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발전이 점점 세상을 바꾸고 있다. 전혀 다른 두 종목에서 기술 발전이 엄청난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지난 주 기념비적인 사건이 전혀 다른 분야에서 동시에 일어났다. 새로운 기술의 등장이 한 분야의 양상 자체를 바꿔 버렸다. 바로 축구와 바둑 두 인기 분야에서 새로운 기술이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스포츠계는 일반적으로 자신들의 종목에 과학의 힘을 빌리기 시작했다. 과거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는 변명이 유행할 만큼, 인간의 힘으로 공정하고 정확한 판정을 내리기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방송 중계가 기술 발전으로 진화하면 진화할수록 시청자들의 눈은 더욱 날카로워졌다. 인터넷 방송과 동영상을 통해 수많은 오심들이 즉시 발견되고 커다란 논란을 일으켰다. 결국 2000년대 들어오면서 메이저리그(MLB)를 중심으로 야구계가 적극적으로 비디오 판독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축구를 대표하는 국제축구연맹(FIFA)는 ‘심판의 권위를 존중해야’고 주장하며 비디오 판독의 도입을 거부했다. 골 라인 판독도 거부해 큰 논란을 일으켰다. 하지만 피파도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가 없었다. 결국 FIFA도 과학 기술의 힘을 빌리기 시작했다. 5월 20일 한국에서 열린 2017 FIFA U-20 한국 월드컵에서는 연령별 국제 대회 최초로 '비디오 판독 시스템(VAR, video assistant referees)'이 도입됐다. 피파는 오심을 줄이고 판정에 정확성, 공정성을 기한다는 취지를 내걸었다.
VAR는 도입과 동시에 축구의 양상을 바꿔버렸다. 이전이라면 그냥 넘어갔을 상황도 비디오는 놓치지 않았다. VAR는 도입 첫날부터 주심이 잡지 못한 선수의 반칙, 골라인 아웃 등을 잡아내며 그라운드의 포청천으로 등극했다. VAR의 등장으로 아예 진출팀이 바뀐 조도 있다. 바로 U-20 월드컵 조별리그 C조.
C조 최종전에서 VAR 판독으로 인해 이란-포르투갈 경기에서 이란의 페널티킥이 취소되고, 코스타리카와 잠비아 경기에서 잠비아의 동점골이 취소됐다. 결국 승리한 코스타리카가 패한 이란을 제치고 조별리그 3위로 16강전에 진출했다. 이전이라면 이란이 3위로 올라왔겠지만, VAR는 그라운드에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지난주 인공지능(AI) 알파고가 바둑계를 흔들었다. 중국 저장성 우쩐에서 열린 2017 딥마인드 챌린지에서 구글은 발전된 알파고 2.0을 공개했다. 구글은 지난해 이세돌 9단에 이어 세계 1위 커제 9단과 알파고의 대전을 성사시켰다. 사실 커제 9단과 알파고의 승패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없었다. 그 누구도 커제 9단의 승리 가능성을 높게 보지 않고 알파고가 어떠한 모습을 보여줄지에 관심이 쏠렸다. 지난해 이세돌 9단이 승리를 거둔 이후 더욱 강해진 알파고를 상대로 인간 최고수 커제 9단은 한없이 초라해 보였다.
에상대로 3전으로 치러진 개인전 결과는 예상대로 3-0 알파고의 완승으로 끝이 났다. 승패를 떠나서 커제 9단이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커제 9단은 실리 바둑, 전투 바둑 모든 걸 시도해봤지만 모드 알파고 손바닥 안이였다. 마지막 3국에서 벽을 느낀 커제 9단은 눈물을 글썽일 정도. 커제 9단은 3국 종료 이후 “알파고와의 바둑은 너무나 고통스러웠다”고 호소했다.
완승을 거둔 딥마인드는 “커제 9단과 대국을 끝으로 이제 알파고와 인간이 더 이상 바둑으로 싸우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알파고를 개인용으로 보급하겠다. 바둑계 발전을 위해 알파고와 알파고가 맞붙은 기보를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사실 대국 결과가 충격적인 것은 결코 아니었다. 문제는 딥마인드가 공개한 알파고와 알파고 끼리의 기보. 알파고끼리의 기보는 우리의 상식을 뛰어넘었다.
딥마인드가 공개한 알파고와 알파고 대전은 바둑의 상식을 모두 파괴한다. 알파고끼리의 대전 양상은 인간이 지금까지 믿어왔던 반상위의 정석을 아예 의미가 없게 만들어 버렸다. 알파고는 인간이 결코 할 수 없는 수십만 번의 대전을 통해 인간이 전혀 상상해보지도 못한 ‘신의 한수’를 연달아 생산해냈다. 알파고간의 대전은 인간의 몸에 바둑의 신이 강림하더라도 상상하지 못할 것 같은 경지였다.
인간이 다시 알파고를 상대로 승리할 수는 없다. 바둑이 알파고 쇼크로 쇠락의 길을 걷든가, 아니면 새로운 차원으로 나아갈지 정확히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새로운 기술의 도입이 바둑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것은 분명하다.
앞으로 인류는 다양한 기술이 가져오는 엄청난 변화에 직면할 것이다. 기술 발전으로 인한 새로운 시대는 누구나 행복한 ‘유토피아’일까? 아니면 모두가 불행한 ‘디스토피아’일까? 아직은 무엇도 알 수 없다. /mcadoo@osen.co.kr
[사진] VAR 도입을 설명하는 피파. (중간) VAR 판독으로 득점이 취소된 한국. (아래) 알파고-커제 대결/구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