 좋아하지 않으시고 받아들이지 않는 날이 올 수도 있지 않나. 그 전에 떠나고 싶은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최근 영화 ‘물괴’(감독 허종호)를 촬영 중인 김명민은 걸스데이 멤버 혜리와 처음으로 작품을 만들게 됐다.
“혜리는 우려했던 것보다 연기를 잘한다. 촬영장의 분위기 메이커다. 정말 예쁘다. 저는 아이돌과 처음으로 연기 호흡을 맞춘다. 무엇보다 말귀가 빠르다. 현장에서 재밌다.”/ purplish@osen.co.kr
[사진] CGV 아트하우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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