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세인트루이스의 개막전 선발인 우완 카를로스 마르티네스(26)였다. 오랜 기간 부동의 개막전 선발인 아담 웨인라이트를 대신해 선택받았다는 점에서 큰 관심이 모였다.
그런 마르티네스는 3일(이하 한국시간) 미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의 부시 스타디움에서 열린 시카고 컵스와의 개막전을 앞두고 ‘특별한 의식’을 치렀다. 경기 웝업을 모두 마치고 공식 피칭에 들어가기 전, 마운드 주위에 숫자 두 개를 크게 적었다. 바로 18과 30이었다. 그리고 한참을 응시하며 뭔가를 생각했다.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18번은 그의 팀 동료이기도 했던 오스카 타베라스, 그리고 30번은 전 캔자스시티 투수 요다노 벤추라의 등번호다. 마르티네스와 친분을 유지했던 또래 선수들이자, 각 팀의 대표적인 유망주들이었던 이들은 안타깝게 유명을 달리했다. 타베라스는 2014년 10월, 벤추라는 2017년 1월 각각 고국에서 운전을 하다 사량 차고로 현장에서 사망했다.
마르티네스는 이미 타베라스의 등번호인 18번을 달고 있다. 타베라스를 잊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이날 마운드에 벤추라의 등번호까지 새기며 의지를 불태웠다. 개막전도 개막전이지만, 이날 등판은 자신에게 너무 큰 의미를 가진 한 판이었다.
하늘에서 친구들이 힘을 준 덕이었을까. 마르티네스는 이날 대단한 역투를 선보였다. 개막전 초구부터 95마일(153㎞)의 공을 던졌는데, 이는 역대 개막전 최초 투구 구속으로는 5위에 해당하는 수치였다. 몸이 풀린 마르티네스는 시속 100마일(161㎞)까지 구속을 끌어올리며 지난해 월드시리즈 챔피언인 컵스 타선을 꽁꽁 틀어막았다.
최고 100마일, 상당수가 95~97마일 사이에 형성된 패스트볼은 이보다 10~15마일 정도 느린 체인지업과 완벽한 짝을 이루며 컵스 타자들을 좌절케 했다. 패스트볼과 체인지업 두 피치로도 타자를 압도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증명하는 투구였다. 컵스가 자랑하는 크리스 브라이언트는 삼진 3개를 당했고, 조브리스트와 바에스를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은 모두 삼진을 당했다. 그나마 조브리스트는 1회 병살타를 쳤다.
유독 힘이 넘쳐 보였던 마르티네스는 마지막 이닝은 8회를 제외하면 특별한 위기 없이 7⅓이닝 동안 105개의 공을 던지며 6피안타 10탈삼진 무실점 역투로 첫 등판을 성공적으로 끝냈다. 마르티네스의 공은 포수 미트를 향하고 있었지만, 그의 마음은 하늘을 향해 있었을지 모른다. /skullbo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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