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쎈 토크] 이제훈 "한 달간 쌀금식, 야위어가는 얼굴보니 불쌍했다"
OSEN 김보라 기자
발행 2017.06.14 15: 59

 로맨스, 사극, 코믹 등 장르를 불문하고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과시해온 배우 이제훈은 실존인물 박열을 지독하리만큼 사실적으로 재현했다.
‘박열’은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역사 속에 가려진 인물 박열의 파란만장한 삶을 담고 있다. 현재까지 일본 정부로부터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있는 간토대학살 사건이 벌어졌던 1923년, 일제의 만행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목숨을 걸고 투쟁했던 조선의 아나키스트 박열과 그의 동지이자 연인 가네코 후미코의 실화를 그린 작품이다.
이제훈은 14일 오후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오프닝부터 클로징까지 쇼킹한 이미지였다”고 말할 정도로 그동안 그가 보여줬던 훈훈한 캐릭터와는 상반된다. 1923년 관동대지진 이후 일본은 불령사를 조직해 항일운동을 하던 조선 청년 박열을 대역사건의 배후로 지목한다. 일본의 계략을 눈치 챈 박열은 동지이자 연인인 가네코 후미코와 함께 일본 황태자 폭탄 암살 계획을 자백하고 사형까지 무릅쓴 역사적인 재판을 시작한다.

이제훈은 “실존 인물을 그리는 부분에 있어서 그 모습을 그대로 가져와야 하는 부분이 있었다. 분장을 하니 사람들이 저를 못 알아보시더라. 제가 지나가도 다른 사람인 것처럼 그냥 인사를 하고 가더라”며 “감독님도 제 모습을 딱 보시고 기존의 이미지와 달라서 그런지 놀라고 재미있어 하시더라. 저 역시 ‘이래도 될까’하는 걱정이 있었는데 이제훈이라는 사람이 지워지고 온전히 박열이라는 사람으로 보일 수 있겠구나 싶었다”고 캐릭터를 위해 온전히 박열로 녹아들었다고 했다.
그가 촉박한 촬영 일정에도 불구하고 ‘박열’에 출연한 건 이준익 감독에 대한 존경심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한 번쯤 작업하고 싶었었다고. “예전부터 이준익 감독님의 작품을 기다려왔는데 함께 하는 기회가 찾아와 기뻤다”면서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때 까다롭고, 어렵게 다가왔다. 단순히 일제에 대한 울분을 터트려야 하는게 아니라 읽을수록 박열이 생각하는 것과 신념, 태도가 더 중요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매 순간 노심초사했던 것 같다. 연기로 인해 인물이 왜곡되거나 오해의 소지가 생길 수 있어서 메시지를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신중하게 접근했다. 좋으면서도 부담스럽고 어려운 작업이었다. 행운이지만 그로 인한 무게감도 상당했다”는 출연 소감을 전했다.
‘박열’의 출연 제안을 받기 전 이제훈은 tvN 드라마 ‘내일 그대와’에서 시간 여행자 유소준 역을 맡아 마린 역의 신민아와 로맨스를 펼쳤다. 달달하고 훈훈한 향기를 풍기면서도 영화 촬영장에서는 이른바 ‘불량 청년’의 이면을 표현했던 것.
“드라마는 작년 9월부터 12월 중순까지 촬영을 했었는데 11월쯤 이준익 감독님에게 시나리오를 받았고 1월부터 촬영에 들어간다고 하시더라. 저한테는 준비할 시간이 적었다. 배우로서 해내야 할 것도 많은데,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해 걱정이 컸다. 일단은 인물을 빠른 시간 안에 탐구를 했고, 일본어는 영화에 함께 출연한 세 명의 배우들에게 배웠다. 한 사람에게만 배우면 그 사람의 톤으로만 읽힐 것 같아 여러 명에게 배워 익숙해지도록 노력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 녹음기를 끼고 살았다. 다행히도 프리 프러덕션 단계에서 시간대로 흘러갈 수 있도록 배려를 해주셔서 일본어를 숙지할 수 있었다.”
그는 일본의 탄압을 겪으며 야위어가는 박열을 그리기 위해 촬영장에서도 금식하는 연기 투혼을 발휘했다. "한 달간 쌀을 금식했다. 현장 밥차를 보면 굉장히 괴로웠다(웃음). 식사시간이 되면 밥 냄새로 인해 괴롭고 힘들었다. 그것을 계속 미뤄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 달간 밥을 먹지 않으니 사람이 쾡해지더라. 야위어가는 얼굴을 보니 스스로도 불쌍했다. 주변에서는 먹으라고 했지만 제 자신을 속이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사람이 어떠한 압박감이나 공포에 시달리면 악몽을 꾸곤 하는데, 박열을 만난 이제훈도 이 같은 경험을 했다. “분명 제대로 외웠는데 꿈에서의 저는 촬영장에서 한마디 못하더라. 꿈에서 딱 깼는데,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전달하고자 하는 ‘박열’의 핵심이 공판장에서의 대사인데 그걸 못하니 한마디로 ‘멘붕’이었다. 실제 촬영장에선 해당 신의 촬영이 다가올수록 불안했다. 그래서 계속 읊조리며 연습을 하지 주변 배우들이 ‘그만 좀 하라’고 하더라. 그들이 외울때 때까지 했다(웃음)”는 노력을 전했다.
영화 ‘파수꾼’을 통해 충무로의 주목할 만한 배우로 떠오른 이제훈은 '고지전’ ‘건축학 개론’ ‘패션왕’ ‘점쟁이들’ ‘파파로티’ ‘분노의 윤리학’ ‘탐정 홍길동’, 드라마 ‘비밀의 문’ ‘시그널’ ‘내일 그대와’ 등에 이르기까지 쉼 없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어 이제훈은 "제가 배우로서 아직까지 보여주지 못한 게 많다고 생각한다. 흥행에 대한 기대감도 있지만 작품을 꾸준히 하면서 저라는 사람에게, 이제훈이라는 배우가 사람들에게 신뢰감을 주길 바란다. 그렇다고 안주하기 위해 이 길을 걷고 싶은 생각은 없다. 꾸지람을 듣던지, 많이 깨지더라도 제가 생각하는 배우로서 정체성을 키우고 싶고 앞으로 더 나아가고 싶다. 그 끝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고 말하며 부끄럽게 웃었다./ purplish@osen.co.kr
[사진] 메가박스 플러스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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