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많이 아프고 아쉽다."
롯데는 시즌 초반, 팀의 적나라하게 드러난 약점을 채우기 위해 대형 내야수 재목을 내주는 결단을 내렸다. 팀의 기둥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봤던 내야수를 포기해야만 했던 아쉬움도 결단과 동시에 밀려올 수밖에 없었다.
롯데는 18일 사직 NC전이 끝난 뒤 kt와의 2대2 트레이드를 발표했다. 골자는 내야수 오태곤, 투수 배제성을 내주고 반대급부로 투수 장시환, 투수 김건국을 받아오는 것이었다.
롯데 입장에서 봤을 때 가장 큰 축은 내야수 오태곤이었다. 오태곤은 롯데가 기다려왔던 '대형 내야수' 재목이었다. 두각을 나타낸 것은 2015년이었다. 당시 오태곤은 3연타석 홈런을 때려내는 등 122경기에 나서 타율 0.275(327타수 90안타) 8홈런 43타점 OPS(출루율+장타율) 0.728의 기록을 남겼다. 당시 주 포지션은 유격수였지만, 2루수와 3루수, 1루수 내야 전 포지션에 나서며 기회를 많이 부여했다. 수비 불안감이 가시지 않은 상태였지만 타격 재능을 살리기 위한 방안이었다.
이종운 감독이 팀을 떠났지만 신임 조원우 감독 역시 오태곤의 잠재력을 높이 샀다. 2016시즌에는 이전시즌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되새기며 오태곤을 사실상 주전 유격수로 낙점했다. 스프링캠프에서 오태곤은 '지옥의 펑고'를 받으며 수비력 향상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러나 가능성을 채 확인도 하기 전인 4월 초, 정강이 분쇄골절이라는 장기 부상을 당했다. 시즌 말미에 돌아왔지만 이전과 같은 유격수 수비는 힘든 상태였다.
하지만 황재균(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이 팀을 떠나면서 오태곤에겐 주전 3루수라는 새로운 기회의 장이 생겼다. 구단은 물론 코칭스태프 모두 황재균의 대안을 멀리서 찾지 않았다. 꾸준히 경기를 치르다 보면 타격과 수비 모두 황재균의 공백을 어느 정도 채울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여기에 오태곤의 수비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올시즌부터 내야 전천후를 소화하고 있는 문규현이 일종의 러닝메이트 격으로 가담했다. 수비가 중요할 때는 문규현이 선발 3루수로 출장했고, 라인업에 타격을 강화하려고 할 때는 오승택이 먼저 경기에 나섰다.
오태곤 또한 기회임을 자각하고 묵묵히 훈련을 소화했다. 주전 3루수로 도약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경기 전, 다른 선수들이 스트레칭을 하는 시간, 오태곤은 이미 그라운드에 나서 김민재 수비코치와 함께 2~30분 가량 3루에서 수비 펑고를 받곤 했다. 오승택이라는 이름을 달고 잦은 부상에 시달리자 개명까지 하며 다부지게 올해를 맞이한 오태곤이었지만 끝내 롯데에서는 기회를 받지 못했다.
팀 내에서 대형 내야수로 키우고 있던 오태곤을 카드로 활용해야만 했던 이유는 불펜진의 불안이었다. 박시영, 윤길현, 이정민, 송승준으로 구성된 구원진은 마무리 손승락까지 연결고리 역할을 해야 했지만 이 부분이 쉽지 않았다. 막강한 타선이 있지만 대량 득점을 하지 못할 경우 경기 후반, 롯데는 언제나 쫓기는 경기를 펼쳐야 했다. 박시영이 구세주로 등장해 힘을 불어넣고 있지만 무게 중심이 박시영에게 많이 쏠렸고 과부하 우려도 있었다. 결국 이 부분을 장시환을 데려와 메우려는 생각이다.
트레이드 발표 직후 롯데 고위 관계자는 아쉬운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트레이드는 일찌감치 합의가 됐지만, 정식 발표 직후 감정은 또 남다를 터. 이 관계자는 "당연히 오태곤을 내준 것이 마음이 많이 아프고 아쉽다. 제 살을 도려내는데 안 아플 수 있겠냐"면서 오태곤을 떠나보내야 했던 속내를 내비쳤다.
그러나 이내 "트레이드란 것이 원래 큰 결단을 내려야 하는 것이 아니냐. 이 만한 가치를 지닌 선수(장시환)를 얻기 위해선 우리 쪽에서도 그 정도 가치를 지닌 선수(오태곤)가 나와야 했다. 팀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아프지만 결단을 내려야 했다"고 말했다.
투타 엇박자에 내야진의 타격 빈곤에 시달리던 kt 입장에서도 장타력을 갖춘 내야 유망주 오태곤이 당연히 레이더망에 들어왔다. 롯데 입장에서도 불펜 불안에 장시환 카드를 택했다. 이렇게 트레이드가 이뤄졌다. 관계자는 "우리 감독님과 kt 김진욱 감독님이 워낙 가까운 사이시다. 어느 정도 얘기를 나누신 것 같다"면서 "사실 트레이드 진행 과정에서도 프런트가 원하는 카드가 정해져 있었고, 카드를 맞추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아프지 않은 손가락은 없다. 그러나 때로는 팀을 위해 결단을 내려야만 한다. 롯데는 팀의 미래가 될 선수를 떠나보내고 현재 가치를 선택했다. 그러나 밀려오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은 어쩔 수 없는 듯 하다. /jhrae@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