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브리드’가 빠르게 일상화 되고 있다. 예전의 하이브리드는 한 눈에 봐도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을 장착한 차임을 알 수 있도록 디자인이 독특했다. 친환경을 지향하는 차이니 만큼 디자인 자체가 미래지향적이었다. 그러나 최근의 하이브리드는 스스로 티내지 않는다. 그 만큼 일상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방증이다. 가솔린 모델이 있다면 디젤이 나오듯, 하이브리드 트림이 자연스러워졌다.
지난 2017 서울모터쇼에서 출시 된 현대자동차 신형 그랜저(IG) 하이브리드는 좀더 노골적으로 이 같은 트렌드를 제품 개발에 반영했다. 트렁크 우측 상단에 적힌 ‘hybrid’라는 엠블럼에 주목하지 않으면 이 차가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임을 알기 어렵게 해 놨다.
현대차가 그랜저 하이브리드를 개발하면서 디자인에 ‘하이브리드 색깔’을 심지 않은 것은 소비자 의견을 따랐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 중대형 총괄 PM인 박상현 이사는 최근 그랜저 하이브리드 미디어 시승행사에서 “하이브리드 차라고 하더라도 디자인에서 차이가 없게 해 달라는 소비자 의견이 조사에서 매우 높게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 같은 방침 아래 개발 된 그랜저 하이브리드는 내연 기관 트림에 비해 딱 2군데만 외관 디자인이 다르다. 하나는 휠이다. 하이브리드 전용 17인치 에어로 다이내믹 알로이 휠을 달았다. 연료 효율을 높이기 위한 공기 역학이 적용 된 휠이다. 또 하나는 측면에 달린 ‘블루 드라이브(Blue Drive)’ 엠블럼과 트렁크 우측 끝에 달린 ‘하이브리드’ 엠블럼이다.
눈으로 확인하기 쉽지 않은 차이도 하나 있기는 하다. ‘액티브 에어 플랩’이라는 이름이 붙은 라디에이터 그릴 디자인이다. 겉으로 봐서는 차이가 없다. 하지만 일정 속도 이상으로 달리기 시작하면 라디에이터 그릴의 창이 안에서 닫힌다. 이 또한 공기 저항을 줄이기 위한 장치다.
겉보기에는 ‘내연 기관 그랜저’나 ‘그랜저 하이브리드’나 다를 게 없지만 엔진룸에는 완전히 다른 심장이 자리를 잡고 있다. 기본 동력을 만들어 내는 내연 기관은 세타2 2.4 MPI 하이브리드 전용 엔진이 장착 됐다. 이 엔진만으로도 최고출력 159마력, 최대토크 21.0kgf.m을 만들어 낸다.
여기에 최고출력 38kW, 최대토크 205Nm의 모터가 추가로 달려 있는데 이 모터는 종전 모델 대비 출력이 8.6%가 개선 됐다. 변속기는 하이브리드 전용 6단 자동변속기다.
하이브리드차가 실질적으로 연료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EV모드에서의 성능이 중요하다. 하이브리드가 내연기관과 전기차의 중간적 위치라고 본다면 EV모드 성능이 좋아질수록 전기차쪽으로 무게 중심이 더 옮아간다. 신형 그랜저 하이브리드의 개발 과정도 EV모드 성능 향상에 초점이 모아졌다.
배터리 용량을 종전 1.43kWh에서 23%개선 된 1.76kWh로 증대시키면서 중량은 그대로 유지했다. 배터리 충방전 효율도 약 2.6%개선시키면서 모터로만 주행할 수 있는 EV모드 가동 범위를 늘렸다. 전장품의 전력 사용, 엔진 출력 변화 등을 실시간으로 감지해 EV 작동 구간을 제어하는 환경부하로직을 개선했다.
실내도 계기반을 제외하면 크게 달라진 건 없다. 계기반은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에 걸맞게 내연기관과 모터, 배터리 충전 상황을 한 눈에 알 수 있게 설계돼 있다. 선택 사양이기는 하지만 리얼 코르크 가니쉬는 눈에 확 띄었다. 운전석과 동승자석의 도어트림에 코르크 참나무 껍질을 채취해 만든 가니쉬가 자리잡고 있다. 운전자가 왼팔을 차문에 걸쳤을 때 손으로 만져지는 부위에 적용 된 가니쉬는 이 차가 주는 친환경 메시지를 체감할 수 있게 했다.
신형 그랜저 하이브리드의 디자인은 이처럼 가솔린 모델과의 차이점을 일부러 찾아다녀야 할 정도다. 그렇다면 주행감은 어떨까?
서울 강서구 메이필드호텔에서 파주 헤이리를 왕복하는 시승구간에서 그랜저 하이브리드가 보여준 특성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고요함’이었다. ‘하이브리드니까 조용한 게 당연하다’는 건 일부는 맞고 일부는 그르다. EV모드로 저속 주행할 때 대부분의 하이브리드차가 조용한 건 맞다.
그러나 EV모드라는 이유가 고속 주행에서의 조용함까지 책임질 수는 없다. 수시로 내연기관이 가동 돼야 하고, 노면 소음과 바람소리가 스며들기 때문에 고속 주행에서는 얼마든지 시끄러울 수 있는 게 하이브리드다.
현대차의 설명을 먼저 들어봤다. 엔진룸의 흡차음재 적용 부위를 확대하고 흡음재 일체형 언더커버를 새로 부착했다. 도어에는 3중 실링으로 소음이 침투하는 것을 막았고, 전면 윈드 실드와 앞좌석 도어 글라스에는 차음 필름이 내장 된 이중접합 차음 유리를 끼웠다. 휠 강성을 높여 바닥에서 올라오는 로드 노이즈도 줄였다.
꽤나 설명이 복잡한 기술도 있다. 실주행 사용 빈도가 높은 엔진 저회전 구간에서 발생하는 엔진의 소음ㆍ진동을 ‘모터의 역(逆) 방향’ 토크로 상쇄하는 ‘능동부밍제어’ 기술이 적용 됐다고 한다. 부밍제어 기술은 역 파장의 음파를 보내 소음을 상쇄시키는 기술인데, 그랜저 하이브리드는 내연 기관에서 발생하는 소음을 전기 모터의 역방향 토크로 상쇄시킨다고 한다.
어떤 장치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는 지는 알 수 없지만 ‘신형 그랜저 하이브리드’의 정숙성이 ‘신형 그랜저’의 그것을 능가한다는 인상만은 뚜렷했다. 날이 궂어 비까지 내리는 자유로에서 그랜저 하이브리드는 외부와 차단 된 독립 공간의 아늑함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디자인에서 하이브리드 색깔을 지우려는 노력은 운전에서도 그대로 적용 됐다. 특별히 하이브리드 대접을 할 필요 없이 필요할 때 엑셀과 브레이크를 번갈아 밟기만 하면 된다. 내연기관과 전기모터는 운전 상황에 맞춰 부지런히 동작을 주고 받았다.
EV모드로만 운행을 하고 싶은 상황에서도 선택권이 운전자에게 주어지지 않는 방식은 동시에 아쉬움으로 남기도 했다. 내연기관을 배제한, 순수 배터리로만 차가 움직이도록 선택할 수 있는 기능은 하이브리드를 좀더 전기차에 가깝도록 만들어 준다.
‘신형 그랜저 하이브리드’는 좋게 해석하면 운전자로 하여금 하이브리드를 잊고 편하게 운전에만 집중하도록 만든 차인 듯하다. 이것저것 신경 쓸 거 없이 편하게 운전하고, 운전이 끝난 뒤에서는 빼어난 연료 효율을 만끽하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일 수 있다. 시승에 동원 된 차들은 자율주행으로 가는 각종 운전 보조 장치들 즉, ‘현대 스마트 센스’를 선택 적용하고 있었는데 자유로에 있는 곡선 구간 정도는 차가 알아서 차선을 읽고 핸들도 꺾어주고 있었다.
연비는 매우 만족스러웠다. 메이필드호텔을 나와 김포공항 앞을 지나 행주대교로 이어지는 구간에서는 비오는 날의 도심 정체를 피할 수 없었고, 자유로 구간에서는 스포츠 모드로 고속 주행도 했다. 하이브리드라고 특별 대접을 하지 않았지만 헤이리까지 가는 편도 40km 주행에서 얻은 트립상 연비는 리터당 17km를 가볍게 넘었다. 이 차의 공인 복합연비는 16.2km/ℓ다. 휘발유를 연료로 쓰는 준대형차가 이 정도 연비를 낸다는 것은 놀랍다.
하이브리드 차는 배터리 장착으로 인해 트렁크 공간이 협소한 편인데, 그랜저 하이브리드는 배터리 장착 위치를 트렁크 하단 스페어 타이어 자리로 옮기면서 상당 부분 해결했다. HG에서 420리터였던 트렁크 용량은 신형(IG)에서는 426리터로 커졌다. 가솔린 차의 트렁크는 487리터다.
하이브리드 구매 혜택이 적용 된 가격 경쟁력도 매력적이다. 기본트림인 ‘프리미엄’이 3,540만 원이고 ‘익스클루시브’ 3,740만 원, 최상위 트림인 ‘익스클루시브 스페셜’이 3,970만 원이다. /100c@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