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 인터뷰] 마음 바꾼 박종훈 "볼넷은 나의 동반자"
OSEN 최익래 기자
발행 2017.05.05 05: 57

마음을 고쳐먹자 약점을 즐기기 시작했다. 데뷔 이후 일곱 시즌 동안 제구 난조를 겪던 SK 선발투수 박종훈(26) 이야기다.
박종훈은 4일 인천 SK행복드림구장서 열린 '2017 타이어뱅크 KBO리그' 한화전에 선발등판, 5이닝 5피안타 3사사구 3탈삼진 1실점으로 시즌 3승을 따냈다. SK는 박종훈의 호투에 힘입어 한화를 6-2로 꺾었다.
박종훈의 고질적인 문제는 제구였다. 2010년 데뷔한 박종훈은 지난해까지 9이닝당 5.13개의 볼넷을 내줬다. 같은 기간 250이닝 이상 던진 투수 87명 중 최저 83위. 9이닝당 볼넷 허용이 다섯 번째로 많은 투수였던 것이다.

그러나 박종훈을 만난 지도자들은 모두 그를 포기하지 않았다. '좋을 때는 아무도 치지 못할 공을 던진다'는 트레이 힐만 감독의 이야기처럼, 지면과 거의 붙어서 나오는 릴리스포인트는 그만큼 매력적이었다.
지난해에 이어 올 시즌도 선발 로테이션에서 시즌을 시작한 박종훈. 초반만 해도 제구 난조는 여전했다.박종훈은 두 번째 등판이던 11일 롯데전서 5⅔이닝 6볼넷에 몸 맞는 공 하나를 기록했다. 그러나 세 번째 등판이던 16일 한화전서 5이닝 무사사구 6탈삼진 무실점으로 시즌 첫 승을 따낸 게 분기점이었다. 이후 22일 두산전서 5이닝 2볼넷, 28일 삼성전서 5이닝 4볼넷으로 안정을 찾는 모습이었다.
이날 경기도 마찬가지였다. 박종훈은 볼넷 두 개와 몸 맞는 공 하나를 내주며 안정감을 뽐냈다.
경기 후 박종훈은 최근 안정감을 찾은 제구에 대해 "볼넷 주는 걸 인정하기로 했다. 솔직히 말하면 이제는 신경 안 쓴다. 그러니까 성적이 달라졌다"라고 털어놨다. 박종훈은 이어 "내가 월내 볼넷을 안 주는 투수도 아니지 않나. 예전에는 정말 많은 볼넷을 내줬고 그 때문에 마음고생도 많이 했다"라고 밝혔다.
데뷔 직후부터 줄기차게 '컨트롤을 신경 써라'라고 주문받은 박종훈을 바꾼 건 '힐만 사단'의 조언이었다. 데이브 존 투수코치부터 라일 예이츠 QC코치, 최상덕 투수코치까지 박종훈과 심리상담을 통해 "볼넷을 인정하자"라고 부담을 덜어줬다. 제구가 들쭉날쭉해 2회까지 60구를 던져도 5이닝을 100구 안에 막기만 하면 된다는 의미였다.
이 말을 받아들인 박종훈은 "타자 입장에서 생각했다. 삼진을 당하고 싶어서 방망이를 헛돌리는 타자는 없다. 그러나 모두 삼진을 당한다. 나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그냥 경기의 일부라고 생각한다"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변화는 2년 연속 풀타임 선발투수로 나서고 있는 부분 덕이다. 박종훈은 "나처럼 볼넷을 많이 내주는 투수는 긴 이닝을 던지는 게 아무래도 유리하다. 한 타자에게 볼넷을 줘도 그 다음 타자를 생각하면 되기 때문이다. 믿어주신 코칭스태프에게 고맙다"라고 공을 돌렸다.
이날 경기 박종훈이 내준 볼넷 두 개를 뜯어보면 이해가 쉽다. 박종훈은 2회 허도환과 5회 윌린 로사리오에게 볼넷을 내줬다. 두 볼넷 모두 다분히 의도적인 볼넷이었다. 특히 5회에는 2사 3루 상황에서 강타자 로사리오와 굳이 승부하지 않았다. 박종훈은 "2회와 5회 볼넷 모두 일부러 내줬다. 개인적으로 주자 2·3루보다 만루가 더 편하다. 어렵게 승부하면서 볼넷 허용 자체에 부담을 줄였다"라고 강조했다.
공격적인 투구가 돋보였다. 박종훈은 이날 5이닝 동안 25타자를 상대했는데 투구수는 90개에 그쳤다. 타석당 투구수는 3.6개에 불과했다. 초구 스트라이크(12회)보다 초구 볼(13회)이 더 많았지만 꿋꿋하게 공격적으로 꽂아 넣었다. 풀카운트 승부는 2회 세 차례가 전부였다. 나머지 4이닝에는 단 한 번도 풀카운트로 끌고가지 않았다. 반대로 3구 이내에 승부를 결정지은 게 열 번에 달했다.
이날 배터리 호흡을 맞춘 이재원은 "워낙 좋은 선수다. 전략적으로 공격적 카운트 승부를 주문했다"라고 밝혔다. 박종훈 역시 빠른 승부를 펼치면 타자들이 쉽사리 자신의 공을 공략하지 못하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단 한 가지 아쉬움은 있었다. 바로 이닝이었다. 박종훈은 "올 시즌 결과와 상관 없이 6이닝을 채운 적이 없다. 욕심이 안 난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내가 6회에 던져 막는다는 보장이 없으니 투구수가 적어도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결국 확신을 심어주는 게 중요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래도 변함없이 긍정적이었다. 그는 "내게 제구와 이닝은 한 몸이다. 제구를 잡으면 이닝 소화도 늘 수밖에 없다"라고 자체 분석했다.
이날 경기 후 힐만 감독은 "내가 본 박종훈의 투구 중 가장 좋았다"라며 그를 극찬했다. 약점을 인정하는 것만큼 어려운 건 없다. 박종훈은 데뷔 이래 줄기차게 그를 괴롭혔던 제구를 자신의 동반자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성적이 달라지고 있다. /ing@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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