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대 초반, 롯데 자이언츠는 ‘잠수함 왕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사이드암 계열의 선수들이 많았다. 김성배(두산), 정대현, 이재곤, 홍성민(경찰청) 등 1군에서 활용 가능한 옆구리 투수들이 즐비했다.
하지만 올 시즌, 롯데는 잠수함 투수 품귀 현상이 생겼다. 이적과 부상, 군 복무 등의 다양한 이유로 1군에서 잠수함 투수들의 얼굴을 찾기가 힘들어졌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현재 1군에서 생존해 있는 투수는 1군 투수 후보군에서도 명단을 찾기 힘들었던 배장호(30)가 유일하다. 그리고 배장호는 롯데의 새로운 마당쇠로서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배장호는 올 시즌 28경기에서 33⅓이닝을 소화하며 3승3패 1홀드 평균자책점 3.51, 이닝 당 출루 허용률(whip) 1.29의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배장호의 보직은 그리 명확하지 않다. 필승조로도 나서지만 그 기회는 제한적이었고, 추격조, 패전조, 혹은 롱릴리프까지 다양한 상황에서 마운드에 오르고 있다. 때로는 우타자 상대 원포인트 릴리프로 한 타자만 상대할 때도 있었고, 올해 최다 이닝이 2⅔이닝일 정도로 긴 호흡으로 던져야 하는 상황이 있었다. 아울러, 지난달 31일 대구 삼성전부터 6월 3일 사직 kt전까지, 선발진의 붕괴와 불펜진의 가용 자원 부족으로 4경기 연속 등판을 한 적도 있었다. ‘전천후 출격 대기조’의 성격이 짙다. 올 시즌 롯데의 새로운 마당쇠로 등극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올 시즌 롯데 구원투수 가운데 가장 많은 이닝을 소화하고 있다.
구원 투수로서 가치와 역량을 인정받을 수 있는 기록도 배장호는 좋은 편이다. 배장호가 올 시즌 마운드에 올랐을 때, 팀 내에서 가장 많은 승계주자들이 누상에 있었다(28명). 이는 리그에서도 마찬가지. 30이닝 이상 던진 구원 투수들 가운데 가장 많은 승계주자 기록이기도 하다. 그만큼 배장호는 팀이 위급한 상황에서 언제나 마운드에 올랐다. 승계주자 실점 허용률도 32.1%(28명 중 9명)로 나쁜 편이 아니다.
경기 막판, 7회부터 9회까지, 3점 이내 접전 득점권 상황에서도 배장호의 가치는 두드러진다. 이 상황에서 배장호의 피안타율은 8푼9리(12타수 1안타), 피OPS는 0.436에 불과하다.
또한 우완 정통파 일색의 롯데 불펜진에 유일한 사이드암 투수로서 다양성이 부족한 팀 불펜진에 힘을 불어넣고 있다. 유일한 1군 사이드암 투수이기 때문에 배장호의 존재감은 더욱 눈부실 수밖에 없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배장호는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다. 지난 11일 울산 두산전이 대표적이다. 배장호는 3번째 투수로 올라와 2⅔이닝 1피안타 1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하고 팀의 7-4 역전승을 일궈냈다. 특히 두 번째 투수인 장시환이 ‘헤드샷 퇴장’을 당하면서 긴급하게 마운드에 오른 험난한 상황이었지만 아무런 탈 없이 이닝들을 묵묵히 소화하며 시즌 3승 째를 수확했다.
배장호는 지난 11일 울산 두산전이 끝난 뒤, “언제든지 나가는 상황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 구원 투수이고, 항상 준비를 잘 해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투구 수나 투구 일수는 코치님 관리만 믿고 부담 없이 던지고 있다”고 말하면서 롯데의 새로운 마당쇠로 나서는 마음가짐을 전했다.
윤길현, 장시환, 손승락의 필승 불펜진이 존재하고 있는 롯데다. 하지만 배장호가 등판하는 상황이나, 기록들을 살펴보면 이들 못지않은 대우와 평가, 그리고 가치를 인정받을 자격이 충분하다는 것이 여실히 증명 되고 있다. /jhrae@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