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많은 이닝을 소화하고, 1개의 아웃카운트라도 더 잡고 싶은 욕구는 마운드 위에 올라선 투수들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다. 특히 선발 투수들의 경우 팀의 승리는 물론 자신의 승리를 위해 한 타자라도 더 승부를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투수 교체를 위해 투수코치가 마운드 위에 올라가면 대부분의 선발 투수들이 마운드에서 아쉬운 표정을 짓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선발 투수들의 이러한 성향 때문에, 벤치에서도 웬만하면 선발 투수들의 승리 요건을 마련해주기 위해 최대한 배려하고 있다. 그러나 선발 투수들의 고집과, 벤치의 지나친 배려 혹은 미련으로 인해 때로는 이 부분들이 치명적인 독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롯데 자이언츠 투수 송승준(37)의 경우도 다르지 않았다. 투쟁심이 뛰어난 송승준에게 최대한 오래 버티는 것이 최고의 미덕이었고, 자존심이었다. ‘더 던지고 싶다’는 마음을 내비치며 버틴 적도 많았다. 송승준에겐 이러한 마음이 팀을 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자존심과 고집이 최근 2년의 상황을 악화시켰다. 성적 역시 KBO리그 무대 데뷔 이후 최악을 달렸다.
올 시즌을 앞두고 송승준은 말 그대로 ‘백의종군’했다. 팔꿈치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고 시즌에 돌입했지만, 불펜으로 시즌을 맞이했다. 그러나 송승준은 다시 찾아온 선발 기회를 놓치지 않고 순항하고 있다. 살아난 구위도 구위이지만 이 순항에는 이제 더 이상의 고집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달은 부분도 있다.
17일 사직 kt전에서 송승준은 선발로 등판해 5⅔이닝 동안 3피안타 2볼넷 5탈삼진 2실점(1자책점) 역투를 펼치며 선발 4연승과 함께 팀의 9-4 승리를 이끌었다. 이날 송승준의 구위는 썩 좋지 않았다. 최고 구속은 144km에 불과했고 평균 140km대 초반에 머물렀다. 하지만 노련하게 상황을 대처하면서 마운드를 버텼다.
송승준은 “경기 전 몸을 풀 때부터 어깨가 잘 올라오지 않았다. 몸이 무거워서 1회부터 힘들었다. 밸런스가 맞지 않는 것이 걱정이 됐는데, 타자들과 붙어야겠다는 생각으로 했고 야수들도 도와줬다”고 말하며 컨디션이 좋지 않았음을 전했다.
이 와중에도 송승준에게 아쉬움은 6회를 채우지 못했다는 것. 그는 “지난 2일 kt전(8이닝 1실점) 외에는 모두 6이닝을 못 채웠다. 오늘도 6회를 마무리 짓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고 말했다. 4-2로 앞선 6회초 송승준은 이진영과 오정복을 모두 범타로 처리하면서 손쉽게 2아웃을 잡았다. 그러나 아웃카운트 1개를 남기고 장성우와 9구 승부 끝에 볼넷으로 출루시켰다. 투구 수도 불어났고 후속 타자 승부의 결과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볼넷을 내준 뒤 김원형 코치가 송승준의 상태를 체크하기 위해 마운드에 올라왔다. 교체 의사는 없는 듯 보였지만, 결국 송승준과 대화를 나눈 뒤 배장호로 교체했다.
과거와 같은 욕심이라면 6회를 마무리 지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송승준은 앞선 2년의 실패로 뼈저리게 느꼈다. 나의 고집이 모두 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는 “6회를 채우지 못해서 아쉬운 것은 있지만, 앞선 2년 동안 고집을 부리다가 좋지 않은 결과를 많이 얻었다. 고집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면서 “내 고집이나 집념보다는 팀의 승리 확률을 높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내려온다고 했다”고 말했다.
“더 이상 팀에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고 말하며 올 시즌을 대비한 송승준이다. 허나 이제 송승준은 팀에 없어서는 안 될 보배가 되어가고 있다. 앞선 시즌들의 실패를 통해서 깨달음을 얻은 송승준의 반전은 올 시즌이 끝난 뒤 어떤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 /jhrae@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