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좌완 요원인 김태훈(27)은 최근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질 날이 없다. 야구가 잘 안 될 때도 항상 웃는 워낙 밝은 성격이기도 하지만, 최근 프로 데뷔 후 첫 승의 감격을 거두는 등 생각대로 야구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스캇 다이아몬드의 어깨 통증으로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한 김태훈은 소중한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5경기(선발 4경기)에서 평균자책점 1.37로 잘 던졌고, 지난 5월 26일 인천 LG전에서는 5⅓이닝 무실점 호투로 2009년 프로 입단 후 첫 승을 따냈다. 오랜 기간 제자리에 머물렀던 김태훈이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순간이었다.
보통 첫 승을 거둔 선수들에 대한 주위의 대접은 후한 편이다. 사실 박한 대접을 할 이유가 전혀 없다. 김태훈이 승리를 거둔 날 SK의 덕아웃은 빡빡한 경기에 내내 조마조마하다 환호를 내질렀다. 김태훈도 승리 당일에는 주위에서 칭찬 세례를 많이 받았다. 그런데 그 다음 날부터는 선배들의 시선이 싹(?) 달라졌다. 굳이 말하자면 좀 더 냉정해졌다.
인천 원정 당시 전 소속팀인 SK 덕아웃에 잠시 인사차 들렸다던 진해수(LG)는 농담을 섞어 “태훈이가 선배들에게 괴롭힘을 많이 받고 있더라”고 껄껄 웃었다. 요즘 김태훈이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어깨가 좀 올라갔는데?”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너무 들떠 선배들의 눈밖에 난 것은 아닐까? 김태훈은 이에 대해 “사실 난 평상시와 똑같이 행동하는데 선배들이 자꾸 그러신다”고 해명했다.
다 이유가 있다. 선배들은 "농담 삼아 들뜨지 말라고 그러는 것"이라고 말한다. 앞으로 더 잘할 수 있고, 갈 길이 먼 투수임을 알기에 지금 이 시점에 안주하면 더 큰 그림을 놓칠 수 있다. 이럴수록 더 김태훈의 주위를 차분하게 만들어주려는 선배들의 마음에도 없는 쓴 소리인 것이다. “어깨가 진짜 올라갔느냐”는 의혹에 “내가 원래 목이 좀 짧아서 그렇게 보이는 것”이라고 다시 웃는 김태훈이지만 선배들의 뜻을 잘 알고 있어 불만은 전혀 없다.
SK의 변화된 분위기를 상징하는 요소다. SK는 올해 베테랑들의 헌신이 도드라진다. 이는 시즌 전 “개인이 아닌, 팀을 위해 뭉치자”는 트레이 힐만 감독의 주문, “베테랑 선수들이 경기장 밖에서도 후배들의 모범이 되고 코치의 임무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염경엽 단장의 지론에 충실히 따른 결과다. 잘하는 선수가 경기에 나가는 것은 당연하지만, 잘하는 선수가 꼭 클럽하우스의 리더가 되는 것은 아니다. 베테랑의 임무는 그런 부문에서 여전히 유효하다.
사실 현재 출전 시간이 만족스럽지 않은 선수들도 있고, 2군에 내려가 있는 선수들도 있다. 사람인 이상 속이 상하고, 불만이 없을 수 없다. 그러나 이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며 후배들을 이끌어가는 베테랑들의 헌신 속에 SK의 팀 분위기와 팀웍은 끈끈하게 이어지고 있다. 사실 객관적인 전력에서 처지는 SK가 공동 4위를 기록하며 무너지지 않고 있는 것도 다 이런 분위기가 밑에 깔려 있어서다. 지난해와 비교해 가장 눈에 띄게 달라진 부분이라는 말도 나온다.
김태훈도 선배들의 관심 속에 초심을 잃지 않으며 다음 등판을 기다리고 있다. 코칭스태프와 꾸준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문제점을 보완 중이다. 데이브 존 투수코치가 꼼꼼하게 김태훈의 상태를 체크하며 조언을 한다. 한 차례 성공의 경험이 생긴 김태훈의 귀도 바짝 열렸다. 선수단 전체에 이런 선순환이 이어진다면, SK의 방향도 더디지만 흔들림 없이 나아갈 수 있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