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 리그에는 이른바 ‘부자(父子) 스타’의 사례가 많지는 않은 편이다. 아무래도 메이저리그(MLB) 보다는 프로야구 역사가 짧은 탓이 크다. 하지만 이제는 KBO 리그에도 그런 조합이 떴다. 현역 최고의 스타였던 아버지 이종범(47)에 이어 이정후(19·넥센)가 아버지의 길을 천천히 따라가고 있다.
아마추어 시절부터 ‘이종범의 아들’로 널리 알려졌던 이정후였다. 스스로 가진 재능이 오히려 아버지의 후광에 가린 면도 없지 않았다. 아버지가 현역 시절 워낙 대스타였기에 부담도 컸다. 그러나 이정후는 지난해 가고시마 마무리캠프 당시 이에 대해 “이제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고 웃었다. 오히려 좋은 활약으로 ‘이종범의 아들’이 아닌, 당당한 ‘야구선수’ 이정후로 인정받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그런 각오는 그라운드에서 유감없이 나타나고 있다. 올해 최고의 신데렐라 중 하나가 이정후다. 캠프 당시부터 넥센 코칭스태프의 눈도장을 받은 이정후는 고속 승진을 이어갔다. 신인으로서는 드물게 개막 엔트리에 합류했더니, 이내 주전 자리를 꿰찼다. 60경기에서 타율 3할1푼6리, 2홈런, 21타점, 4도루를 기록하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제는 올스타전 출전도 사정거리에 있다. KBO 리그 역사상 이런 고졸 루키를 찾는 것은 쉽지 않다.
신인왕은 굉장히 유력하다는 평가다. 마땅한 경쟁자도 보이지 않는다. 고졸루키 첫 3할이라는 대기록도 불가능하지 않다는 평가다. 물론 첫 시즌이라 앞으로 무수한 고비를 맞이하겠지만 지금까지는 몇 차례의 짧은 슬럼프를 잘 넘기는 모습이라 기대가 크다. 대졸 신인이었던 아버지도 첫 시즌(1993년) 타율은 2할8푼이었다. 그렇다면 이정후는 아버지를 능가하는 누적기록을 남긴 선수가 될 수 있을까.
이종범이 워낙 대선수이기에 하루 이틀에 될 문제는 아니다. 아주 장기적인 시각에서 봐야 할 문제임은 분명하다. 이에 대해 한 해설위원은 재미있는 대답을 내놨다. 이 해설위원은 “이정후가 지금 활약을 몇 년 이어가면 이종범 위원의 기록과 엇비슷해질까”라고 반문하면서 “이 위원의 경우 일본에 다녀온 기간도 있고 지금은 당시보다 경기수와 선수 수명이 늘어났다. 또 이정후는 고졸 아닌가. 그래도 분명 쉽지 않을 것이다. 아니 어려울 것이다. 그만큼 이종범은 특별한 선수”라고 조심스레 예상했다.
이종범은 프로통산 1706경기에서 타율 2할9푼7리, 1797안타, 194홈런, 730타점, 510도루를 기록했다. 일본 기록을 빼도 이 정도다. 이정후가 현재 페이스를 유지해 전 경기에 출전한다고 가정해도 160개 정도의 안타를 친다. 부상 없이 꼬박 12시즌은 쳐야 한다. 이정후의 기량이 더 나아질 가능성도 충분하지만 현실적으로 매년 144경기 모두에 출전하기는 어렵다. 군 문제로 두 시즌 정도는 자리를 비울 수도 있다. 빨라도 30대 초반은 되어야 한다. 부상이라도 오면 달성 예상 시점은 훨씬 더 뒤로 밀린다.
홈런은 이보다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정후는 중장거리 타자로서의 면모를 선보이고 있으나 아직까지는 홈런 개수가 많지 않다. 이는 향후 이정후가 어떻게 성장하느냐에 달렸다. 보통 힘이 붙으면서 홈런 개수가 늘어난다는 점을 고려하면 안타와 비슷한 시점에 경신할 수도 있다. 타점은 그나마 난이도가 덜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이정후의 타순이 어디에 위치하느냐에 따라 이 역시 시간은 달라질 수도 있다.
도루는 어려워 보인다. 주력이 있는 이정후는 궁극적으로는 20개 이상의 도루가 가능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래도 20개씩 꼬박 25시즌을 뛰어야 한다. 평균 30개를 한다고 보면 17시즌인데 30대 초·중반에도 30개 이상 도루를 하기는 쉽지 않다. 이 해설위원의 지적대로 이종범의 기록은 아들에게 엄청난 도전이 되는 것이다. 어쩌면 이정후의 대단함과 동시에 이종범이라는 전설의 위대함도 실감할 수 있는 시즌이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