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6일 현충일, 정민철 선배".
한화 정근우(35)는 프로 데뷔 첫 홈런을 생생히 기억한다. 지난 2006년 6월6일 SK 소속으로 대전 한화전에서 1회초 정민철을 상대로 좌월 솔로포를 터뜨렸다. 정근우는 "그때 조범현 감독님이 SK를 이끌 때였다. 그날 선발 중견수로 나온 기억도 난다. 그때만 해도 100홈런까지 칠 줄 몰랐다"고 되돌아봤다.
데뷔 첫 홈런을 1회 선두타자 홈런으로 장식한 정근우의 홈런 시계는 100호 홈런도 같은 방식으로 완성했다. 14일 문학 SK전에서 1회 문승원에게 중월 솔로 홈런을 터뜨리며 개인 통산 100홈런 고지를 돌파한 것이다. 지난 2005년 프로 데뷔한 정근우는 13년차에 또 하나 의미 있는 개인 이정표를 세웠다.
KBO리그 역대 77번째 기록. 정근우에 앞서 총 76명의 타자들이 100홈런을 쳤지만, 대부분 '한 덩치' 하는 거포형 타자들이었다. 정근우는 프로 생활 대부분을 1~2번 테이블세터로 뛰었다는 점에서 100홈런의 의미가 남다르다. 역대 통산 100홈런을 기록한 77명 중 최단신(172cm) 선수가 바로 정근우다. 종전에는 통산 145홈런을 넘긴 이순철(173cm)이 최단신이었다.
키 작고 발 빠른 선수답게 정근우는 홈런보다 도루 숫자가 많다. 통산 347개로 이 부문 역대 3위에 올라있다. KBO리그 유일의 11년 연속 20도루 기록도 있다. 여기에 100홈런까지 넘었다. 역대로 100홈런-300도루 이상 선수는 이순철(145홈런-371도루), 이종범(194홈런-510도루), 박용택(183홈런-304도루), 김주찬(106홈런-370도루) 그리고 정근우까지 5명뿐이다.
정근우는 "나도 프로에 와서 100홈런을 칠 줄 몰랐다. 100홈런 가까이 올 것이라고도 생각 못했다"며 "나 스스로도 이렇게 작은 체구로 과연 100홈런을 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든 게 사실이다. 몇 년 전부터 홈런 개수가 늘어 100홈런도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됐다. 100홈런에 다가갈수록 설렜다"라고 말했다.
SK 시절 정근우는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한 적이 없었다. 지난 2007·2009·2013년 3차례 9개 홈런이 개인 시즌 최다 기록이었다. 하지만 한화 이적 후 2년차였던 2015년 12개 홈런으로 처음 두 자릿수를 돌파했고, 지난해에는 개인 최다 18홈런을 폭발했다. 올해는 현재까지 5홈런을 기록, 산술적으로 약 12개가 가능하다.
나이가 들수록 장타력이 상승한 비결은 무엇일까. 정근우는 "특별히 웨이트 트레이닝을 많이 한 것은 아니고 손목 힘이 타고났다. 또 어렸을 때는 힘으로 쳤다면 지금은 타이밍으로 타격한다. 특별히 의식을 하고 변화를 준 것은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스타일에 변화가 왔다. 힘이 아니라 몸의 원심력을 활용하고, 상대 투수의 타이밍을 연구하다 보니 홈런이 많아지고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정근우는 작은 키 때문에 고교 졸업 때 프로 지명을 받지 못했다. 고려대에서 실력을 갈고 닦아 4년 뒤 프로 지명 때는 2차 1라운드 전체 7순위로 상위 지명을 받았다. 정근우는 "대학에 가서 국제대회를 경험하며 실력이 늘었다. 고교 졸업 후 프로에 왔다면 이 정도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고 강조했다.
시련을 기회로 삼아 100홈런까지 달려온 정근우, 체구가 작은 선수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쏘아 올렸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