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끝이 있다. 프로야구 선수들에게 은퇴는 정해진 절차다. '멋진 마지막'을 준비할 수 있는 건 몇몇만이 누릴 수 있는 행운이다. NC 베테랑 타자 이호준(41)은 그 행운을 누리는 이다.
김경문 NC 감독은 2일 서울 잠실야구장서 열린 '2017 타이어뱅크 KBO리그' LG전을 앞두고 베테랑 이호준과 손시헌을 1군에 합류시켰다. 손시헌의 합류는 당연했다. 지난 4월 7일 인천 SK전서 옆구리에 공을 맞아 미세골절 진단을 받은 손시헌은 엔트리에서 제외돼 일본으로 이동, 2주간 치료를 받았다. 시즌 초 7경기서 타율 3할8푼9리(18타수 7안타)로 맹활약 중이던 손시헌의 부재는 아쉬웠다.
물론 이상호와 지석훈 등이 공백을 잘 메웠지만 수비력이 뛰어난 손시헌의 존재는 필수적이었다. 김경문 감독은 30일 광주 KIA전을 앞두고 "(손)시헌이가 이날 퓨처스리그 출장한다. 보고서를 받아보고 1군 콜업 여부를 결정할 생각이다"라고 밝혔다. 그리고 손시헌은 30일 kt와 퓨처스리그 경기서 3타수 1안타를 기록한 뒤 곧바로 1군에 올라왔다.
하지만 이호준의 합류는 다소 의외였다. 올 시즌 종료 후 은퇴를 선언한 이호준은 팔꿈치 통증 탓에 개막 엔트리에서 빠져 재활에 매진했다. 일본 요코하마에서 치료를 받은 뒤 지난달 말에야 입국했다.
이호준은 올 시즌을 앞둔 스프링캠프 명단에서 제외됐다. 이호준은 물론 이종욱, 손시헌, 김종호, 지석훈 등 1군에서 활약한 베테랑의 이름이 모두 빠졌다. 김 감독이 세대교체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기회가 적었던 선수들을 중심으로 명단을 꾸렸고 이들의 가능성을 점검했다. 그 때문에 베테랑들은 퓨처스팀인 고양 다이노스에서 시즌 담금질에 나섰다.
효과는 분명했다. 도태훈, 이재율 등 젊은 선수들은 물론 모창민, 조평호 등 중고참급도 1군에서 역할이 커졌다. 또한 개막과 동시에 손시헌, 지석훈, 이종욱 등은 1군에서 모습을 드러내 이름값에 맞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호준은 예외다. 여전히 몸 상태가 완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김경문 감독은 "(이)호준이는 아직 출장할 단계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럼에도 그를 1군에 부른 건 이호준의 '해피엔딩'을 위해서다. 김 감독은 "호준이가 스프링캠프부터 개막 한 달까지 1군 선수단과 오래 떨어져있었다. 어차피 몸을 만드는 건 같다. 1군에서 선수들과 함께 몸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에 합류를 지시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김경문 감독은 "말 그대로 시작이 있으면 끝도 당연히 있다. 올 시즌 은퇴를 선언한 상태다. 좋은 마무리를 생각해야 한다. 해피엔딩 말이다"라고 강조했다. 취재진이 조용해진 사이, 김 감독은 "호준이가 좋은 마무리를 하도록 돕는 것도 감독인 내 역할이다"라고 덧붙였다.
NC의 1군 진입 첫 시즌인 2013년부터 김경문 감독과 이호준은 의기투합했다. NC가 1군 진입 2년 만에 포스트시즌에 올라 매년 우승을 노리는 강팀으로 성장한 데에는 이호준의 공헌이 크다. 김경문 감독은 그 공로를 쉽사리 잊을 수 없는 것이다. 몸 상태가 완벽하지 않은 이호준을 불러들인 건 야구인 선배이자 가장 가까이서 그를 지켜본 사령탑으로서 '좋은 마무리'에 대한 고민 끝에 내린 선택이었다.
2일 경기를 마치고 더그아웃에서 마주친 이호준의 표정은 밝았다. "승리 축하한다"는 말에 "고맙다"라고 화답한 그는 누구보다 기뻐하는 얼굴로 천천히 더그아웃을 빠져나갔다.
올 시즌 KBO리그는 두 명의 스타를 떠나보낸다. 이승엽(41)과 이호준이 그 주인공. 이들의 마지막은 대부분의 선수들이 시즌 종료 후 구단과 진통 끝에 은퇴를 결정하는 것과 대조적인 풍경이다. 만일 이호준이 1군에 이름을 올리며 예년 같은 활약을 한다면 팬들은 그의 마지막을 '가장 멋진 모습'으로 기억할 것이다. 이호준 역시 시즌을 앞두고 은퇴 선언 당시 "박수 칠 때 떠나고 싶었다. 감독님이 '아름다운 마무리를 하도록 도와주겠다'고 말씀해주셨다"라고 밝혔다. 그 약속이 진심이었던 것.
김경문 감독의 배려는 이호준은 물론 그를 떠나보낼 채비를 다하지 못한 팬들에게까지도 향해있는 셈이다. /ing@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