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모 취중한담] 송대관-김연자 갈등과 상명하복의 군사문화
OSEN 강서정 기자
발행 2017.06.01 14: 59

[OSEN=유진모 칼럼] 트로트가수 송대관(71)과 김연자(58) 사이의 폭언과 인사문제를 둘러싼 진실공방이 대중의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달 송대관이 한 매체를 통해 병원에 입원한 사진을 공개, 김연자의 매니저 홍상기 씨로부터 심한 폭언을 듣고 급성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고 주장하면서 화제가 되기 시작됐다.
송대관은 지난 4월 24일 KBS1 ‘가요무대’ 녹화를 마치고 무대에서 내려오던 중 홍 씨와 마주쳐 인사를 나누던 중 그로부터 “왜 그렇게 인사를 받아? 이걸 패버리고 며칠 살다 나와?”라는 폭언을 들었다고 폭로했다.
여론은 홍 씨 및 김연자에게 불리하게 돌아갔다. 그러자 5월 30일 두 사람은 기자회견을 열고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해 사과하는 한편 송대관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홍 씨는 송대관에게 수차례 정중하게 인사하는 CCTV 영상까지 공개했다.

김연자 역시 “주로 일본에서 활동하느라 송대관과 서먹서먹했던 나로선 하루빨리 가깝게 지내고 싶어 열심히 인사를 했지만 2~3년 전부터 인사를 잘 받아주지 않았다. 뭔가 나한테 못마땅한 점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맞받았다.
이렇게 상반된 진실공방의 경우 어느 한쪽이 거짓말을 하거나 아니면 갈등의 진행과정에서 서로의 시각이 달라 상반된 해석이 나옴으로써 주장이 갈라지기 마련이다. 핑계 없는 무덤이 없겠지만 그럼에도 현재 이를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은 싸늘하다.
그 이유는 주제 자체가 별로 발전적이거나 생산적으로 비치지 않기 때문이다. 케케묵은 선후배 사이의 예절 및 자존심 대립에 쏠린 듯하다는 대중의 반응이다. 그렇다면 미풍양속인 동시에 시대착오적인 발상인 서열 갈등으로 해석된다. 우리나라는 유독 나이에 따른 계급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50대 이상만 해도 말다툼을 하다가 다급해지면 ‘너 몇 살이야’라는 유치한 압박으로 군림하려 한다. 아직도 적지 않은 ‘어르신’들은 나이가 벼슬인 줄 착각한다.
조직폭력배는 더 극단적이다. 후배는 선배 앞에서 말대꾸는커녕 함부로 웃을 수도 없다. 행여 선배의 말에 반박하거나 거스를 경우 선배는 ‘어린놈이’라는 한 마디로 윽박지른다. 이는 과거의 연장자에 대한 맹목적인 복종심이 박정희-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진 군사정권이 낳은 군사문화의 지배적 특성과 잘못 결합된 영향이 크다. 상명하복의 군사문화는 직장부터 학교까지 구석구석에 짙게 침투해있다. 사회 곳곳에 명령과 복종만 있되 토론이 무시되는 우리나라다.
연예계라고 다를 바 없다. KBS2 ‘개그콘서트’의 ‘분장실의 강 선생님’이 적나라하게 까발린 바 있다. 송-김의 갈등의 본질은 다른 데 있겠지만 겉으로 보이는 모양새는 이런 수직적 선후배 관계 속의 불만 혹은 헤게모니 다툼이란 냄새를 풍긴다.
“(홍 씨의 협박이)무서워서 도망 나온 신세가 됐다”며 정신질환에 시달릴 정도의 피해를 호소하는 송대관에게선 ‘새까만 후배인 홍상기와 김연자가 감히’라는 뉘앙스가 묻어나온다. 김연자는 “제가 죄인이 된 기분이다. 저 때문에 일이 커진 것 같다. 송대관 선배님한테도 죄송하다. 물의를 일으켜서 죄송하다”고 눈물을 흘렸다. 만약 진짜 그런 심정이라면 기자회견을 통해 송대관의 주장에 반박하는 홍 씨의 입을 열게 한 저의는 무엇일까?
송대관 역시 이 사건의 첫 인터뷰를 한 매체에 병상에 누워있는 사진을 제공했다. 그 나이에 병원에 입원하면서 일부러 사진을 남기는 사람은 그리 흔치 않다. 대중에게 좋은 모습만 보여야한다는 연예인의 자세를 그 누구보다 잘 아는 70대의 ‘대선배’ 송대관이 초췌한 ‘인증샷’을 남기고, 그걸 매체에 제공한 의도에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이유다.
그의 주장이 맞다면 상당히 억울하고 참담한 심정일 것이다. 한국적 정서상 새까만 후배의 매니저-자신보다 어린-에게 참을 수 없는 모욕감을 느낄 폭언을 들었다면 자괴감이 들 이유는 충분하다. 하지만 그런 선후배의 위계질서에 대한 개념이 확고한 사람이라면 그걸 세상에 공개하는 게 옳은지에 대해선 심각한 고민을 했어야 선배답지 않았을까?
송대관은 지상파TV에 자주 출연하는 몇 안 되는 트로트가수 선배로서 김연자의 휴대전화번호를 알아내는 게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가능하다면 직접 대면해서, 그게 불가능하다면 최소한 전화를 통해서라도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시시비비를 가리는 게 순서였다. 만약 김연자가 순응하지 않았다면 법적인 조치를 강구하는 한편 한국연예매니지먼트협회와 대한가수협회 및 유관단체에 호소하는 ‘공식절차’를 밟는 게 여러모로 바람직하다는 판단이 불가능한 나이는 아니다.
굳이 병원 ‘인증샷’을 매체를 통해 널리 알릴 필요도 없이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사회적 이슈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합리적인 대처 차원에서 바라봤을 때 그가 다소 경박하거나 성급했단 의혹에서 자유롭기 쉽지 않다.
그의 대응의 결정적 패착은 김연자의 “인사를 안 받아줬다”는 이번 사건의 원인에 대한 해명 혹은 반박이 없다는 점이다. 김연자와 홍 씨는 물론 대중이 고개를 끄덕일 만한 설명이 있었다면 여론의 흐름을 바꾼 김연자의 기자회견과 그후의 여론의 부분적 변화는 없었을 것이다. 현재 이슈는 폭언을 야기한 갈등이고, 그 갈등의 근본이 송대관이 김연자의 인사를 안 받아준 것인데, 인사를 안 받은 이유는 없다.
김연자도 논란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송대관이 인사를 해도 해도 안 받아줬다면 2~3년 동안 이유를 알아내고 고치려는 노력을 했어야 가요계 선후배 위계질서의 정서상 당연할 텐데 그런 시도에 대한 증거제시를 생략했다. 만약 송대관이 치졸하거나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그랬다면 백안시하면 그만이다. 오해가 있었다면 후배 입장에선 당연히 저자세로써 적극적으로 푸는 데 노력을 기울였어야 마땅하다.
그녀는 분명히 “송대관에게 죄송하다”며 “제가 죄인이 된 기분이다. 저 때문에 일이 커진 것 같다. 물의를 일으켜서 죄송하다”고 덧붙였다. 뭔가 앞뒤가 안 맞는다. 선배에게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면 직접 찾아가 사과하는 게 예의고 순서에 맞다. 홍 씨는 송대관이 ‘언론플레이를 한다’고 했는데 김연자가 송대관에게 직접적인 대면사과를 안 하고 언론에 이런 뜻을 흘리는 것 역시 언론플레이의 의혹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 뭣보다 이를 불편하게 바라보는 대중에 대한 큰절이 우선이다.
또한 “죄인이 된 기분”이란 말은 ‘나는 아무 잘못이 없는데 분위기가 죄인으로 몰고 간다’의 메타포이기 때문에 송대관에게 죄송하다는 말이나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는 대중에게 사과하는 듯한 뉘앙스의 코멘트 역시 큰 진실성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 말 속엔 ‘아무 잘못이 없는데 분위기상 나만 나쁜 사람이 된 듯하다’는 뜻이 담겨있다는 의혹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
세 사람이 간과하는 가장 큰 건 대중에 대한 진정한 사과다. 이번 사건은 언론을 통해 이토록 큰 화제가 될 만큼 심각한 법적 오류가 부각된 내용이라기보다는 지극히 국지적이다 못해 가수활동과는 거리가 먼 지엽적인 것이다. 오로지 개인적인 차원의 갈등이다. 이걸 널리 알려 가요계나 방송계의 고질적인 적폐 등을 청산하겠다는 거창한 개혁과 발전의 의도가 있는 것도 아니다. 연예계의 잘못된 오랜 관행인 선배에 대한 과잉충성에 대한 자아비판과도 거리가 멀다.
만약 송대관과 홍 씨 사이에서 심각한 폭언이 오갔다면 명백한 범죄행위다. 경찰서에 가서 시시비비를 가리면 그뿐이다. 미디어를 통한 국민적 관심의 비생산적 소비를 유발할 이유가 없다. 발단이야 어찌 됐건 트로트계의 관행으로 봤을 때 김연자와 홍 씨가 어리다는 ‘원죄’에서 자유롭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이렇게 사건이 일파만파로 사회적인 물의로까지 번져간 데 대한 원인제공자가 그들이란 정서가 팽배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송대관은 선배이기 때문에 잘못이 더 크다. 양측의 갈등이 커지기 전에 ‘어른’으로서 먼저 해결하려는 노력을 보이기는커녕 오히려 언론에 병상의 사진을 제공하면서 일을 키웠다. 결코 어른답다고 보기 힘든 행동이었다.
트로트는 젊은이보다는 장년층과 노년층이, 도시인보다는 시골사람이, 재벌보다는 노점상인이, 화이트컬러보다는 블루컬러가 더 즐기는 음악이란 인식이 짙다. 즉 서민의 생활 깊숙이 자리한 지극히 평범하거나 가난한 사람들의 위안이자 문화다. 꼭 그래야만 하는 건 아니겠지만 이렇듯 서민들이 즐기는 트로트로 먹고 사는 트로트가수라면 가능하면 서민적인 정서를 공유하는 게 바람직한 것은 맞다.
북한의 핵무기 위협이 극에 달하고, 국제적 정세가 심각하게 돌아가는가 하면, 국내 경제사정이 최악으로 치달아 서민의 삶이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현재 서민을 위로하는 데 앞장서야 할 트로트 원로들이 유치한 인사 싸움으로 대중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건 심각한 직무유기다. 김연자는 ‘빈털털이 이혼’으로 동정표를 받아 국내복귀에 순항 중이고, 송대관은 ‘사기 혐의’를 벗고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복귀했다. 트로트계는 일부 스타를 제외하곤 설자리가 거의 없다. 그럴 때가 아니다. /osenstar@osen.co.kr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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