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타자들에게 KBO 리그 첫 시즌 초반은 적응의 시간이다. 미국과는 다른 스트라이크존에 적응해야 하고, 생소한 투수들의 구질이나 스타일도 머릿속에 채워 넣어야 한다. 때문에 보통은 슬로스타트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SK 새 외국인 타자 제이미 로맥(32)은 시작부터 뜨겁다. 어깨 부상으로 중도 퇴출된 대니 워스를 대신해 SK 유니폼을 입은 로맥은 5일까지 22경기에서 타율 2할8푼6리, 11홈런, 22타점, 출루율 4할2푼3리, 장타율 0.766, OPS(출루율+장타율) 1.189의 대활약을 선보이고 있다. “아직 스트라이크존과 투수 유형에 적응 중”이라는 선수 자신의 말을 그대로 믿기 어려울 정도다.
타석에서 인내심, 그리고 강한 힘을 두루 갖췄다던 SK의 기대는 헛된 것이 아니었다. 아직도 스트라이크존에 다소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자신의 히팅 존에 들어온 공은 자비가 없다. 실제 로맥은 11개의 홈런 평균 비거리가 122.7m에 이른다. 이는 리그 7홈런 이상을 기록한 선수 중 단연 1위다. 135m짜리 홈런을 두 방이나 때려내기도 했다. 로맥은 22개의 안타 중 무려 15개(68.2%)가 2루타 이상의 장타다.
KBO 리그를 수놓은 수많은 스타 외국인 타자들이 있었지만 적어도 ‘홈런’에 있어 로맥만큼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 선수는 드물었다. KBO 리그 첫 시즌, 첫 22경기 기록을 놓고 보면 로맥이 얼마나 화끈한 홈런포를 날렸는지 잘 알 수 있다. 로맥은 첫 21경기에서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했고, 첫 22경기에서 11개의 홈런을 터뜨렸다. 비교적 근래라고 할 수 있는 2007년 이후 11년간 데뷔 후 첫 21경기에서 두 자릿수 홈런을 친 선수는 하나도 없었다.
그나마 이에 근접했던 선수는 베네수엘라 출신으로 화끈한 힘을 자랑했던 2014년 롯데의 루이스 히메네스, 그리고 올해 NC의 새 외국인 타자 재비어 스크럭스 정도다. 두 선수는 첫 22경기에서 8개의 홈런을 쳤다. 사실 이도 분명 많은 수치인데 로맥 앞에서는 빛이 바랜다.
그 외 2008년 빅터 디아즈(한화·7홈런), 2014년 호르헤 칸투(두산·첫 22경기 7홈런), 2008년 카림 가르시아(롯데·6홈런), 2014년 에릭 테임즈(NC·6홈런), 2015년 앤드류 브라운(SK·6홈런), 2015년 댄 블랙(kt·6홈런) 등도 데뷔 초 홈런포로 좋은 인상을 심어준 선수들이었다. 하지만 로맥과 같은 두 자릿수 홈런과는 거리가 있었다.
로맥의 홈런 페이스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자신의 히팅 존을 극단적으로 유지하는 선수인 만큼 타율은 다소 들쭉날쭉, 대신 볼넷을 많이 얻어 출루율은 수준급을 유지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그러나 걸리면 넘어가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금처럼 타율과는 별개로 홈런은 꾸준하게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다.
바깥쪽 낮은 코스 등 몸쪽보다는 바깥쪽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어 투수들로서는 유인구를 얼마나 잘 떨어뜨리느냐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조금의 실투도 용납하지 않았던 것이 지금까지의 로맥이었다. 반면 로맥을 상대로 과감하게 몸쪽 승부를 할 수 있는 투수는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이 중론. 자칫 잘못 조금이라도 몰리면 장타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위험부담이 있기 때문이다. SK의 대규모 홈런공장이 또 하나의 기계를 돌리며 공포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