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팬들에게 WAR(Wins Above Replacement, 대체선수대비승리기여)은 더 이상 낯선 지표가 아니다. 야수와 투수를 나란히 평가할 수 있는 데다, 공격은 물론 수비나 주루까지 반영되는 값이기 때문에 선수들의 종합적인 가치 평가가 가능한 지표로 손꼽힌다. 많은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선수의 연봉 계산은 물론 영입 과정에서 중요하게 참고하고 있으며, KBO리그에서도 서서히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팀 내에서 WAR이 높은 선수들은 말 그대로 팀 승리에 가장 많이 기여하고 있는 이들이다. 물론 WAR이 누적 기록인 탓에 시즌 초, 개인 기록의 높고 낮음은 의미가 적다. 하지만 지금까지 팀 성적에 누가, 얼마나 기여했는지는 한눈에 알 수 있다. KBO리그 공식 기록업체 '스포츠투아이'가 매긴 WAR을 통해 시즌 초, 각 팀에 가장 많은 기여도를 나타내는 선수들을 살펴봤다.
▲ '투수왕국' KIA, '야수 득세' 두산
WAR 상위 세 명 모두 투수로 채워진 팀은 KIA가 유일하다. '크레이지4'라는 별칭이 어울리는 선발진들의 맹활약. 그 중에서도 양현종(1.14)의 위엄이 돋보인다. 앙현종은 올 시즌 세 경기 선발등판, 20.2이닝을 소화하며 3승 평균자책점 0.87을 기록하고 있다. 16개의 삼진을 빼앗는 동안 볼넷 허용은 단 3개뿐.
외인 듀오 헥터 노에시와 팻딘 역시 리그 최강급 원투펀치를 구성하고 있다. KIA는 올 시즌 14경기 중 선발투수 소화 이닝이 86이닝에 달한다. 선발진이 매 경기 6이닝 이상은 던져준 꼴. 불펜이 약한 KIA로서는 선발진의 톱니바퀴가 완벽히 맞물리는 게 반갑다. 조만간 복귀 예정인 김진우마저 연착륙한다면 더할 나위 없을 기세다.
반면, 두산은 야수들이 WAR 상위권에 자리해있다. 닉 에반스(0.96)는 14일 NC전서 연타석 홈런을 때리는 등 팀 공격을 이끄는 중이다. 지난해 4월 타율 1할6푼4리(61타수 10안타), 1홈런, 5타점에 그치며 '퇴출설'에 시달렸던 에반스는 올 시즌 초반부터 활약을 개시했다. 민병헌(0.54)과 허경민(0.48)도 기대에 충족하는 모습.
투수들의 분전이 필요하다. 지난 시즌 '판타스틱4'를 구성했던 더스틴 니퍼트(평균자책점 3.66)와 장원준(평균자책점 4.00), 유희관(평균자책점 5.21) 모두 위용이 다소 무뎌진 느낌이다.
▲ '명불허전' 이대호와 김태균
롯데는 '빅 보이' 이대호 효과를 실감하고 있다. 이대호는 올 시즌 전 경기에 나서 타율 4할6푼, 출루율 5할5푼7리, 장타율 0.800, 5홈런, 12타점을 기록 중이다. 도루를 제외한 대부분의 공격 지표 선두권. '7관왕 모드' 재현이다. 이대호는 현재까지 WAR 1.46으로 리그 전체 야수 1위다.
손아섭이 그 뒤를 따른다. 손아섭은 프로 데뷔 후 지난 시즌까지 4월에 치러진 163경기서 타율 2할8푼9리, 12홈런, 59타점으로 부진했다. 개인 월별 기록 중 가장 나빴다. 올 시즌도 타율은 2할8푼3리로 빼어난 수준은 아니지만, 출루율 4할1푼5리로 팀 공격의 첨병 역할을 다하고 있다. 지난 시즌까지 2선발 역할을 다하던 브룩스 레일리는 에이스로 변신, 3경기 1승1패, 평균자책점 1.86으로 호투 중이다. 타선 지원을 받지 못해 승수를 쌓지 못했을 뿐, 매 경기 안정적인 모습이다.
9위에 처진 한화도 김태균(0.58)의 존재가 든든하다. 김태균은 올 시즌 13경기서 타율 3할2푼6리, 1홈런, 9타점으로 윌린 로사리오가 빠진 중심 타선을 외로이 지키고 있다. 장민석(0.47)의 반전도 주목할 만하다. 장민석은 올 시즌 타율 3할3푼3리(57타수 19안타)로 최다 안타 5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 믿는다. 효자 외인!
kt는 라이언 피어밴드의 기세가 매섭다. 피어밴드는 올 시즌 투타 통틀어 WAR 1위(1.57)다. 지난 9일 삼성전서 완봉승을 거둔 데 이어 15일 LG전마저 9이닝 무실점 호투. 사실상 두 경기 연속 완봉과 다름없었다. 너클볼을 주무기로 사용하면서 KBO리그 타자들을 유린하고 있다. 삼진 19개를 뺏은 대신 볼넷은 단 한 개도 내주지 않고 있다. 지난 시즌 합계 27.2이닝 연속 무볼넷. 신재영의 기록(30.2이닝)까지 단 3이닝 남았다.
구단별 WAR 상위 세 명 중 불펜투수는 김재윤이 유일하다. 김재윤은 올 시즌 6경기 등판해 5.1이닝을 던지며 5세이브, 평균자책점 제로다. 삼진은 여섯 개를 잡았고 볼넷은 하나뿐. kt의 뒷문을 든든히 걸어잠그고 있다. '캡틴' 박경수도 타박상으로 세 경기 결장했지만 팀 내 야수 중 가장 높은 WAR(0.52)을 기록했다.
LG는 '소사이언' 헨리 소사(0.86)가 듬직하다. 지난 시즌 후반기 가세해 '에이스' 노릇을 톡톡히 했던 데이비드 허프가 부상으로 개시도 못한 상황이다. 소사마저 흔들렸다면 차우찬과 류제국의 짐이 더욱 무거웠을 터. LG는 올 시즌 팀 평균자책점 2.71로 리그 1위에 올라있다. '풀타임 첫 시즌' 이형종(0.79)이 팀 내 야수 WAR 1위인 점도 신선하다.
SK의 WAR 1위는 한동민(0.93)이다. 한동민은 네 경기 연속 홈런을 때리는 등 1군 무대에 순조롭게 적응 중이다. 지난 두 시즌, 퓨처스리그 홈런왕다운 기세. 나머지 두 자리는 메릴 켈리(0.79)와 윤희상(0.60)이 채우고 있다.
NC 역시 재비어 스크럭스(0.94)와 제프 맨쉽(0.48)이 KBO리그에 연착륙하며 미소짓고 있다. 김경문 감독은 "스크럭스와 맨쉽이 순조롭게 적응하면서 팀 분위기 상승효과까지 누리고 있다"라며 신뢰를 드러냈다.
▲ 국내파 가득한 넥센과 삼성의 씁쓸한 이면
8위 넥센과 10위 삼성의 WAR 상위 세 명은 모두 국내 선수들이다. 넥센은 팀의 주축 선수인 윤석민(0.63)과 서건창(0.60), '신인왕 후보' 허정협(0.57)이 명단을 채우고 있다. 넥센은 이들은 물론 이정후, 채태인 등의 맹타를 앞세워 팀 타율 1위(3할4리)에 올라있다. '투고타저' 흐름 속 유일하게 팀 타율 3할을 넘긴 팀이다.
하지만 외국인 타자 대니돈의 부진은 뼈아프다. 대니돈은 지난해 129경기서 타율 2할9푼5리, 16홈런으로 쏠쏠히 활약했지만 올 시즌 9경기 출장, 타율 1할2푼5리로 침묵하고 있다. 새 외국인 투수 션 오설리반 역시 세 경기 2패, 평균자책점 15.75의 부진. 결국 넥센은 17일, 두 명 모두 1군에서 말소하는 초강수를 꺼내들었다.
삼성은 김헌곤(0.62)과 구자욱(0.54), 우규민(0.48)이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외국인 투수 앤서니 레나도는 가래톳 부상 탓에 아직 데뷔전도 치르지 못했다. 재크 페트릭 역시 첫 경기 6.1이닝 1자책 호투 이후 두 경기서 13이닝 8실점으로 뭇매를 맞았다. 볼넷이 많은 유형은 아니지만 상대 타자들이 손쉽게 공략하는 모습.
외국인 타자 다린 러프는 타율 1할6푼, 2홈런, 5타점에 그치며 이름 그대로 '러프한 타격'에 머물고 있다. 삼성은 팀 타율 2할5푼7리로 리그 8위에 처져있다. 투타의 동반 난조 속에 삼성은 창단 이래 가장 시린 봄을 보내고 있다. /ing@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