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쎈 레터] 故김영애 진통제 연기투혼, ‘배우’란?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7.04.10 11: 03

[OSEN=유진모 칼럼]지난 9일 췌장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난 고 김영애는 평소 “죽을 때까지 연기를 하겠다”고 배우라는 직업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보였고, 지난해 8월 시작된 KBS2 주말극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에 출연하는 동안 진통제로 통증을 이겨내는 투혼을 발휘했다.
최근 종영된 tvN ‘버저비터’로 예능프로그램 나들이를 경험한 우지원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현재 연기학원에 다니고 있다며 배우에 대한 특별한 열의를 불태우고 있음을 숨기지 않았다. 역시 농구스타 출신인 서장훈은 이미 예능인으로의 변신에 성공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씨름 천하장사 출신의 강호동이 있다.
우지원은 이미 tvN ‘응답하라 1994’ 등 드라마와 영화에 카메오로 출연하며 연기의 ‘맛’을 살짝 봤다. 6개월째 연기학원에 다니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게 기초를 닦은 뒤 ‘농구스타 출신’이 아닌, 진짜 신인배우로서 차근차근 계단을 밟겠다는 의미다. 프로스포츠 선수 출신이니 기본기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더 잘 알 그다.

도대체 연기가 뭐기에, 배우가 얼마나 매력이 있기에?
프로스포츠 선수는 당구를 제외하면 대부분 40살 전후에 은퇴한다. 전성기의 화려함과 그 후광만큼의 수익이 큰 게 프로스포츠 선수지만 정년이 짧다는 게 결정적인 핸디캡이다. 40살이면 비로소 인생을 알고 일의 성취감을 제대로 느낄 나이인데 자신이 제일 잘했던 일을 그만둬야 한다는 사실은 팬보다 당사자들이 더 안타까울 일이다.
프로스포츠 스타도 인기와 대중에게 끼치는 영향을 고려할 땐 연예인에 가깝다. 연예계에서도 그런 그들의 지명도와 인기도를 활용하는 걸 싫어하지 않는다. 해당 선수가 ‘끼’까지 갖췄다면 매우 고마운 일이다. 대중은 반전을 좋아한다. 유재석이 웃기면 당연하지만 안정환이 웃기면 의외의 재미다.
40살은 가수에게도 아주 좋은 나이다. 10~20대 아이돌 가수는 음악적으로나 팬층으로나 한계가 있지만 40살이 되면 보다 더 폭넓은 팬과 소통할 수 있고, 그만큼 장르적으로도 다양한 스펙트럼을 펼치는 동시에 매우 깊은 음악성을 갖출 수 있다. 문제는 가창력은 연습과 실전을 통해 어느 정도의 수준까지 끌어올릴 수 있지만 ‘복면가왕’에 나와서 경쟁할 경지가 되려면 타고나야 한다는 점이다.
더불어 작사 작곡 프로듀싱 등을 아우르는 음악성은 하루아침에 갖출 수 있는 것도, 연습으로 쌓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타고난 음악적 소양과 더불어 다양한 경험을 음악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음악적 감각과 감성이 필수다. 아이디어에 기초한 기획노래를 일시적으로 취입하는 건 가능하지만 가수 전업은 쉽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캐럴음반을 가장 많이 판 주인공은 심형래와 김민희지만 그들은 가수가 될 수 없었다.
그런데 연기는 다르다. 아역배우들처럼 연기력을 타고나는 사람도 있지만 후천적 노력에 의해 충분히 다듬을 수 있는 게 연기다. 천재적 배우를 제외하면 모든 배우는 노력과 현장경험 그리고 인생의 연륜을 통해 연기의 깊이를 더해가기 마련이다. 그런 면에서 40살이란 나이는 아주 좋다. 체력적으로 그리 뒤떨어질 때가 아니고 정신적으로 성숙이 깊어지기 시작할 나이다.
영화를 찍다 사망하는 배우(스턴트맨)도 있고, 매 작품마다 부상자가 속출하는 게 연기이기 마련이지만 축구나 야구, 더 나아가 격투기와 비교하기엔 좀 곤란하다. 도시를 막고 배우들에게 실제 액션을 시키는가 하면(‘다크 나이트’), 360도 회전하는 세트 속에 배우들을 집어넣고 연기를 시키는(‘인셉션’) 크리스토퍼 놀란 같은 무자비한(?) 감독도 있지만 대부분의 연출자들은 시청자(관객)들이 드라마를 사실로 착각하게끔 배우들이 연기에만 몰두하게 만드는 첨단기술에 기대는 경향이 강하다. 프로축구 선수보다 다칠 위험이 적다는 의미다.
지난달 열린 20세 이하 4개국 축구대회 잠비아전에서 정태욱(아주대) 선수가 공중볼을 다투다 쓰러져 의식을 잃자 이상민(숭실대)을 비롯한 선수와 심판이 약속이라도 한 듯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심폐소생술을 펼친 끝에 구한 뉴스가 화제가 된 바 있다. 배우들이 촬영장에 나갈 때 심폐소생술을 배운다는 얘기는 없다.
배우가 가장 매력적인 이유는 정년퇴직이 없다는 점. 신구는 만 81살의 나이에 ‘해빙’ ‘아빠는 딸’ 등의 영화에 연속적으로 출연하는 가운데 최근 ‘해피 투게더’에 출연해선 남다른 유머감각까지 뽐내며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시니어 프로골프 대회에 81살 선수가 출전했다는 뉴스는 없다. 대중은 노배우의 세월의 더께로 무장한 연륜이 묻어나는 짙은 연기라면 무조건 믿는다.
사람이 생계수단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금전적 혜택과 더불어 성취감이다. 요즘 기획사에선 뮤지션은 물론 배우에게도 ‘아티스트’란 칭호를 붙여준다. 그만큼 뛰어난 연기는 광대 수준을 넘어서 예술로 승화돼 평가받는 현실이다.
물론 대중문화라 해도 예술성은 분명히 존재한다. 예전엔 그 예술성의 근원을 감독 혹은 작가에게서 찾았지만 그 작가정신을 스크린(브라운관) 안에서 제대로 보여주는 배우의 ‘메써드연기’에도 부여하는 게 요즘 추세다. 극악무도한 캐릭터를 연기하고 대중에게 욕을 먹는 배우는 감동적인 연기로 대중을 울리는 배우 못지않은 만족감을 느낀다. 그런 성취감과 그 노력만큼 따라오는 개런티의 상승과 CF 등의 본업을 뛰어넘는 부가수입은 ‘평생직장'이란 영속성과 우열을 가리기 힘든 메리트일 것이다.
관객을 속이려면 먼저 배우가 캐릭터에 녹아들어가야 한다. 자신이 먼저 스스로를 속여야한다는 의미다. 그건 즉 배우가 매 작품마다 다른 사람으로 삶으로써 연기를 하는 동안 다양한 인생을 겪는다는 의미다. 돈을 받고, 인기를 얻으면서 왕부터 노숙자까지 각계각층의 시대를 넘나드는 생면부지의 사람의 인생을 살아본다는 건 돈 주고도 사기 힘든 귀한 경험일 것이다.
물론 세상사 모든 일엔 양면이 공존하기 마련이다. 배우로서의 삶이 마냥 행복하고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캐릭터에 지나치게 심취하다보면 자신의 삶을 조금이라도 희생해야한다는 게 가장 큰 직업병일 것이다. 그래서 요즘 연예인에게 공황장애 등의 정신병이 많이 발병하는 것이다. 물론 부상의 위험도 일반 샐러리맨에 비해 크다. 스코어 시청률 등의 흥행성적은 물론 작품의 퀄리티 등에 대한 스트레스도 클 것이다.
그래도 웬만한 노동에 비해 해볼 만한 게 연기고, 다른 직업에 비해 장점이 크고 많은 게 배우다. 대통령은 5년 단임제지만 한 번 쌓은 인기는 자만과 노쇠만 조심하면 꽤 길고, 탄탄하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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