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최선의 방안을 놓치고 선택한 차선이 의외의 성과를 거두는 경우가 있다. 거포 영입의 뜻을 이루지 못한 kt도 멜 로하스 주니어(27)에게 그런 기대감을 가지고 있을 법하다.
kt는 미국 출신의 외야수인 멜 로하스 주니어를 총액 40만 달러에 영입했다고 9일 공식 발표했다. 극심한 타격 부진에 시달렸던 조니 모넬을 지난 5월 20일 웨이버 공시한 kt는 그 후 대체 외국인 타자 영입에 심혈을 기울인 끝에 새 얼굴을 확정지었다. 로하스는 비자발급 등 행정적인 절차를 마무리하고 이르면 오는 16일 수원 한화전에 합류할 예정이다.
kt가 그간 공개했던 새 외국인 선수의 조건과는 다소 떨어져 있다. 당초 kt와 김진욱 감독은 ‘거포’ 영입을 원했다. kt는 9일까지 59경기에서 팀 타율 2할6푼6리(리그 8위), 팀 장타율 0.388(리그 9위)에 머물러 있다. 이런 타선의 확실한 구심점이 필요했다. 실제 처음 접촉한 선수도 거포 유형의 선수로 알려졌다. 그러나 실현되지 않았다. 그 대신 영입한 선수가 로하스다.
‘1순위’는 아니었지만 가지고 있는 장점은 확실하다. kt의 당초 구상과는 다른 방향에서 팀 공격력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오랜 기간 몬트리올의 중간투수로 활약하며 잘 알려진 멜 로하스의 아들이자, 특급 스타였던 모이시스 알루의 사촌으로 일찌감치 유명세를 탔던 로하스는 데뷔 당시부터 다재다능한 선수로 주목받았다. “특급 선수가 되기는 부족하지만, 신체적 능력이 좋아 5툴 플레이어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는 어린 시절 스카우팅 리포트는 지금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피츠버그 입단 후 하위 마이너리그 레벨에서 두각을 드러낸 로하스는 지난해 현금 트레이드를 통해 애틀랜타로 이적했다. 이적 후 지난해 트리플A 64경기에서 타율 2할7푼, OPS(출루율+장타율) 0.840, 10홈런, 34타점, 9도루를 기록했다. 올 시즌 트리플A 성적은 54경기에서 타율 2할5푼9리, OPS 0.723, 6홈런, 31타점이었다. 만 27세로 서서히 전성기를 열어 갈 나이다. 올해 적응을 잘 한다면, ‘내년’도 기대할 수 있다.
전형적인 거포 유형의 선수는 아니다. 대신 다방면에서 골고루 재능을 갖췄다. 잘 빠진 신체조건을 갖췄고 배트스피드가 좋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스위치 타자라는 이점도 있다. 좌·우 타석 성적의 편차가 심하지도 않은 편이고 언제든지 3루타를 만들어낼 수 있는 주력도 있다. 리그에 적응을 잘 한다면 충분히 중장거리포로 활약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는 평가다. kt도 이런 점을 기대하고 있다.
사실 마이너리그 성적은 일견 초라해 보일 수도 있다. 특히 장타가 그렇다. 하지만 타자들의 성적이 뻥튀기되는 퍼시픽코스트리그가 아닌, 상대적 투고타저인 인터내셔널리그 성적이라는 점은 고려해야 한다. 굳이 찾자면 현재 로하스와 가장 비슷한 유형의 선수인 로저 버나디나(KIA)도 인터내셔널리그에서 뛸 당시의 장타율은 0.400에서 0.450 사이였다. 지금의 로하스와 비슷하다.
그런 버나디나는 올해 56경기에서 11개의 대포를 터뜨렸다. 기초적인 힘은 로하스가 더 낫다는 의견도 있다. 낮은 공을 퍼올려 담장을 넘길 수 있는 힘 정도는 기본으로 가지고 있다. 다만 전체적으로 선구안이 좋은 유형의 선수는 아니다. 데뷔 초기보다는 나아지고 있다는 게 위안거리다. 방망이를 아끼는 스타일과도 거리가 있다. 상대적으로 스트라이크존을 덜 탈 가능성이 있는 선수지만, 모넬의 사례를 생각하면 역시 확실한 적응이 최우선이다.
수비 활용성도 좋다. 마이너리그 통산 중견수로만 4101⅓이닝을 뛰었다. 좌익수와 우익수 경험도 풍부하다. 어깨도 괜찮고 센스도 있다. 스트라이크존 적응과 국내 선수들에게 수비 부담을 줄여줄 수 있다. kt로서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로하스가 외야의 중심을 잡으며 중장거리포로 활약하면서, 1·3루에 버티고 있는 어린 선수들이 성장하는 그림이다. 장기적으로도 이게 좋다. 전화위복 드라마가 만들어질지 흥미롭다. /skullbo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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