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커피 한 잔③] 이정재 "연기, 머리카락 뜯는 스트레스이자 인생의 즐거움"
OSEN 김보라 기자
발행 2017.05.28 13: 59

(인터뷰②에 이어) 영화 ‘대립군’(감독 정윤철)은 1592년 임진왜란 때 명나라로 피란한 선조를 대신해 임시조정을 이끌게 된 세자 광해(여진구 분)와 생존을 위해 남의 군역을 대신 치르던 대립군들이 참혹한 전쟁에 맞서 운명을 개척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이다. 오랜 시간 동안 조명 받지 못한 이름 없는 민초 대립군들이 오로지 먹고 살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목숨을 바치며 나라를 지켰다. 이러한 그들의 모습은 대한민국 현 시대를 그대로 투영하고 있다는 것에서 의미를 부여해볼 수 있다.
지난 2012년 개봉한 ‘광해, 왕이 된 남자’(감독 추창민), 2014년 ‘명량’(감독 김한민)에 이어 ‘대립군’이 다시 한 번 광해와 임진왜란 시기를 다루며,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가미한 팩션 사극의 새로운 주자로 나선 것이다.
왕에게 버려진 나라를 지켜야 하는 비운의 왕 광해와 대신 군대에 가는 대립군들이 임진왜란 속 뜨거운 운명을 나누는 ‘대립군’. 세자 광해를 통해 진정한 성장을 보여준 배우 여진구와 극한의 연기를 소화해낸 이정재의 케미스트리가 극적인 재미를 안긴다.

이정재는 최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진행된 OSEN과의 인터뷰에서 “여진구가 촬영장에서 일을 대하는 자세가 아주 진중하다. 그 나이 대에 호기심도 많고 선배들에게 이것저것 묻고 싶은 것도 많을 텐데, 연기부터 생활적인 면까지, 그런 것들보다 자기가 해야 하는 캐릭터에 집중한다. 대본에서 떠난 질문이나 대화는 별로 없더라”며 “나이가 어리지만 항상 본인의 감정을 유지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면, 본받아야할 동료 배우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한다”고 후배의 자세를 극찬했다.
또 대립군의 동료 곡수 역을 맡은 김무열에 대해서는 “매력적이고 섬세한 배우다. 남성적인 면도 많다”며 “이렇게 매력이 있고 에너지가 넘치는 배우인지 ‘대립군’을 통해 처음 알았다. 그래서 미안했다(웃음). 배우로서 감성이 굉장히 풍부한데 그 감정을 잘 조절할 줄도 안다. 연기적 실력이 있는데도 굉장히 겸손하고 동료들과 잘 지낸다. 성품도 좋고 너무 좋다”고 말했다.
이번 작품에 출연한 배우들은 촬영 중간 중간 시간이 날 때마다 술자리를 갖고 우애를 다졌다. 무엇보다 5개월 동안 새벽부터 밤까지 촬영이 이어졌기에, 가족보다 더 긴 시간 같이 지낸 사이로서, 절친한 관계로 발전했다고 한다.
“제가 현장에 4시 반~5시 반까지 나가면 다른 분들도 6시 반 전까지는 다 나오신다. 해뜨기 전에 분장을 하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다. 졸고 있는 분들도 있고, 아침이니 음악을 듣는 분들도 있었다. 아침부터 저녁을 먹을 때까지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니 친해질 수밖에 없었다. 함께 고생스러운 영화를 해내고 있다는 동료애가 자연스럽게 들었다. 중반을 넘어가면서부터 식구 같은 느낌도 들었다. 거의 10회~15회를 남겨 놓고서 술을 자주 마셨다.”
번지르르한 외모 위로 일그러진 욕망을 분출하는 상류층, 거칠고 잔인한 수양대군, 냉철한 임시정부대원 등 그간의 이정재에게 익숙했던 관객이라면 ‘대립군’ 속 천민 계층 토우가 제법 파격적인 변화로 느껴질 것이다.
이는 또한 어떤 형용사로도 좀처럼 수식될 수 없었던 이정재에게, 또 다른 전환점이 된 듯하다. 정작 본인은 늘 그랬던 것처럼 연기의 나이테를 하나 더 추가했을 뿐이지만 말이다.
“토우의 말투가 고민이 됐다. 산 사나이들처럼 말하려고 했는데, 조금 더 나가면 마치 마당쇠 느낌이 나서 ‘내가 지금 뭐하고 있나’ 싶었다(웃음). 조금만 더 빠져 나가면 (‘관상’의)수양대군 같이 되더라. 그 차이를 찾는 게 어려웠다. 산이라는 공간이 개방돼 있다 보니까 울림통 자체가 달라야겠다는 생각이었고, 전작과 겹치지 않고 차이를 두려는 노력을 했다. 끊임없이 다르게 해야 하는 게 직업인으로서 숙제다. 연기가 잘 안 될 때는 머리카락을 뜯는 스트레스지만 (그 과정이)제 인생의 즐거움 중 하나다.”/ purplish@osen.co.kr
[사진] 호호호비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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