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리그 홈런왕들의 말년은 대부분 초라했다. 당대 최고의 거포들도 마지막 시즌은 이빨 빠진 호랑이처럼 힘 없이 마무리했다.
현역에서 은퇴한 홈런왕 출신 타자 10명의 마지막 시즌 평균 홈런 기록은 2.7개. KBO리그 최초로 40홈런 시대를 열었던 장종훈은 2005년 한화에서 마지막 해 7경기 홈런 1개를 기록하는데 그쳤다. 3차례 홈런왕을 차지한 이만수도 1997년 삼성에서 39경기 홈런 2개에 머물렀다.
1995년 해태 김성한이 기록한 8개가 최다 홈런 개수였다. 이외 홈런왕들의 마지막 시즌 홈런 개수는 김봉연·박재홍이 5개, 심정수가 3개, 이만수·김성래가 2개, 장종훈·박경완이 1개, 김상호·김기태는 0개. 시즌 홈런왕을 차지한 적은 없지만 이승엽 이전 통산 최다 351홈런을 친 양준혁도 2010년 마지막 해에는 64경기에서 홈런 1개에 만족했다. 리그를 호령해온 홈런왕들도 흐르는 세월 앞에선 무기력했다.
하지만 '국민타자' 이승엽(41·삼성)은 다르다. 올 시즌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하는 이승엽은 11일 대전 삼성전에서 6회 역전 투런포로 시즌 10호 홈런을 기록했다. 일본 진출 기간을 제외하고 1997년부터 13년 연속 두 자릿수 홈런. 장종훈·양준혁(15년), 박경완(14년)에 이어 KBO리그 역대 4번째 기록이었다.
이에 대해 이승엽은 "의미가 있습니까"라며 "안타를 많이 치고 도루를 많이 하는 선수들에게 10홈런이 의미 있을지 모르지만 난 연봉도 많이 받고, 중심타선에 있기 때문에 10개도 부족하다. 10년 연속 20홈런 정도 되면 의미 있을지 몰라도, 10개의 홈런은 20~30경기 안에서도 칠 수 잇는 것이다. 정말 하나도, 조금도, 손톱만큼도 기쁘지 않다"고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하지만 역대 KBO리그에서 은퇴 시즌 두 자릿수 홈런은 보기 드물다. 이승엽에 앞서 이 기록을 달성한 선수는 2010년 김재현이 유일하다. SK 소속이었던 김재현은 111경기에서 10홈런을 쳤다. 당시 시즌을 앞두고 은퇴를 선언했는데 두 자릿수의 홈런을 치고 은퇴했다. 최초의 은퇴 시즌 10홈런 기록이었다.
7년의 세월이 흘러 이승엽이 김재현의 기록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앞으로 삼성의 시즌은 83경기 더 남았고, 이승엽이 김재현을 넘어 은퇴 시즌 최다 홈런 신기록을 세우는 건 시간문제다. 대부분 선수들이 자신의 은퇴 시즌을 알지 못하고 뛰지만, 김재현처럼 이승엽은 예고 은퇴로 마지막 해를 보내고 있다.
대부분 거포들이 마지막 해에는 힘 없는 모습으로 초라하게 유니폼을 벗었지만 이승엽은 다르다. 떠나는 해에도 중심타자로서 당당함을 잃지 않고 있다. 마지막 해에도 은퇴 시즌 최다 홈런으로 새 역사를 쓰고 있는 이승엽은 "더 쳐야 한다. 부족하다. 프로야구 선수는 결과로 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waw@osen.co.kr
▲ 역대 은퇴 시즌 홈런 순위
1. 2017년 이승엽(삼성) 55경기 10홈런(진행 중)
1. 2010년 김재현(SK) 111경기 10홈런
3. 1995년 김성한(해태) 82경기 8홈런
4. 1988년 유두열(롯데) 88경기 7홈런
5. 1992년 김용철(삼성) 51경기 6홈런
5. 1992년 정문언(태평양) 78경기 6홈런
5. 2015년 최희섭(KIA) 42경기 6홈런
5. 2007년 백재호(한화) 80경기 6홈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