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루 수비 훈련을 하지 않을래?”
SK 내야 유망주인 최항(23)은 퓨처스리그(2군) 개막이 시작될 때쯤 SK 퓨처스팀 코칭스태프에게 색다른 제안을 받았다. 2루 수비에 대한 권유였다. 최항의 원래 포지션은 1루와 3루, 이른바 코너 내야다. 야구 선수로 살면서 2루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최항은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최항은 “누가 먼저 제안해 주셨다기 보다는 회의에서 그런 이야기가 나온 것 같더라. 나도 조금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경쟁력 극대화의 방안이었다. 최항은 “내야 포지션을 두루 볼 수 있는 장점을 만들어주기 위해 그런 제안을 하셨다고 생각한다. 나도 내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SK의 코너에는 스타 선수들이 많다. 3루는 친형인 최정의 자리고, 1루에는 외국인 선수를 비롯한 거포 자원들이 더러 있다. 결정이 된 후, 최항은 2루에 매달렸다.
쉽지는 않았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코너 내야와 2루는 하는 일이 완전히 다르다. 신경 써야 할 부분들도 많다. 그러나 최항은 근성으로 달려들었다. 강화SK퓨처스파크에서 숙식을 하는 최항은 낮에는 다른 선수들과 같은 일과를 소화하고, 다른 선수들이 퇴근한 이후에는 2루 수비 훈련을 집중적으로 했다. 한 달 정도의 시간을 거쳤다. 그 끝에는 2루 포지션 출전이 있었다. 아직은 부족한 점이 많지만, 코칭스태프는 “처음 하는 것 치고 그 정도면 좋은 편”이라고 칭찬했다.
SK 퓨처스팀 코칭스태프가 최항을 2루에 세우기로 한 것은 그만큼 최항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최정의 막내 동생’ 정도로 알려져 있었던 최항은 올 시즌 SK 퓨처스팀 최고 타자로 우뚝 섰다. 12일까지 총 53경기에서 타율 3할3푼2리, 6홈런, 41타점, 장타율 0.522의 맹활약을 선보이고 있다. 2루에서도 병살 플레이를 무난하게 성공시키는 듯 제법 중앙 내야수의 그림이 그려지고 있다.
갈수록 성장하는 모습이 뚜렷하다는 게 SK 코칭스태프의 흐뭇한 미소다. 특히 퓨처스리그 타자들의 잠재력을 엿볼 수 있는 척도인 볼넷/삼진 비율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 4월 한 달 동안 최항은 삼진이 21개, 볼넷이 단 2개였다. 그러나 5월에는 12개의 삼진을 당하는 동안 사사구를 13개 얻어 이 비율이 역전됐다. 1군에서 통할 수 있는 자질을 보여준 셈이다.
SK 퓨처스파크는 바람이 우에서 좌로 불어 좌타자들이 불리한 구장이다. 우측 담장으로 공을 넘기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최항은 그런 불리한 와중에서도 6개의 홈런과 2루타 15개, 3루타 3개를 만들었다. 전체 68개의 안타 중 장타 비중이 35.3%에 이른다. 중장거리 타자로서의 가능성을 만들어가는 시즌이라고 할 만하다. 여기에 2루 수비까지 완성된다면 보기 드문 중장거리 2루수가 만들어진다. SK의 바람도 여기서 찾아볼 수 있다.
최항은 “3루와 2루는 많이 다른 것 같다. 타구 자체도 다르고, 잔플레이도 훨씬 많다. 투수와 유격수의 흐름도 항상 살펴야 하고, 백업 플레이도 많다”고 했다. 하지만 서서히 나아지는 모습에 자신감도 붙는다. 올 시즌 2군 활약에 대해 최항은 “운이 따랐던 것 같다”고 겸손하게 말하면서도 “예전에는 급하기만 했는데 요즘은 뭔가 느껴지는 게 있다. 무엇이 잘못됐는지 스스로 알게 됐고, 방향을 설정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군 입대 전과 다른 점을 찾았다.
2군 선수들의 목표는 당연히 1군 진입이다. 최항의 가슴 한 구석에도 그런 목표가 없을 수 없다. 그러나 최항은 “1군에 대한 생각은 아직 하지 않고 있다. 야구를 할 수 있을 때 스스로 발전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목표다. 꼭 1군이 아니더라도 2군에서도 할 일을 하다보면 자리가 생기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루하루 열심히 하는 선수가 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한 달간의 야간훈련에서 보듯 재능과 근성을 모두 갖춘 최항이 올 시즌 SK의 MIP(기량발전상)을 예약하고 있다. 그 끝에 1군이 있을지도 주목할 일이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