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의 SK랩북] ‘2443일 기다림’ 김태훈, 이제 출발한 야구 인생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7.05.27 09: 20

지난 2016년 3월 대만에서 있었던 SK의 퓨처스팀(2군) 캠프 때 있었던 일이다. 당시 SK 퓨처스팀 투수코치였던 김상진 코치(현 삼성 1군 투수코치)는 훈련 뒤 불펜 마운드를 정비하고 있던 한 선수를 불러 세웠다. 마치 “독하게 한 소리를 해야 할 것 같다”는 작심을 한 듯한 김 코치의 시선은 좌완 김태훈(27)에게 향해 있었다.
김 코치는 김태훈을 박종훈과 비교했다. 김태훈의 1년 후배이자 군 입대(국군체육부대) 동기였던 박종훈은 제대 후 곧바로 1군에서 자리를 잡았다. 2015년 33경기에 나가 6승을 따냈다. 반대로 김태훈은 2015년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2군에서 보냈다. 김 코치는 “네가 무엇이 부족한데 박종훈보다 못하느냐”고 이야기했다.
실제 그랬다. 고교에서의 활약, 드래프트 지명 순위, 1군 데뷔 시점 모두 김태훈이 박종훈보다 빨랐다. 하지만 김태훈은 답보한 반면, 박종훈은 한 걸음을 더 나아갔다는 것이 김 코치의 이야기였다. 종합하면 준비의 문제였다. 김태훈은 이 이야기를 묵묵히 듣고 있었다.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었지만 뭐라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오히려 김 코치는 김태훈의 자존심이 조금 상하길 바랐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당시 김태훈에게는 필요한 것은 ‘자극’이었다. 

퍼펙트 투수, 너무 꼬였던 출발
당시 비교 대상이 됐던 박종훈은 김태훈의 고교 시절을 이렇게 기억한다. “마음만 먹으면 140㎞대 후반, 최고 150㎞를 던질 수 있는 좌완 투수”라고 말이다. 2군과 군 시절 등 함께 한 기간이 길었던 박종훈은 “그런데 부상 이후 구속이 뚝 떨어졌다. 힘껏 던져도 140㎞가 안 나올 때도 있었으니 (김)태훈이형 스스로는 얼마나 답답하겠나”고 안타까워했다.
김태훈은 구리 인창고 시절 퍼펙트게임을 펼쳐 어린 시절부터 큰 주목을 받았다. 빠르고, 묵직한 공을 던질 수 있는 ‘왼손 투수’라는 점은 엄청난 매력이었다. 변화구 완성도는 부족했지만 성장 가능성에 베팅한 SK는 그를 2009년 1차 지명자로 선택했다. 김성근 당시 감독도 김태훈이 가진 잠재력에 주목했다. 2010년 9월 17일 잠실 LG전에서는 1군 데뷔전도 가졌다.
하지만 김태훈의 어깨는 정상이 아니었다. 성장을 막는 요소였다. 스타일을 바꾸지도 못했다. 자연히 성적이 나오지 않았고 2군에 있는 시간이 길었다. 조금 낫다 싶어지면 1군에 올려 2011년 16경기, 2012년 9경기에 내보내기도 했지만 사실상 성과는 없었다. 그렇게 김태훈은 군 입대를 선택했다. 하지만 군에서도 어깨가 아파 제대로 경기를 소화하지 못했다. 제대 후 마음을 다부지게 먹었으나 이미 그는 한계에 부딪혀 있는 선수였다.
김태훈은 항상 유쾌한 선수다. 농담도 잘하고, 성격도 서글서글해 선배들도 뭐라 하지 못하는 마력(?)을 가졌다. 2군에서는 전형적인 ‘분위기 메이커’였다. 그러나 그 또한 2군 생활이 길어지면서 얻은 별칭이었다. 김태훈에 대한 기대치는 구단 내부에서도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한 관계자는 “만약 1차 지명 대상자가 아니었다면 김태훈의 입지는 어떻게 됐을지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 점점 벼랑 끝으로 가고 있었던 셈이다.
나름대로 노력은 했지만 2016년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선발 로테이션이 비었을 때 1군에 잠깐 올라가 던진 정도였다. 15경기에서 14⅔이닝 소화에 그쳤다. 구단으로나, 팀으로나 만족할 수 없는 성과였다. 여기서 SK는 사실상 ‘마지막 수’를 썼다. 지난해 9월 열린 애리조나 교육리그에 보냈다. 보통 김태훈 정도의 연차가 교육리그에 가는 경우는 별로 없다. 그만큼 상황은 절박했다.
초심으로 들어간 김태훈, 첫 승으로 새 출발
그러나 자존심 상하거나, 구단을 원망하지는 않았다. 후배들을 이끄는 리더 몫을 하면서 새로운 것을 얻기 위해 노력했다. 그 중 하나가 체인지업이었다. 김태훈은 빠른 공과 슬라이더를 던지는 투수였다. 여기에 투심패스트볼을 배웠다. 문제는 세 구종 모두 빠르다는 것이었다. 타자들의 타이밍을 뺏을 수 있는 구종이 필요했던 김태훈이 주목한 것은 체인지업이었다. 가능성을 엿본 김태훈은 가고시마 유망주 캠프에도 참가해 올해를 기약했다.
그런 김태훈의 목표는 1군 정착이었다. 김태훈은 교육리그 당시 “혼자서 다급하다보니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너무 강했다. 마음이 급하니 마음대로 안 풀렸던 점도 있다. 좀 더 여유를 가져야 할 것 같다”면서 “어느 위치든 상관없이 많이 던졌으면 좋겠다. 팀이 필요할 때 많이 던지는 투수가 됐으면 좋겠다”고 담담하게 과거를 돌아보고 있었다. 얼굴에 웃음기는 많이 사라져 있었다.
살이 잘 찌는 체질인데 감량도 혹독하게 했다. 강화 SK 퓨처스파크 입소를 자원하기도 해 많은 관계자들이 놀라기도 했다. 코칭스태프는 그런 김태훈의 달라진 마음가짐에 기대를 걸었다. 다들 “김태훈이 많이 달라졌다”고 입을 모았다. 비록 시즌 시작은 2군에서 했지만 포기하지도, 낙담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자신을 잘 아는 김경태 제춘모 투수코치 밑에서 좋을 때 폼을 찾기 위해 땀을 흘렸다.
그런 김태훈은 시즌 초반 스캇 다이아몬드의 이탈로 기회를 얻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 결과는 호투의 연속이었다. 비록 퀄리티스타트는 없었지만 4경기에서 모두 4이닝 이상을 던지며 17⅔이닝 동안 평균자책점 1.53을 기록했다. 임시 선발로는 만점 활약이었다. 그리고 5월 26일 인천 LG전에서는 드디어 5이닝 벽을 깨며 프로 첫 승을 거뒀다. 김태훈이 프로에 데뷔한 지 무려 2443일 만의 일이었다.
사실 이날 경기를 앞두고 승리에 대한 절박함이 있었던 김태훈이었다. 다이아몬드의 복귀일은 6월 1일로 잡혀 있었다. 일정상 마지막 기회였다. 롯데와의 사직 3연전 마지막 경기에 미리 인천으로 향한 김태훈은 “지금껏 한현희(넥센), 양현종(KIA), 이재학(NC)이라는 너무 좋은 투수들을 만났다. 그런데 이번에도 허프(LG)다”고 껄껄 웃으며 인천행 기차에 올랐다. 하지만 경기에서는 전혀 밀리지 않았다. 한 관계자는 “김태훈의 눈빛이 인상적이다”고 했다. 인상적인 눈빛은 승리로 이어졌다.
김태훈의 프로 첫 승이 걸려 있다는 것은 덕아웃에 있는 선·후배들도 모두 알고 있었다. 더 의욕적으로 경기에 임했고, 플레이 하나하나에 몸짓도 더 컸다. 김태훈은 경기 후 “돌고 돌아 어렵게 첫 승을 거뒀다. 지금까지 믿고 기다려준 구단에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동료들은 화끈한 세리머니로 이 분위기 메이커의 첫 걸음을 축하했다. 모든 긴장이 풀어진 김태훈의 얼굴에 다시 미소가 돌아왔다. 그 미소와 함께, 드디어 김태훈이라는 유망주가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SK 담당기자 skullbo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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