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엄마보다는 배우 김영애로 보이는 역할이 많았고, 내 목소리를 내는 역할이 많았죠. 그것이 사실 배우로서는 복이었다고 할 수 있어요. 어떤 면에서는 참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2009년 OSEN과의 인터뷰 中)
故김영애는 마지막까지 연기혼을 불태운 연기자로 대중에게 기억될 것이다.
김영애가 9일 지병인 췌장암으로 눈을 감았다. 향년 66세. 2012년 췌장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했으나, 2016년 겨울에 건강이 악화돼 연세 세브란스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와 중 이날 사랑하는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과 이별을 고했다.
유작이 된 KBS 2TV 50부작 주말드라마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을 마지막에는 4개월간 병원에 입원한 상태에서 촬영한 사실이 알려져 대중을 더욱 안타깝게 만들고 있다.
1951년 부산에서 태어난 김영애는 부산여자상업고등학교 졸업 후 1971년 MBC 공채 탤런트 3기로 연기에 발을 들였다.
드라마 '민비', '당신의 초상', '엄마의 방', '빙점', '가을여자', '형제의 강', '파도', '달려라 울엄마', '황진이', '로열 패밀리', 영화 '왕십리', '설국', '로맨스 그레이', '반금련', '미워도 다시한번', '겨울 나그네', '해적, 디스코왕되다', '애자', '내가 살인범이다', ''현기증', 변호인', '우리는 형제입니다', '판도라' 등 스크린과 안방을 넘나들며 쉼 없이 다작해 온 그는 누구보다 성실한 연기자이기도 했다.
워낙 다양한 장르의 작품과 캐릭터를 연기해 대표작을 몇 편 꼽기 어려운 배우이지만, 특별히 현 시대 대중에게 강렬하게 남아있는 그의 자취를 짚어봤다.
- 민비(1972)
김영애를 단숨에 스타덤에 오르게 한 작품. 김영애 특유의 차가운 이미지가 민비라는 캐릭터와 잘 맞는다는 평을 들었다. 이후 사극이 어울린다는 평가 속에 '연산일기', '의친왕', '비련의 홍살문', '조선왕조 오백년-뿌리깊은 나무' 등 다수의 사극에서 단아한 면모와 안정된 연기력을 선보였다.
- 겨울 나그네(1986)
김영애는 여배우로서 파격적인 변신을 마다하지 않았다. 곽지균 감독이 연출한 1988년 '겨울나그네'에서는 기지촌의 대모 역을 맡는 과감한 도전을 하며 후배 이미숙과 강석우를 받쳐주고 영화에 깊이감을 더했다.
- 애자(2009)
김영애가 최강희와 함께 보여주는 현실모녀 연기는 관객들을 웃고 울게 만들었다. 애증이 교차하는 모녀 사이를 직설화법으로 그린 이 작품은 지금보면 더욱 뭉클하게 다가올 법 하다. 병으로 세상을 떠아냐만하는 엄마와 이런 엄마를 떠나보내야만 하는 딸. 3년만의 복귀가 무색할 정도로 밀도 높은 연기를 선보이며 그의 연기력에 대한 찬사를 불러일으켰다. 김영애는 이 작품을 '암흑 속에서 나를 구제해 준 작품'이라고 표현했다.
- 로열 패밀리(MBC, 2011)
김영애가 관록의 악녀연기를 펼친 작품. 극 중 김영애는 철저하게 사업가적이고 냉철한 마인드를 가진 철의 여인, 자식들의 결혼도 사업의 한 수단으로 여기는 재벌을 연기해 보는 이를 숨죽이게 만들었다. 첫 회에서 선보인 '저거 치워'란 대사는 유명하다. 함께 출연한 배우 염정아는 그와 극 중에서는 대립각을 이뤘지만 자신의 롤 모델로 김영애를 꼽았다.
- 변호인(2013)
양우석 감독의 영화 '변호인'에서 그가 보여 준 엄마는 아픈 근현대사의 한 모습이었다. 김영애는 아들이 뜻하지 않은 사건에 휘말려 재판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후 동분서주하는 국밥집 아줌마 순애로 분해 처절함에 가까운 모성연기를 보여줬다. 자랑스럽게 남긴 그의 필모그래피다. / nyc@osen.co.kr
[사진] 영화 드라마 스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