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의 에이스 매디슨 범가너(28)는 스프링 트레이닝 당시 “물론 잘 치면 좋겠지만 타격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첫 경기에서의 결과는 완전히 달랐다. ‘투수’ 범가너가 개막전부터 홈런 두 방을 때리며 메이저리그(MLB) 및 팀 기록을 세 개나 갈아치웠다.
범가너는 3일(이하 한국시간) 미 애리조나주 피닉스의 체이스필드에서 열린 ‘2017 메이저리그’ 애리조나와의 원정 경기에 선발 등판해 투·타 모두에서 뛰어난 활약을 선보였다. 마운드에서는 5회까지 퍼펙트 행진을 이어가는 등 7이닝 동안 88개의 공을 던지며 6피안타(1피홈런) 11탈삼진 3실점 호투를 펼쳤다. 비록 불펜 난조로 승리는 날렸지만 타석에서 솔로포 두 방을 치며 체이스필드를 경악으로 빠뜨렸다.
보통 내셔널리그에서의 투수 타석은 “조금은 쉬어가는” 지점이다. 그러나 범가너는 다르다. 타격에도 소질이 있는 범가너를 얕봤다 울었던 투수가 적지 않다. 2014년과 2015년 내셔널리그 투수 부문 실버슬러거가 이를 증명한다. 지난해까지 통산 타율은 1할8푼3리, 그리고 통산 홈런은 453타수에서 14개였다. 그런 범가너는 2017년 첫 경기부터 방망이가 폭발했다.
MLB 정상급 투수인 잭 그레인키(애리조나)조차도 범가너 타석에는 신중한 모습이었다. 첫 타석에서 변화구 승부가 많았다. 범가너는 침착하게 볼넷을 골랐다. 그레인키의 얼굴에는 약간의 짜증이 읽혔다. 첫 대포는 5회 나왔다. 1-0으로 앞선 5회 선두타자로 나선 범가너는 그레인키의 2구째 92마일(148㎞)짜리 포심패스트볼을 받아쳐 좌중월 담장을 넘겼다.
‘스탯캐스트’의 공식 기록에 따르면 범가너의 이 홈런은 112.5마일(181㎞)의 속도로 416피트(126.8m)를 날아갔다. 이는 ‘스탯캐스트’가 발족하고 자료를 수집한 이래 투수가 날린 홈런 타구로는 최고 속도였다. 범가너는 2015년 이후 투수 중 100마일(160.1㎞) 이상의 타구를 가장 많이 날린 선수(23회)였다. 공교롭게도 2위가 마운드에 서 있던 그레인키(16회)였다. 마치 누구의 타격이 우위인지 보여주는 것 같았다.
3-0으로 6회 1사 후 퍼펙트 행진이 깨진 범가너는 흔들렸다. 결국 폴락에게 2점 홈런을 얻어맞으며 아쉽게 동점을 내줬다. 하지만 범가너는 7회 공격에서 그 원한을 풀었다. 1사 후 좌완 앤드루 차핀의 3구째 92마일 포심패스트볼을 받아쳐 역시 좌중월 솔로포를 터뜨렸다. 타구 속도는 112.1마일(180.4㎞). 첫 번째 홈런보다 더 긴 422피트(128.6m)를 날아간, 역시 빨랫줄처럼 날아간 타구였다.
특히 첫 번째 타구의 발사각도는 18도였다. 라인드라이브 타구다. 일반적으로 홈런이 나올 법한 각도는 아니었다. 실제 18도 이하의 타구가 홈런이 될 가능성은 2.5%밖에 안 된다. 이처럼 MLB를 대표하는 파워히터도 라인드라이브로 담장을 넘기기는 쉽지 않은데 범가너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한편 두 개의 홈런으로 범가너는 MLB 역사상 개막전에 두 개의 홈런을 친 첫 번째 선수로 기록됐다. 또한 샌프란시스코 구단 역사도 갈아치웠다. 그간 샌프란시스코 투수 최다 홈런은 조니 안토넬리와 할 슈마허가 가지고 있던 15개였다. 범가너는 이날 자신의 통산 15·16호를 나란히 쏘아 올려 단번에 이 기록을 넘어섰다. 한편 범가너는 구단 역사상 개막전에서 2개 이상의 홈런을 친 5번째 선수(종전 배리 본즈, 윌리 메이스, 밥 엘리엇, 맷 윌리엄스)로도 기록됐다. 팀의 패배가 아쉬웠을 뿐, 어쨌든 대단한 하루였다. /skullbo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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