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이 아일랜드 홀로 구성 돼 있는 파4 15번홀. 선두를 달리고 있던 노무라 하루(25, 한화)가 세컨드샷으로 안전하게 공을 그린 위에 올렸다. 그런데 그린을 향해 걸어가던 노무라 하루가 갑자기 뛰기 시작했다. 공이 저절로 움직였기 때문이다. 노무라 하루는 전력으로 달리다시피 해 마커를 놓고 공을 집어 올렸다.
이 한 장면이 미국 프로여자골프(LPGA) 투어 볼런티어스 오브 아메리카 텍사스 슛아웃(총상금 130만 달러, 우승상금 19만 5,000달러) 최종 라운드의 상황을 잘 설명하고 있었다. 그린 위에 떨어진 공이 저절로 움직일 정도로 강풍이 몰아쳤다. 스코어를 줄이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해 보였고, 누가 더 타수를 적게 잃느냐의 싸움이 벌어졌다. 전날까지 벌어 둔 타수가 많거나, 가장 경제적인 플레이를 하는 선수가 유리한 여건이었다. 경기 중반까지만 해도 일본의 노무라 하루가 두 가지 요건을 모두 갖춰 일방적인 경기를 펼쳐 나갔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 노장의 노련한 플레이가 빛을 발했다. 미국의 크리스티 커(40, 미국)의 시끄러운 주문이 통해 정규 라운드 마지막 홀에서 승부가 원점으로 돌아갔다.
힌국시간 1일 새벽, 미국 텍사스 주 어빙에 있는 라스 콜리나스 컨트리클럽(파71, 6,441야드)에서 벌어진 LPGA 투어 볼런티어스 오브 아메리카 텍사스 슛아웃 최종 라운드에서 노무라 하루가 연장 6라운드까지 가는 접전 끝에 크리스티 커를 꺾고 우승했다. 노무라 하루는 파5 18번홀에서 펼쳐진 연장전에서 5라운드까지 승부를 결정짓지 못하다가 6라운드 세컨드 샷을 홀컵 3미터 거리에 붙이는데 성공함으로써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연장승부에 버디로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다. 올 시즌 첫승이자 개인통산 3승째.
최종라운드 중후반까지만 해도 3라운드에서 8언더파(단독선두)를 적어냈던 노무라 하루가 한때 2위와 5타차까지 벌리며 리드를 잘 지켜 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노무라가 17번 홀, 크리스티 커가 18번홀을 달리고 있을 때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노무라는 파3 17번 홀에서의 티샷이 짧았고, 칩샷은 솥뚜껑 그린을 넘어 반대쪽 물가로 굴러갔다. 물가에서 어렵게 채를 휘둘렀지만 세 번째 샷은 그린에 오르지 못했고 4번째 샷을 하고 나서야 가까스로 퍼터를 들 수 있었다. 힘겹게 더블보기로 막고 난 후의 스코어는 2언더파.
어려운 17번 홀에서 버디를 낚아 노무라 하루를 1타차로 뒤쫓은(-3) 크리스티 커는 18번 홀을 파로 막아내며 우승, 내지는 연장 승부 여건을 만들어 놓았다.
막판에 허를 찔린 노무라 하루도 한방에 쓰러지지는 않았다. 까다로운 18번 홀에서 버디를 잡아내며(-3) 승부를 연장으로 돌렸다.
노련한 크리스티 커는 철저하게 바람을 피해가는 경기를 했다. 박인비와 조를 이룬 크리스티 커는 바람이 심하다 싶으면 동반 플레이어에게 피해가 갈 정도로 과감하게 샷을 거뒀다. 3라운드까지 6언더파로 동타를 이뤄 크리스티 커와 최종라운드에서 짝을 이뤘던 박인비는 15번홀에서 세컨드샷을 해저드에 빠뜨렸고, 재차 시도한 샷도 해저드 경계석 아래로 숨어 버리면서 쿼드러플 보기를 기록했다. 4라운드에서 9오버파(80타)를 적어낸 박인비는 최종합계 3오버파 공동 13위에 랭크 됐다.
3라운드 공동 2위로 노무라 하루와 함께 챔피언조에서 경기를 했던 아마추어 성은정도 강한 바람 앞에서 심하게 고전했다. 4라운드에서만 15오버파를 쳐 최종합계 9오버파 공동 40위로 내려앉았다.
한국 선수 중에서는 박성현(24, KEB하나은행)의 성적이 가장 좋았다. 박성현도 바람이 부담스럽기는 했지만 최종 라운드 3오버파, 최종합계 이븐파로 단독 4위에 올랐다. LPGA 투어 루키 시즌을 보내고 있는 박성현은 벌써 3번째 톱10을 기록해 신인왕 경쟁에서 경쟁자들을 압도했다.
그 와중에 언더파를 기록한 선수도 2명이 있었다. 공교롭게도 모두 한국 선수들로 지은희가 4라운드 1언더파-최종합계 1오버파로 공동 5위, 양희영이 4라운드 2언더파-최종합계 2오버파로 공동 9위에 올랐다. /100c@osen.co.kr
[사진] LPGA 투어 볼런티어스 오브 아메리카 텍사스 슛아웃 최종라운드 2번홀에서 박성현이 힘차게 티샷을 하고 있다. 아래 사진은 우승자인 노무라 하루. /ⓒGettyimages(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