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에이전트(FA) 영입은 거액이 드는 모험이다. 이미 능력이 검증된 선수를 영입한다는 점에서 팀 전력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미래는 예상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간 FA 선수들이 ‘먹튀’로 전락한 사례는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KIA의 지난겨울 선택은 탁월했음이 드러나고 있다. 예년에는 FA 1년차가 ‘안식년’이 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으나 최형우(34)와 양현종(29)의 초반에는 그런 기미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투자 효과를 확실하게 느끼고 있는 KIA는 시즌 초반 선두를 달리며 2009년 이후 첫 대권 도전의 꿈에 부풀어 있다.
KBO 리그 역사상 첫 100억 시대를 연 최형우는 팀의 문제였던 중심타선에서의 ‘갈증’을 화끈하게 씻어내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리그를 대표하는 가장 꾸준했던 타자인 최형우는 15일까지 38경기에서 타율 3할5푼8리, 10홈런, 31타점, OPS(출루율+장타율) 1.180을 기록하며 맹활약하고 있다. 타율은 리그 4위, 홈런은 공동 3위, 타점과 OPS는 1위다. ‘영양가’를 논할 필요가 없는 성적이다.
팀 에이스로 해외 진출을 놓고 고민하다 팀 잔류를 선택한 양현종 또한 순항하고 있다. 첫 8경기에서 54⅓이닝을 던지며 7승 평균자책점 2.15를 기록했다. 54⅓이닝에서 50탈삼진-4볼넷을 기록할 정도로 안정적인 투구를 보여주고 있다. 다승 공동 1위, 이닝 3위, 탈삼진 2위다. 역대 최소 경기 10승 달성도 기대해 볼 수 있는 상황이다.
두 선수는 계약금을 뺀 연봉이 각각 15억 원이다. 합쳐 30억 원이 두 선수에게 나가고 있는 셈이다. 팀 전체 연봉을 고려하면 결코 적은 돈은 아니다. 성적이 조금이라도 삐끗하면 ‘본전’ 생각이 날 수도 있는 수준인데,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런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FA 계약의 달콤함을 뒤로 하고 겨우 내내 땀을 흘렸고 그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조심해야 할 것은 이제 몸 상태라는 말도 나온다.
그런 두 선수는 KBO 공식기록업체 ‘스포츠투아이’가 집계한 대체선수대비 승리기여도(WAR)에서 나란히 투·타 1위를 달리고 있다. 최형우는 2.68, 양현종은 2.44다. 대체선수 레벨에 비해 두 선수가 합계 5승을 더 팀에 안겼다는 것이다. 아직 KIA가 38경기밖에 치르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대단히 높은 수치다. 만약 KIA가 이 행보를 계속 이어가 정규시즌 막판까지 꼭대기에 위치한다면 정규시즌 최우수선수(MVP)의 유력 후보들이 될 수도 있다.
이들을 추격하는 선수들의 기세도 관심사다. 아직은 격차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야수 부문에서는 최형우에 이어 양의지(두산·2.34), 손아섭(롯데·2.31), 나성범(NC·2.15), 민병헌(두산·2.10), 이대호(롯데·2.10)가 WAR 2 이상을 기록 중이다. 서건창(넥센·1.72), 김헌곤(삼성·1.71), 스크럭스(NC·1.57), 한동민(SK·1.54)까지가 TOP 10이다. 김헌곤 한동민의 초반 기세가 눈에 띈다.
투수 부문에서는 양현종과 시즌 초반 최고 투수를 다투는 피어밴드(kt·2.34)가 1위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그 뒤를 이어 헥터(KIA·1.97), 박세웅(롯데·1.73), 신재영(넥센·1.71), 맨쉽(NC·1.60), 니퍼트(두산·1.57), 오간도(한화·1.47), 임기영(KIA·1.43), 고영표(kt·1.28)가 10위 내에 들어있다. 외국인 투수 5명이 포함된 가운 박세웅 신재영 임기영 고영표는 모두 20대 투수들이라는 점이 눈에 들어온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