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이에게 시즌을 맡겼다는 점은 ‘안정’에 가깝다. 그러나 긴 시간을 대행 체제로 간다는 것은 어쨌든 ‘모험’이다. 이상군 감독대행 체제를 결정한 한화의 선택에, 이 대행이 정식 감독으로 승격할 수 있을지도 관심사다.
한화는 13일 이상군 감독대행 체제로 시즌을 치르기로 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지난 달 21일 김성근 전 감독이 구단에 사의를 표명한 지 약 25일 만에 나온 결정이었다. 한화는 이 대행과 팀의 장기적 운영 방안에 대해 논의함은 물론, 이 대행에게 힘을 실어주겠다며 남은 시즌 운영 방안을 드러냈다.
한화는 김성근 감독이 팀을 떠난 후 여러 가지 방안을 마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새 감독을 조기에 영입해 팀 혼란기를 줄이는 방법이 가장 유력하게 거론됐으나 이 대행을 신임했다. 우선 새 감독이 오면 팀에 적응해야 하고, 선수들도 새 감독의 색깔에 적응해야 한다. 2~3경기에 될 문제가 아니라 혼란의 위험성이 있었다. 이 대행도 올 시즌 성과에 따라 정식 감독으로 승격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뒀으나 동기부여가 될 법하다.
다만 내부에서는 나름대로의 자신감도 읽힌다. 새 감독이 오는 것보다, 이 대행이 적어도 올 시즌은 잘 꾸려갈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 섰다는 의미다. 대행체제 이후 7승11패로 성적이 썩 좋지 않은 한화지만 감독 교체 당시의 어쩔 수 없는 혼란기를 빼면 승률은 좀 더 올라간다. 여기에 이 대행이 비교적 빨리 팀을 안정시켰다는 점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가장 기본적으로 선수단 장악력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한화의 한 관계자는 “이 대행을 신임하기로 한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가 선수단을 묶는 능력”이라고 설명했다. 보직은 여러 차례 옮겼으나 오랜 기간 한화 구단에 몸담은 이 대행은 선수단과의 괴리감이 크지 않다. 온화하고 합리적인 성품이라 소통에도 능하다. 어차피 한화의 궁극적인 시선은 미래로 쏠려 있다. 프런트 경험도 있어 프런트와 같은 방향을 보기도 용이하다.
선수단도 “한 번 다시 시작해보자”는 각오로 뭉쳐 있다. 한 베테랑 선수는 “차기 감독님이 결정되지 않으셔서 어쩔 수 없이 약간의 동요는 있었던 것이 사실”라면서 “감독님께서 선수단 분위기를 좀 더 편하게 해주셔서 정리는 된 편이다. 이제 올 시즌 수장이 결정됐고 현재 틀에서 큰 변화가 없으니 외부적 스트레스 없이 선수단이 뭉쳐 앞으로 나가면 된다”고 교통정리를 반겼다.
한화 관계자는 “차기 감독 선임 작업은 시즌이 끝나고야 본격화될 것 같다”고 했다. 괜한 움직임으로 이 대행이나 현재 선수단 분위기를 흔들지 않겠다는 뜻이 읽힌다. 그렇다면 이 대행은 정식 감독으로 승격할 수 있을까. 사례를 보면 대행에서 끝난 경우가 더 많지만, 대행에서 좋은 성과를 거둬 정식 사령탑에 오른 경우도 분명히 있다.
대행에서 정식 감독으로 승격된 사례는 총 14번이다. 가장 근래에는 2011년 김성근 감독의 사퇴 당시 수석코치였던 이만수 대행이었다. 이 대행은 2011년 한국시리즈에 나갔고, 2012년부터 2014년까지 3년 임기를 채웠다.
한화의 경우는 1998년 대행을 맡아 정식 감독으로 승격했던 이희수 감독이 이듬해인 1999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기억이 있다. 2012년 한화도 한대화 감독이 물러난 뒤 한용덕 현 두산 수석코치가 대행을 맡아 14승13패1무의 비교적 좋은 성적을 거뒀다. 다만 한화는 당시 한용덕 대행을 정식감독으로 승격시키지 않았고, 대신 ‘명장’ 김응룡 현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장을 영입했으나 결과적으로는 실패로 끝났다.
이상군 대행은 이번 결정으로 대행 신분으로 101경기를 치러야 한다. 이미 18경기를 했고, 앞으로 84경기가 더 남아있다. 21세기 들어 대행 신분으로 가장 많은 경기를 한 인물은 2001년 김성근 감독(당시 LG 감독대행)인데 이 대행은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이보다 더 많은 경기에 나서야 한다. 긴 호흡을 가지고 자신의 능력을 보여줄 수 있을지 주목된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