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유일의 매치플레이 ‘2017 두산 매치플레이 챔피언십’(총상금 7억 원, 우승상금 1억 7,500만 원)이 파이널포의 결전만 남겨놓고 있다. 21일 준결승전과 결승전이 치러져 왕관의 주인공이 가려지겠지만 마지막 라운드를 치르는 이들의 면면들이 흥미롭다. 저마다 꼭 이번에 우승해야 할 절실한 사연들을 갖고 있다.
먼저 박인비(29, KB금융그룹). 박인비의 사연은 매우 구체적이다. 이번 대회에 참가한 이유가 이것으로 설명이 되기 때문이다.
알려진대로 박인비는 이번 대회에서 KLPGA 첫 우승컵을 노리고 있다. ‘세계 골프 여제’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는 그가 국내 대회 우승이 없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러나 이 믿기지 않은 사실이 사실이다.
박인비는 2008년 하이원컵 채리티 여자오픈부터 작년의 삼다수 마스터스까지 모두 16번의 KLPGA 투어 경험이 있다. 하지만 번번이 우승컵은 그녀를 비껴갔다. 우승 문턱까지 가기는 했다. 5차례의 준우승이 이를 말해준다. 박인비는 두산 매치플레이 조별리그 도중의 인터뷰에서 “어느날 갑자기 국내 대회 우승이 꼭 해보고 싶어졌다”고 말했다. 대회도 좀 특별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두산 매치플레이를 선택했다.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메이저대회 7승을 포함해 통산 18승을 수확했고, 커리어 그랜드슬램(2008년 US여자오픈, 2013년 나비스코 및 LPGA챔피언십, 2015년 브리티시 오픈), 커리어 골든슬램(2016년 리우올림픽 금메달)까지 이룬 그녀이지만 국내 팬들 앞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리고 싶다는 소망을 이번 대회에서 이루고자 한다.
김해림(28, 롯데)은 KLPGA 투어 ‘대세 골퍼’로 거듭나고 싶어 한다. 그 동안 그녀에게 붙은 별명들이 여럿 있다. 비거리를 늘리기 위해 매일 계란 30개씩을 먹으며 훈련해 ‘달걀 골퍼’로 불리기도 했고, 대회 상금의 10%를 사회에 기부해 ‘기부천사’라는 별명도 갖고 있다.
그런데 김해림이 올해 자신을 세뇌하고 있는 단어가 있다. ‘대세 골퍼’다. 대세라는 말은 올 시즌부터 LPGA에서 뛰고 있는 박성현의 별명이다. 김해림은 박성현의 별명을 갖고자 하는 게 아니라 박성현의 빈자리를 갖고 싶어 한다.
김해림은 이미 KLPGA 투어 대세 골퍼의 가장 유력한 위치에 올라 있다. 3월의 SGF67 월드 레이디스 챔피언십과 지난 7일의 교촌 허니 레이디스 오픈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린 그다. 이번 대회에서 시즌 3승을 챙겨 놓으면 그 누구도 대세 골퍼라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김자영(26)은 올해 ‘어게인 2012’를 강하게 외치고 있다. 2010년부터 정규투어에 뛰어든 김자영은 개인 통산 3승을 올려 놓고 있다. 그런데 그 3승이 모두 2012년에 수확한 성과다. 비뚤어진 각도로 보면 8년의 투어 생활에서 2012년 한해만 반짝했다고 색안경을 낄 수 있다.
이런 시선이 있다는 것은 선수 스스로 잘 알고 있다. 매년 각오를 새롭게 하기도 한다. 그런데 올해는 좀 다르다. 지난 주 대회인 ‘NH투자증권 레이디스 챔피언십’ 공동 2위의 성적이 그 방증이다. 투어 2년차 김지영에게 우승컵을 빼앗기기는 했지만 김자영이 이 대회에서 보여준 존재감은 강렬했다.
그런데 시계추를 2012년으로 돌려보면 재미 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그해 김자영은 2대회 연속 우승컵을 들어 올렸는데 그게 바로 ‘우리투자증권 레이디스 챔피언십’과 ‘두산 매치플레이 챔피언십’이다. 우리투자증권 대회는 지금의 NH투자중권 대회로 바뀌었다. 두산 매치플레이에서 ‘어게인 2012’를 부르짖을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환경이 마련 됐다.
이승현(26, NH투자증권)은 스스로 등급 상승을 노리고 있다. 2010년부터 정규투어에 뛰어든 이승현은 만년 우등생이었지만 이거다 싶은 족적은 남기지 못했다. 그나마 작년에 거둔 시즌 2승이 가장 굵었다.
2011년 러시앤캐시 채리티 클래식, 2013년 KB금융 STAR챔피언십, 2014년 KG-이데일리 레이디스 오픈, 2016년 MY문영 퀸즈파크 챔피언십과 혼마골프-서울경제 레이디스 클래식에서 우승해 개인 통산 5승을 올리고 있지만 한 해를 석권하다시피한 시즌은 아직 없다.
이승현의 경기 스타일은 두산 매치플레이 준결승전에서 맞붙는 박인비와 비슷하다. 흔들림없이 안정적인 스윙, 부드러움 속에 숨기고 있는 강인함, 그리고 퍼팅의 달인으로 불리는 그린에서의 경기력 등이 박인비를 떠올리게 한다. 이승현은 “2013년 이 대회 3위 이후 4년만에 다시 4강에 올랐다. 매치플레이를 좋아하기 때문에 즐기면서 치겠다”고 각오를 밝히고 있다.
어떤 선수의 각오가 가장 절실할 지 마지막 결전의 날이 밝았다. /100c@osen.co.kr
[사진] 왼쪽부터 박인비-이승현-김해림-김자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